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은녕 서울대학교 교수·공학전문대학원 부원장/한국에너지법연구소 소장
전기가 곧 쌀이 되어 버릴 것 같다. 무슨 소리냐고? 국제 에너지가격은 계속 치솟는데 국내 전기요금은 계속 낮은 수준을 유지하다 보니 이제는 벼농사에 대한 정부의 지원을 끊을 수 없게된 것처럼 낮은 전기요금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엄청난 정부 자금이 사용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최근 입법사태로 보듯이 쌀(벼)농사는 우리나라 농업정책의 가장 오래된 이슈 중 하나다. 1970년대 이후 정부의 쌀 증산 노력이 결실을 맺어 쌀은 100% 자급자족을 넘겨 身土不二를 실천한 농산물이라는 자긍심이 매우 높다. 문제는 벼농사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자 벼농사를 짓는 농가가 다른 작물로 옮겨가지 않는 데다 기술은 좋아져 쌀 풍년이 이어지고 있지만 국제적인 경쟁력이 없어 해외에 수출은 어렵고 국내 쌀값 폭락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쌀 문제로 인한 국가재정지원이 날로 커지고 있고 정치권과 정부부처들은 수십 년 동안 갑론을박하고 있지만 여전히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나랏빚만 늘고 있다.
이제 전기가 이런 쌀의 영역을 넘보고 있다. 정치권의 초미의 관심사지만 전혀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처분만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또 하나의 쌀 신세가 되고 있다. 1970년대 이후 전국 전력망을 건설하고 전국 방방곡곡 집집마다 전깃불을 밝혀 100%에 가까운 보급률을 보이며 21세기 초반까지 세계 최고수준의 경쟁력과 전력설비를 자랑하던 우리나라 전력시스템은 지난 10여년 만에 빚더미에 쌓여 고장 난 전력설비의 복구조차 하기 어려운 지경으로 추락하고 있다. 전기의 문제는 21세기 초부터 드러나기 시작했다. 전력 수요 패턴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먼저 가정과 상업건물에 겨울철 난방을 전기로 하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겨울철에 전력수요가 최대가 되는 현상이 발생했다. 이로 인해 1년에 두 번, 여름과 겨울에 전력수요 피크가 나타나면서 발전시설을 세워서 정비할 시간이 부족하게 되기 시작했고 드디어 2011년 고장이 나고 말았다. 정전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21세기 들어 나타난 또 하나의 변화는 1인 가구의 증가다. 어느 새 20%를 훌쩍 넘어버린 1인 가구는 전기요금 누진제의 불안 없이 그야말로 냉방과 난방을 팡팡 틀어놓고 지내고 있다. 전통적인 우리나라 전력요금체계는 다양한 정책수요에 맞추기 위해 산업용, 농업용, 교육용 및 심야전력용의 전기요금을 정부의 지원으로 낮게 유지해 왔으며 가정용 전기요금 체계는 4인 가구를 중심으로 누진제가 적용돼 왔다. 그런데 이런 요금체계의 근간이 되는 수요패턴이 변화했는 데 21세기 들어 전기요금체계는 제대로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정치권의 반대와 기획재정부의 물가 타령 때문이다.
그리고 그 해결책은 신기하게도 공공기관을 넘어 민간기관에도 냉방과 난방온도를 규제하는 형태로 나타났고 공무원들과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그 이후 겨울에 춥고 여름에 덥게 일하게 하고 있다. 적절한 전기요금 조정으로 이들 전력수요 피크를 조정하거나 1인 가구용 전력요금 체계를 만들어보려는 노력은 없었다. 2020년에는 전쟁으로 전력을 생산하는 원료의 가격이 폭등하는 공급 위기까지 나타났다. 프랑스는 크리스마스 시즌 에펠탑의 조명을 껐고 독일은 초강도의 절약해야만 했으며 유럽의 전기요금은 한국의 3~5배로 치솟았다. 그럼에도 한국의 정치권과 기획재정부는 전기요금을 절대로 올리지 않겠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전기요금수준은 OECD 국가 최하위권이 됐고 우리나라의 전력산업은 2022년에만 30조의 빚더미에 올라 앉게 되었다.
이번 사태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오랫동안 원가보다도 낮게 유지된 전력가격이다. 21세기 내내 전문가들은 꾸준히 이런 문제점을 지적해 왔다. 그러나 정부와 정치권은 근본적인 해결책인 전력가격 상향조정은 물론 법으로 보장된 원가연동제의 실시도 하지 않고 있다. 당장에 물가를 잡는 것이 중요하겠지만 이제 기회를 놓치면 전기는 쌀 신세가 돼 우리 후손들의 부담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내년 총선은 농촌지역 국회의원들에게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며, 전기요금 인상은커녕 벼농사와 같이 오히려 보조금이 더욱 더 늘어날 확률이 높아 보인다. 벼농사가 국가보조로 버티듯이 이제 전력산업도 국가보조로 연명하는 산업이 된다는 것이다. 정부는 당장 중장기적인 전력가격 상향조정 의지를 발표해 더 이상의 급격한 전력수요증가를 막고 빠른 시한 안에 근본적인 전력가격체계 개선작업에 들어가야 한다. 우리나라 국민과 산업이 전기를 많이 사용하는 것은 국민과 산업이 책임질 일이 아니라 낡아 빠진 전력요금체계를 유지하고 있는 정부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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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은녕 서울대학교 교수·공학전문대학원 부원장/한국에너지법연구소 소장 |
이제 전기가 이런 쌀의 영역을 넘보고 있다. 정치권의 초미의 관심사지만 전혀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처분만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또 하나의 쌀 신세가 되고 있다. 1970년대 이후 전국 전력망을 건설하고 전국 방방곡곡 집집마다 전깃불을 밝혀 100%에 가까운 보급률을 보이며 21세기 초반까지 세계 최고수준의 경쟁력과 전력설비를 자랑하던 우리나라 전력시스템은 지난 10여년 만에 빚더미에 쌓여 고장 난 전력설비의 복구조차 하기 어려운 지경으로 추락하고 있다. 전기의 문제는 21세기 초부터 드러나기 시작했다. 전력 수요 패턴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먼저 가정과 상업건물에 겨울철 난방을 전기로 하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겨울철에 전력수요가 최대가 되는 현상이 발생했다. 이로 인해 1년에 두 번, 여름과 겨울에 전력수요 피크가 나타나면서 발전시설을 세워서 정비할 시간이 부족하게 되기 시작했고 드디어 2011년 고장이 나고 말았다. 정전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21세기 들어 나타난 또 하나의 변화는 1인 가구의 증가다. 어느 새 20%를 훌쩍 넘어버린 1인 가구는 전기요금 누진제의 불안 없이 그야말로 냉방과 난방을 팡팡 틀어놓고 지내고 있다. 전통적인 우리나라 전력요금체계는 다양한 정책수요에 맞추기 위해 산업용, 농업용, 교육용 및 심야전력용의 전기요금을 정부의 지원으로 낮게 유지해 왔으며 가정용 전기요금 체계는 4인 가구를 중심으로 누진제가 적용돼 왔다. 그런데 이런 요금체계의 근간이 되는 수요패턴이 변화했는 데 21세기 들어 전기요금체계는 제대로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정치권의 반대와 기획재정부의 물가 타령 때문이다.
그리고 그 해결책은 신기하게도 공공기관을 넘어 민간기관에도 냉방과 난방온도를 규제하는 형태로 나타났고 공무원들과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그 이후 겨울에 춥고 여름에 덥게 일하게 하고 있다. 적절한 전기요금 조정으로 이들 전력수요 피크를 조정하거나 1인 가구용 전력요금 체계를 만들어보려는 노력은 없었다. 2020년에는 전쟁으로 전력을 생산하는 원료의 가격이 폭등하는 공급 위기까지 나타났다. 프랑스는 크리스마스 시즌 에펠탑의 조명을 껐고 독일은 초강도의 절약해야만 했으며 유럽의 전기요금은 한국의 3~5배로 치솟았다. 그럼에도 한국의 정치권과 기획재정부는 전기요금을 절대로 올리지 않겠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전기요금수준은 OECD 국가 최하위권이 됐고 우리나라의 전력산업은 2022년에만 30조의 빚더미에 올라 앉게 되었다.
이번 사태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오랫동안 원가보다도 낮게 유지된 전력가격이다. 21세기 내내 전문가들은 꾸준히 이런 문제점을 지적해 왔다. 그러나 정부와 정치권은 근본적인 해결책인 전력가격 상향조정은 물론 법으로 보장된 원가연동제의 실시도 하지 않고 있다. 당장에 물가를 잡는 것이 중요하겠지만 이제 기회를 놓치면 전기는 쌀 신세가 돼 우리 후손들의 부담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내년 총선은 농촌지역 국회의원들에게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며, 전기요금 인상은커녕 벼농사와 같이 오히려 보조금이 더욱 더 늘어날 확률이 높아 보인다. 벼농사가 국가보조로 버티듯이 이제 전력산업도 국가보조로 연명하는 산업이 된다는 것이다. 정부는 당장 중장기적인 전력가격 상향조정 의지를 발표해 더 이상의 급격한 전력수요증가를 막고 빠른 시한 안에 근본적인 전력가격체계 개선작업에 들어가야 한다. 우리나라 국민과 산업이 전기를 많이 사용하는 것은 국민과 산업이 책임질 일이 아니라 낡아 빠진 전력요금체계를 유지하고 있는 정부의 책임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