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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2일 일정으로 일본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3월 16일 오후 일본 도쿄 총리 관저에서 열린 한일 확대정상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7~8일 한국에 온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3월 16~17일 일본을 방문했다. 기시다의 방한은 그에 대한 답방 성격이 짙다. 두 나라 정상이 상대국을 오가는 셔틀외교가 12년만에 복원되는 셈이다. 기시다 총리는 어떤 사람이며 그가 서울에 와서 무슨 말을 할지 등을 4대 키워드를 중심으로 살펴보자.
◇ 키워드 1: 히로시마
기시다는 1957년 도쿄에서 태어났다. 명문 가이세이고등학교와 와세다대학(법학 전공)을 나왔다. 하지만 기시다의 뿌리는 히로시마에 있다. 할아버지, 아버지 모두 히로시마에서 중의원을 지냈다. 기시다는 지역구(히로시마 1구)를 물려받았다. 현재 10선 의원이다.
2016년 5월 기시다는 외무상으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을 조율했다. 오바마는 평화기념공원에서 연설했다. 원자폭탄을 투하한 당사국의 현직 대통령으로선 처음이었다. 당시 조 바이든 현 대통령은 부통령직을 수행하고 있었다.
기시다 총리는 오는 19~21일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를 주재한다. 장소는 두말할 나위 없이 히로시마다. 미국 언론은 벌써 바이든 대통령이 원폭 투하를 놓고 사과를 할지 말지에 관심을 보인다. 히로시마 G7 정상회담엔 윤석열 대통령도 초청국 정상으로 참석한다.
기시다는 일본 프로야구 히로시마 카프의 열성팬이다. 고교 시절 2번 타자에 내야수로 활약했다. 지난 3월10일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한·일전에선 시구를 하기도 했다.
◇ 키워드 2: 외교
기시다는 2012~2017년 5년 간 외무상을 지냈다. 아베 신조 총리 내각에서다. 전후 최장수 기록이다. 아베 전 총리의 아버지인 아베 신타로가 가지고 있던 4년 기록을 깼다.
2015년 12월 하순 기시다 외무상은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윤병세 외교부 장관을 만났다. 여기서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합의가 도출됐다.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총리의 의지가 작용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위안부 합의는 문재인 정부 들어 흐지부지됐다. 여기에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이슈까지 불거지면서 한·일 관계는 악화일로를 걸었다.
최근 기시다 총리에 대한 지지율이 큰 폭으로 올랐다. 외교 주특기를 잘 살린 덕이 크다. 지난 3월 16일 기시다는 윤 대통령을 만나 한·일 관계 정상화로 가는 길을 텄다. 닷새 뒤엔 우크라이나 키이우를 전격 방문해 젤렌스키 대통령을 만났다. 기시다·젤렌스키 회동은 마침 중·러시아 정상회담 날짜와 겹치는 바람에 국제적인 주목을 끌었다.
기시다는 지난달 중의원 보궐선거 유세 중에 폭발물 피습 사건을 겪었다. 이 역시 지지율을 높이는 데 도움을 주었다. 그는 일단 대피한 뒤 바로 그날 유세를 이어가는 모습을 보였다. 한때 30%를 밑돌던 지지율은 최근 50%를 넘어서는 등 순풍에 돛을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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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3월 16일 오후 일본 도쿄 긴자의 오므라이스 노포에서 친교의 시간을 함께하며 생맥주로 건배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 키워드 3: 무색무취
기시다 총리를 표현할 때 흔히 ‘무색무취’라는 표현을 쓴다. 이는 그가 속한 자민당 내 고치카이파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 고치카이파는 총리를 다수 배출한 명문 파벌로 온건 보수를 지향한다. 기시다는 2012년부터 고치카이파의 수장을 맡았다. 지금은 기시다파로 불러도 무방하다.
기시다는 정계에 진출하기 전 5년 동안 일본 장기신용은행에 근무했다. 은행원은 꼼꼼함이 무기다. 또 외무상으로 5년 동안 일하면 누구라도 신중함이 몸에 배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기시다에겐 ‘재미 없는 남자’라는 평가가 따라붙는다.
그러나 때론 과단성을 보인다. 2021년 9월 자민당 총재 선거는 혼전 속에 치러졌다. 집권 자민당 총재는 자동으로 총리가 된다. 이때 기시다는 고노 다로 전 외무상에 절대 열세였다. 그러나 1차 투표에서 기시다는 중·참의원 의원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1위를 차지했다. 이어 1·2위가 겨루는 결선투표에선 고노를 가볍게 제치고 일본 100번째 총리 자리에 올랐다.
◇ 키워드 4: 분배
기시다 총리의 경제정책은 소득 재분배로 요약된다. 위키피디어에 따르면 그는 작년 2월 의회에서 "모든 이해관계자(Stakeholders)에게 혜택이 돌아가지 않는다면 자본주의는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는 성장의 과실이 주주뿐 아니라 고객, 납품사, 종업원, 노조, 지역사회 등에 골고루 돌아가는 것을 말한다. 오로지 성장을 중시하는 주주자본주의와 대비되는 말로, 2020년 다보스포럼에서 집중 조명을 받았다.
일본 자민당은 보수의 본령이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시장만능주의를 주창하는 것은 아니다. 기시다 총리가 이 시점에 소득 불균형 해소에 힘을 쏟는 이유를 톺아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듯하다.
지난 3월 도쿄 한일 정상회담에서 기시다 총리는 "일본 정부는 1998년 10월에 발표한 한일 공동선언(김대중-오부치 선언)을 포함해 역사 인식에 관한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한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본인 스스로 ‘사죄한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한일 공동선언에서 오부치 총리는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한다고 말했다. 역대 내각의 입장을 계승한다면 이 표현을 입에 올린들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셔틀 외교가 복원됐지만 한·일 관계는 늘 아슬아슬하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출은 눈앞에 닥친 현안이다. 위안부, 독도, 교과서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다.
윤 대통령이 성큼성큼 걷는 스타일이라면 기시다 총리는 돌다리도 두들기는 타입이다. 개성이 다르지만 오히려 그래서 뜻밖의 ‘케미’를 기대해 본다.
<경제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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