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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전 대통령.로이터/연합뉴스 |
연합뉴스에 따르면, 트럼프 전 대통령은 9일(현지시간) 뉴욕 남부연방지방법원에서 유명 패션 칼럼니스트 출신 E. 진 캐럴(79)이 제기한 성폭행 의혹 관련 민사소송에서 패소했다.
이는 ‘성관계 입막음’ 혐의로 미국 전·현직 대통령 중 최초로 형사 기소된 지 한 달여 만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대선 직전 자신과의 성관계 사실을 폭로하려던 성인 배우에게 거액을 지급하면서 회사 기록을 위조한 혐의로 재판 받고 있다.
이 가운데 이번에는 성폭력 혐의에 무게를 싣는 민사재판 평결이 내려진 것이다.
배심원단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캐럴을 성추행했고, 혐의를 부인하는 과정에서 그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판단했다. 이에 피해보상과 징벌적 배상을 포함해 500만달러 배상을 명령하는 평결을 내놨다.
문제의 사건은 1990년대 중반 일어났다. 캐럴은 사건의 발단이 1995~1996년 사이 어느 시점에 뉴욕시 맨해튼 고급 백화점 버그도프굿맨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을 마주친 것이라고 설명한다.
뉴욕타임스(NYT) 등 미 언론들에 따르면 캐럴은 이 백화점 출구에서 우연히 만난 트럼프가 농담을 주고받은 뒤 ‘여성인 친구의 선물을 고르는 것을 도와 달라’고 부탁했다고 전했다.
캐럴은 법정에서 "도움을 주고 싶었다. (유명 인사인) 도널드 트럼프가 내게 선물 구매에 관한 조언을 부탁했기 때문"이라고 증언했다.
그는 여성용 속옷 매장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속옷을 입어보라고 명령조로 말했고, ‘당신이 대신 입으라’며 거절했다고 전했다. 다만 이때까지만 해도 장난스러운 분위기였다고 한다.
그러나 캐럴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캐럴을 탈의실 안으로 밀어 넣은 뒤 곧바로 문을 닫고 벽에 밀치면서 성폭력이 시작됐다고 밝혔다. 스타킹을 끌어 내리고 추행한 것은 물론 성폭행까지 이뤄졌다는 전언이다.
캐럴은 무릎을 이용해 트럼프를 겨우 밀치고 도망쳤다면서 "그 사건 이후 난 다시는 로맨틱한 삶을 살 수 없었다"며 평생 트라우마에 시달렸다고 말했다.
캐럴은 이 사실을 2019년 회고록과 언론을 통해 뒤늦게 폭로했다.
이에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자신을 가리켜 "내 스타일이 아니다"라고 조롱하고 범행을 부인하자 명예훼손 소송을 냈다.
공소시효가 지난 성폭력 혐의 자체를 형사고소 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뉴욕주는 지난해 11월부터 공소시효가 지난 성범죄 피해자에게 1년간 한시적으로 가해자를 상대로 한 민사소송을 허용하는 ‘성인 성범죄 피해자 보호법’을 시행하고 있다.
이 덕분에 캐럴은 성범죄 피해 배상을 요구할 수 있게 됐다.
아울러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해 10월에도 소셜미디어를 통해 캐럴 주장을 "완전한 사기", "거짓말"로 일축하면서 ‘책을 많이 팔기 위해 지어낸 이야기’라는 식으로 묘사했다. 이 역시 명예훼손 근거가 됐다.
하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 반격도 만만치 않았다.
재판 과정에서 변호인들은 캐럴 주장이 성범죄 수사를 주로 다루는 미국 유명 드라마 ‘로 앤 오더: SVU’ 2012년 에피소드를 보고 지어낸 이야기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해당 에피소드에는 한 여성이 버그도프굿맨 백화점 속옷 코너 탈의실에서 성폭행당하는 이야기가 그려진다.
이에 맞서 캐럴 친구 2명은 증인으로 출석해 ‘로 앤 오더’ 에피소드가 방영되기 훨씬 전인 1990년대 중반 사건 발생 후 캐럴로부터 성폭행 사실을 전해 들었다고 반박했다.
이날 평결은 트럼프 전 대통령 대선 가도에 악재가 될 가능성이 크지만, 그 영향은 제한적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엄격한 형사재판을 통해 범죄 혐의가 인정된 것은 아닌 데다 트럼프 성적 도덕성에 대한 지지층 기대 수준이 높지 않은 편이기 때문이다.
NYT는 3월 말 맨해튼 대배심 기소 결정이 오히려 지지층 결집으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배상 평결 자체가 어떤 영향을 줄지 예단하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hg3to8@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