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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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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IRA 규제 우회해야"…한국과 손잡는 중국 배터리 업계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3.07.31 09:37
전기차 배터리

▲전기차에 탑재된 리튬이온 배터리(사진=AFP/연합)

[에너지경제신문 박성준 기자] 최근 들어 중국 업체들이 한국 배터리 업계에 투자를 늘린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을 배제하려는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규제를 우회하기 위해 한국을 생산 거점으로 활용하겠다는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30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은 지난 4개월간 중국 기업들이 한국에 배터리 공장 5개를 신설하기 위해 5조 1000억원을 투자했다고 보도했다. 또 새만금개발청 측에 따르면 최소 한 곳의 지방자치단체가 프로젝트 추진을 위해 중국과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중국의 양극재 기업 닝보 론베이 뉴에너지는 연간 8만t에 달하는 삼원계 전구체를 생산하는 공장을 구축하기 위해 지난 주 한국 정부로부터 허가를 받았다.

지난 3월에는 SK온이 중국 기업과 손잡고 전구체 공장을 구축하겠다고 발표했고 올해 중국 저장화유코발트는 포스코홀딩스, LG에너지솔루션과 손잡고 합작회사를 설립하기로 합의했다. 포스코홀딩스는 지난 6월 중국 CNGR과 2차전지용 니켈과 전구체 생산 설비를 짓는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처럼 중국 기업이 한국에 진출하려는 배경엔 미국 정부의 규제를 우회하기 위해서다. 한국 등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국가에서 채굴·가공된 배터리 원료를 사용해야 IRA 혜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 입장에선 공급망 다변화가 필수적인 셈이다. 실제 포드는 지난 2월 중국 CATL과 기술 협력을 통해 35억 달러 규모 배터리 합작공장을 설립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닝보 론베이 관계자는 "한국 공장에서 생산된 제품들은 IRA법에서 정의하는 핵심 광물에 대한 요건을 충족한다"며 "유럽과 미국 등에 수출할 때 혜택을 누릴 수 있다"고 블룸버그에 말했다. 닝보론베이 한국지사 측은 블룸버그와 별도의 인터뷰에서 "한국은 배터리에 대한 재능과 지식이 풍부하다"며 "IRA 때문에 한국과 손잡는 것을 우리의 글로벌 전략 중 하나로 삼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 기업들은 배터리 및 배터리 재료 공급망을 지배하며 양극, 음극, 전구체 등을 대량 생산하고 있다. 이들은 한국의 전기차 배터리 제조업체인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에 공급되고 있으며, 이들 한국 회사는 다시 GM과 테슬라, 폭스바겐 같은 전기차 제조업체에 제공한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국내 배터리 업계에서도 중국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한국 배터리산업협회 관계자는 "한국과 중국은 서로 필요로 하는 사이"라며 "한국 기업들 입장에선 음극, 전구체 등의 배터리 소재를 중국으로부터 직접 수입하는데 리스크가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중국 기업들이 IRA의 허점을 악용하는 사례가 늘어나자 미국 정부는 규제 개정을 위해 칼을 빼들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조 바이든 해정부는 ‘해외우려 기업’(FEOC)으로부터 부품 등을 얼마나 많이 조달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개정안을 마련하고 있다. FEOC는 중국, 러시아 등 미국과 지정학적 갈등 관계인 국가의 기업 또는 단체를 뜻한다.

에슐리 샤피틀 미 재무부 대변인은 "국내외 공급망과 관련해 미국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문제를 지속적으로 확인하고 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KB증권 제임스 리 애널리스트는 "합작법인 등을 통한 IRA 혜택을 미국 정부가 언제든지 막을 수 있다"며 "한국 기업들이 중국과 협력하는 것은 위험이 있다"고 진단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LG에너지솔루션 측은 이런 일이 현실화될 경우 저장화유코발트의 공동지분을 모두 사들일 준비가 됐다고 지난 4월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한국과 중국 기업들이 협력하는 현상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SNS 리서치 제임스 오 부사장은 "미국은 전기차 공급망에서 결코 중국을 배제할 수 없다"이라며 "한-중 협력이 금지될 경우 미국은 전기차를 제조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한국 기업들이 중국으로부터 관련 기술을 배우기 좋은 기회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새만금개발청 관계자는 "배터리는 반도체와 같이 고도화된 기술이 요구되지 않는다"며 "한국 기업들은 중국의 배터리 기술을 배울 수 있기 때문에 (한-중 협력이) 좋은 현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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