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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EV 스테이션 강동’ 전경. 현대차는 이 곳에서 전기차 초고속 급속 충전 서비스 ‘이피트’를 제공하고 있다. |
[에너지경제신문 여헌우 기자] 전기차 판매가 빠르게 늘어나면서 후방산업인 충전 시장 규모가 함께 커지자 재계 주요 기업들이 치열한 눈치싸움을 벌이고 있다. 성장에 대한 확신은 있지만 아직 기술표준이 명확하지 않고 업 체간 경쟁도 치열해 셈법이 복잡하기 때문이다. 테슬라의 ‘슈퍼차저’ 시스템이 미국에서 빠르게 존재감을 키워가고 있다는 점도 신경 쓰이는 대목이다.
17일 재계에 따르면 전기차 충전 시장은 크게 충전기 제작과 운영으로 나뉜다. 과거에는 양시장 모두 중소업체들이 난립하는 양상이었지만 대기업들이 주력사를 인수하는 방식으로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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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사진. 더 뉴 EQC 차량을 충전하고 있는 모습. |
SK그룹은 2021년 약 2900억원을 투자해 글로벌 전기차 충전기 제조사 SK시그넷을 품었다. 미국 350kW급 이상 초급속 충전기 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달리고 있는 회사다. SK시그넷은 지난달 미국 텍사스 플라노시 생산 공장 준공 행사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이달 10일(현지시간)에는 미국 내 4위 급속 충전기 운영사업자인 프란시스 에너지로부터 최소 1000기 이상의 초급속 충전기 공급계약을 수주하기도 했다.
현대차그룹은 인프라 운영에 초점을 맞추면서 제작 역량도 꾸준히 키워가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2021년 아이오닉 5 출시와 맞물려 초고속 충전 서비스 브랜드 ‘이피트(E-pit)’를 론칭했다. 수도권 주요 거점에 충전시설을 마련하고 고객들과 접점을 늘려가고 있다. 올해 초에는 전기차 충전소 운영 관제시스템인 ‘E-CSP’를 선보였다.
제작 쪽에서는 현대차 자회사 현대케피코가 약진하고 있다. 현대케피코는 ‘2023 서울모빌리티쇼’에 참가해 독자개발한 초급속 전기차 충전기를 처음 선보였다. 업계에서는 향후 현대차그룹이 전기차 생산, 충전기 제작, 충전 인프라 운영 등 수직계열화를 완성할 것으로 보고 있다.
LG그룹의 행보도 발 빠르다. 조주완 LG전자 사장은 최근 진행한 브랜드 중장기 비전 선포식에서 "2030년 전기차 충전 사업에서 조 단위 매출을 낼 것"이라고 말했다. LG전자는 지난해 전기차 충전기 업체 애플망고(현 하이버차저)의 지분 60%를 100억원에 사들였다. LG그룹이 이차전지 분야와 전장 쪽에서 기술력을 지니고 있는 만큼 시너지가 상당할 것으로 기대된다.
롯데그룹은 롯데정보통신을 앞세워 전기차 충전 인프라 업체 EVSIS(옛 중앙제어)를 인수했다. 앞으로는 롯데백화점, 롯데마트 등 오프라인 매장과 시너지 등이 기대된다.
한화그룹은 한화솔루션 큐셀 부문에서 전기차 충전 브랜드 ‘한화모티브’를 선보였다. 태양광 사업과 연계해 사업을 펼칠 가능성이 엿보인다. GS그룹 내 GS에너지는 작년 ‘차지비’를 사들였다. GS의 경우 주유소 운영 경험이 있다는 점과 B2C 오프라인 매장을 지녔다는 점이 눈에 띈다. GS에너지는 전기차 충전 사업 강화를 위해 별도 자회사인 GS커넥트(옛 지커넥트)도 설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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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사진. ‘슈퍼차저’ 시스템을 활용해 테슬라 차량들을 충전하고 있는 모습. |
재계는 전기차 충전 시장이 앞으로 급속도로 커질 것으로 본다. 글로벌 시장 조사 기관 아이디테크엑스는 전기차 충전 인프라 시장이 향후 10년 간 연평균 14%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을 최근 내놨다. 금액으로는 2034년 기준 1230억달러(약 156조원) 규모다.
문제는 팽창하는 시장에서 이익을 낼 수 있을지 여부다. 전기차 충전은 아직 차량과 충전기 제조사별로 규격이 다르다. 국가별로 밀고 있는 기준표준도 달라 적극적인 투자를 감행하는 데 큰 고민거리로 작용하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국 테슬라가 사용하는 ‘북미 충전규격’(NACS)과 현대차그룹이 쓰는 CCS1(DC콤보)는 어댑터 자체가 다르다. 일본(차데모)와 중국(GB/T)이 미는 방식도 상이하다. 국내에서 충전 인프라 제공 업체들이 저마다 다른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도 진입장벽을 높이는 요소로 꼽힌다.
이런 와중에 미국에서 테슬라가 시장을 장악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어 재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포드, 제너럴모터스(GM), 리비안, 볼보, 폴스타, 메르세데스-벤츠 등이 앞서 테슬라의 NACS를 채택하겠다고 선언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최근 영국에서 열린 아이오닉 5 N 공개 행사장에서 "(테슬라 표준 사용을) 내부적으로 논의 중이나 아직 잘 모르겠다"고 언급했다.
yes@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