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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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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인사이트]불매 운동보다 사주기 운동이 아름답다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3.05.03 10:18

성신여대 소비자생활문화산업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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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신여대 소비자생활문화산업학과 교수


지난 2021년 당시 일본 아베 총리가 한국수출 통제 조치를 취하면서 우리나라 소비자들은 일본 기업 목록을 만들어 배포하는 등 불매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친 바 있다. 대리점 갑질이 드러난 기업, 성차별 면접 논란 기업, 사회적 비난이 쏟아졌던 기업, 공감 능력 부족한 기업이 소비자들에게 외면 받고, 또 불매운동 대상이 된 사례는 매우 많다. 왕따나 학폭 의혹이 불거진 연예인들을 광고계에서 퇴출시킨 사례도 있다. 일방적인 구매에서 벗어나 간섭과 견제를 통해 제품과 서비스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소비자들의 실력 행사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해외사례를 살펴 보면 미국에서 스타벅스가 직원들에게 인종차별 반대 시위 복장을 못 입게 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소비자들이 불매운동에 나선 바 있다. 스타벅스는 이전에도 흑인 차별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다. 2021년 3월 여성의 날, 트위터에 올라 온 모 회사 제공 사진 속에 ‘여자는 부엌에 있어야 한다’는 내용의 문구가 알려져 비판을 받았고, 아동 노동을 착취했다는 신발 회사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도 벌어진 바 있다. 점차 환경 문제와 사회적 문제가 있는 기업에 대한 불매운동이 확대되고 있다.

컴퓨터나 SNS의 발달로 소비자들의 의견이나 대응행동이 빨리 그리고 쉽게 공유되다 보니 기업들이 소비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다. 행동하는 소비자의 위력은 문제 있는 제품과 브랜드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별점 테러, 트럭 시위, 집단소송 등 다양한 형태의 조직적 집단행동이 본격화 된 지도 오래다. 통신과 게임, 식품·유통, 자동차 등 산업 분야를 막론하고 소비자들의 불매운동이나 다양한 유형의 대응 사례가 많아지면서 기업들이 긴장하고 있다.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로 소비자들은 온라인을 통해 실시간으로 소통할 수 있는 광장이 마련됐고 이를 기반으로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움직임이 동시 다발적으로 표출되고 있다. 소비자들의 정보력과 지식으로 정보 비대칭이 많이 사라진 현재 소비자의 힘이 막강해 지고 있다.

다양한 방법을 통해 소비자들이 불만을 표출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기업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사소한 불만으로도 소비자들의 집단행동이 촉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 같은 불매운동은 자칫 선량한 특정 기업이 피해를 보는 경우도 있고, 국제 분쟁의 단초가 되기도 한다. 몇 년전 스웨덴 패션 브랜드 H&M은 중국 정부의 잔혹한 인권 탄압과 강제노동을 문제 삼아 중국 신장 지역에서 생산한 면화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 같은 조치는 유럽연합(EU)과 미국, 영국, 캐나다 등으로 확산됐다. 그러자 중국 소비자들의 분노는 H&M 으로 향했고 H&M은 한 순간에 불매운동의 대상이 됐다. 이 상황에서 H&M은 중국 당국에 불려 갔다. H&M 홈페이지에 베트남과 분쟁 중인 파라셀 군도 표기 사용 때문이었다. 결국 H&M은 중국 당국의 지도 수정 요청, 즉 중국이 그어 놓은 해안선 표시(9단 선) 지도를 즉각 받아들였다. 그러자 H&M 제품을 대상으로 하는 불매운동이 이번에는 베트남 소비자들에 의해 제기됐다. 그 후 신장 면화 보이콧 브랜드들에 대한 중국 소비자들의 불매운동은 미·중 정부 간 갈등으로도 번졌다. 이 사건은 불매운동의 파장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사례가 됐으며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불매운동과 대조적으로 소비자들의 사주기 운동도 자주 일어 난다. 환경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한 상품이나 서비스 사주기 운동,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나 제품의 탄생을 위한 사주기 운동을 설득하는 소비자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불우이웃을 돕거나, 환경보호를 실천한 가게, 사회의 긍정적 변화에 앞장서는 가게나 기업의 제품을 사 주자는 운동은 소비자의 구매력(money vote)을 활용해 힘을 실어 주는 행동이다.

2021년 서울 홍대 근처 착한 치킨집에서 시작된 돈쭐(돈으로 혼쭐) 행렬이 SNS와 유튜브 등을 타고 연쇄적으로 확산된 바 있다. 고등학생 A군이 치킨 프랜차이즈 본사에 보낸 손 편지의 내용, 즉 본인과 어린 동생에게 무료로 치킨을 건넨 미담이 알려졌던 것이다. 이에 홍대 근처 소재 착한 치킨 가게에 강원, 부산 등 전국 각지에서 배달 앱을 통해 돈만 내고 음식은 받지 않는 주문이 이어졌다.가치 소비에 열광하는 MZ세대가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선행을 공유하는 분위기가 확산된 것이다. 당시 인스타그램 등 SNS에서는 ‘치킨 가게 사장님 힘 내세요’ 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주문한 음식이나 결제 영수증을 찍어 올리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친 환경, 동물복지, 기부나 봉사 등 사회 기여에 앞장선 가게나 기업의 제품을 사 주는 운동은 아름답다. 벌 주기보다 칭찬하고,불매운동보다 사주기 운동으로 착한 소비문화가 정착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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