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경제 포토

곽인찬

paulpaoro@ek.kr

곽인찬기자 기사모음




외국인 가사도우미, 어떻게 보세요? [곽인찬의 뉴스가 궁금해?]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3.05.15 15:08
<요약> 정부와 서울시가 외국인을 육아 도우미로 활용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여성의 경력단절을 막고 육아 부담을 줄여 출생률을 높이는 게 목표다. 이를 두고 찬반 논란이 거세다. 중고령 여성 일자리를 앗아간다는 우려도 있다. 단계적 시범사업을 통해 수요층인 맞벌이 엄마·아빠의 반응부터 알아보는 게 순서다.


정부와 서울시가 외국인을 육아 도우미로 활용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저출생 대응책의 일환이다. 이르면 올 하반기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 출신 ‘이모님’을 볼 수 있다. 아직은 소규모 시범사업이다.

이를 두고 찬반 논란이 일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대표적인 찬성파다. 고용노동부도 신중하지만 한번 해보자는 쪽이다. 진보적인 시민단체, 여성단체, 노조는 반대다. 외국인 도우미 수요자인 부모들은 의견이 분분하다.

외국인 가사도우미 정책을 키워드를 중심으로 살펴보자.


◇ 오세훈 시장


오세훈 서울 시장은 작년 9월 하순 국무회의에서 외국인 육아 도우미 도입을 제안했다. 당시 오 시장은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81(21년 기준)이고 서울의 합계출산율은 0.63으로 인구 감소를 넘어 인구 소멸의 경고등이 켜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양육에 초점을 맞춘 외국인 육아 도우미는 "경제적 이유나 도우미의 공급 부족 때문에 고용을 꺼려왔던 분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오 시장은 "한국에서 육아 도우미를 고용하려면 월 200만~300만원이 드는데 싱가포르의 외국인 가사 도우미는 월 38만~76만원 수준"이라며 "앞으로 출범할 범정부 TF에서 비중 있게 논의해 달라"고 건의했다.

정부도 일단 호응했다. 고용노동부는 작년말 외국인 고용허가제 개편 방안을 내놓으면서 외국인 가사도우미 시범 사업을 검토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2023051501000770600037311

▲오세훈 서울 시장 블로그 캡처(2023년 4월26일자)


오 시장은 지난달 블로그(2023년 4월26일자)에서 "이제 우리사회가 일하면서도 육아를 할 수 있는 병행 시스템을 더 촘촘하게 만들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오 시장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마이클 크레이머 미국 시카고대 교수가 한국은 이민 정책이 필요하며, 홍콩과 싱가포르의 ‘외국인 가사도우미 대상 특별비자 프로그램’을 성공적인 이민 정책으로 거론한 것에 동의한다"고 말했다.

만약 외국인 가사도우미 정책이 시범사업을 넘어 뿌리를 내리면 가장 큰 공은 오세훈 시장에게 돌아갈 것 같다.


◇ 고용노동부


고용노동부는 시범사업을 검토 중이긴 하나 신중한 모습이다. 무엇보다 지난해 6월부터 본격 시행된 가사근로자법이 신경 쓰인다. 가사근로자법은 "가사서비스와 관련하여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가사근로자의 고용안정과 근로조건 향상을 도모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가사근로자법에 따라 가사도우미도 근로기준법, 최저임금법, 주52시간제 적용을 받는다. 고용보험, 산재보험 등 사회보험 혜택은 물론 퇴직금과 연차 유급휴가도 받을 수 있다.

사실 지난해 8월만 해도 고용부는 동남아 가사도우미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당시 고용부는 보도설명자료를 통해 "가사서비스 일자리는 대표적인 중고령 여성 일자리로서, 외국인력 도입 확대 시 내국인 일자리 잠식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또 가사도우미로 입국한 인력이 고임금을 찾아 다른 직종으로 이탈할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나아가 고용부는 "의사소통 장벽이 낮고 현재도 가사서비스 분야 취업을 허용하고 있는 방문취업동포(중국 동포) 인력의 적극적 활용을 우선 검토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오 시장의 국무회의 건의가 나온 뒤 고용부 태도가 바뀌었다. 작년 12월 말 고용부가 내놓은 고용허가제 개편 방안에는 "가사·돌봄 서비스에 대한 E-9 시범사업을 검토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E-9은 비전문취업비자로, 주로 중국 동포에 적용하는 방문취업비자(H-2)와 대비된다.

지난 9일 고용부는 "외국인 가사도우미 도입 방식, 규모, 시기 등에 대한 구체적인 시범사업 계획안을 올해 상반기 중 마련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 조정훈 의원

시대전환 소속 조정훈 의원은 지난 3월 가사근로자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외국인 가사도우미에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조 의원은 개정안 제안이유에서 "한국도 저임금의 외국인 가사근로자 도입을 통해 맞벌이 가정의 가사부담을 덜고 특히 여성의 경력단절 문제를 해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외국인을 최저임금 적용 대상에서 빼는 것은 인종차별, 노동착취, 불법체류 등 숱한 논란거리를 안고 있다. 그로 인한 국가 이미지 훼손도 우려된다.

2023051501000770600037312

▲2019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마이클 크레이머 교수가 5월2일 오후 인천시 연수구 송도컨벤시아에서 열린 ‘제56차 아시아개발은행(ADB) 연차총회’에 참석해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마이클 크레이머 교수


크레이머 교수는 세계 빈곤 해결에 기여한 공로로 2019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이달초 그는 한국이 인구 문제를 풀 해결책으로 이민 정책을 제시했다. 인천 송도에서 열린 아시아개발은행(ADB) 연차총회 기자간담회에서다.

크레이머 교수는 외국인 가사도우미 정책을 적극 펴는 홍콩과 싱가포르의 사례를 들어 "특정 업종에서 이민자를 받는 부분적인 이민 정책을 통해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고 고학력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를 유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오 시장에겐 강력한 지원군이 아닐 수 없다.


◇ 여성단체, 노조

여성단체와 노조는 저임 가사근로자 도입에 반대다. 가사노동의 가치를 폄하하는 데다 경쟁이 심해지면서 임금이 떨어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노총 전국연대노동조합 가사돌봄유니온은 3월27일 국회 앞에서 조정훈 의원이 발의한 가사근로자법 개정안이 ‘차별과 편견을 확대하는 시대 역행적인 법안’이라며 철회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가사돌봄 유니온은 작년 6월에 출범했다. 중·장년층 여성 일자리를 앗아갈 수 있다는 우려는 현실적이며, 외국인 가사도우미가 고임금 업종으로 이탈할 가능성도 매우 높다.

가사근로자법을 시행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았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가사근로자는 70년 간 노동법과 사회보험의 사각지대에 방치됐다. 가사근로자법은 이들을 법의 테두리 안으로 끌어들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 시범사업은 장기 프로젝트로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3월 말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회의에서 "지난 15년간 280조원이라는 천문학적 예산을 투입했지만, 지난해(2022년) 합계출산율은 역대 최저인 0.78명을 기록했다"고 말했다. 위원회는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어려움과 육아로 인한 경제적 부담"을 대표적인 저출산 원인으로 꼽았다.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러나 조정훈 의원이 낸 개정안은 지나치게 파격적이다. 국회를 통과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남는 건 고용부·서울시가 공동 추진하는 시범사업이다.

맘 카페에선 의견이 분분하다. 왜 외국인에게 최저임금을 주느냐, 얼마 차이 안 나면 내국인이 낫다, 맞벌이 부부에겐 오아시스 같은 정책이다, 중국 동포 베이비시터 비용이 담합식으로 올라가는 건 덜할 것 같다 등등.

외국인 가사도우미 정책은 수요층 의견이 가장 중요하다. 먼저 소규모 시범사업을 통해 맞벌이 엄마·아빠 반응을 알아보는 게 좋을 듯 하다. 다만 예상되는 반발과 부작용을 고려해서 시간이 걸리더라도 근로기준법, 최저임금법, 가사근로자법의 테두리 안에서 장기 프로젝트로 접근하길 바란다.

<경제칼럼니스트>

2023051501000770600037313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