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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호 가천대학교 에너지시스템과 교수 |
1970∼80년대 오일쇼크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에너지절약은 우리나라 에너지정책에서 빠질 수 없는 정책목표 중 하나다. 지금도 이와 관련된 정책이나 계획, 관련 법과 규제는 많다. 에너지이용 합리화, 건축물 규제, 최저효율제, 각종 라벨링, 에너지 공기업 투자계획 등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다. 에너지절감은 에너지기본계획(에기본)이나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은 물론 국가온실가스 로드맵 등에서도 항상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계획 수립 때 마다 도달하기 어려울 만큼 의욕적인 목표와 온갖 수단들이 제시되지만 실제로 얼마나 계획대로 달성되었는지는 알기 어렵다. 절감량을 평가하는 기준이나 절차도 미비하지만 어차피 정책의지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다. 성과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계획으로 계속 추진하는 행태가 되풀이 되고 있다. 이렇다 보니 전기본에서도 수요관리의 주된 내용인 에너지절감은 수요목표치를 맞추어 주는 역할에 머물고 있다.
되돌아보면 에너지절감은 지금보다는 전력산업 구조개편 이전에 더 적극적이었다. 당시 만해도 전력회사는 빠른 속도로 늘어나는 전력 소비량과 피크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가능한 신규 발전소 소요를 줄이기 위해 부하관리와 효율향상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적지 않은 비용도 투입했다. 매년 절감성과의 평가검증을 통한 피드백도 과정도 거쳤다. 그러나 구조개편 이후 전력수요를 줄이려는 유인이 줄었고, 십 여년 전부터는 수요관리 투자도 크게 감소했다. 판매사업자인 한전은 그때 그때 수요에 맞추어 공급되는 전력을 구입하는 수동적인 입장에 머무르고 있다. 수요입찰을 통해 가능한 비싼 시간대의 수요를 줄여서 구입비용을 낮추려는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
실상이 이런데도 수요관리는 전력수급계획, 에너지전망, 온실가스감축 등 에너지와 관련된 계획 수립 때 마다 기준수요(BAU)를 크게 낮추는 수단으로 동원된다. 전력부문만 보더라고 수요를 대폭 줄여서 신규설비 소요를 줄이고 운전 중인 화력설비의 이용률을 낮춰 온실가스 감축목표에 맞추겠다는 것이 기본적인 접근방식이다. 지금까지 국가계획을 통해 제시된 에너지절감의 실상을 살펴보면 최근 다섯 차례의 전력수급계획에서 15% 수준의 절감목표를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다. 3차 에기본에서도 거의 20%에 가까운 감축 목표를 제시했다. 국가 온실가스 감축 로드맵의 가장 큰 감축수단도 사실 들여다 보면 에너지절감이다. 그러나 이러한 계획의 실현가능성, 이행에 필요한 비용, 추진을 담보할 만한 시스템이나 거버넌스 체제는 보이지 않는다. 한쪽에서는 온실가스를 줄이자고 외치는데 한쪽에서는 에너지를 펑펑 쓰는 공장들이 산업이라는 명분으로 들어서고 있다.
에너지 절약을 위한 가장 중요한 수단은 무엇보다도 가격기능의 회복이다. 에너지 다소비구조는 낮은 가격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이런 환경에서 낮은 전기요금을 먹고 사는 산업이나 시설이 들어설 곳은 많다. 당연히 전기 다소비 산업이나 설비의 확산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투자자는 신호등이 고장나든 말든 눈에 보이는 신호를 보고 가게 마련이다. 파란 불이 계속 켜져 있는데 언제 바뀔지도 모르는 빨간불을 마냥 기다리지는 않는다. 이제라도 고장난 신호등을 바꾸어야 한다.
에너지 절약을 위해 본격적인 효율향상 프로그램과 체계적인 규제시스템도 당장 도입해야 한다. 체계적인 성과평가 및 M&V 시스템 개발도 필요하다. EERS를 추진한지 수년이 지났지만 아직 이렇다 할 성과가 없다. 수요관리 목표는 갈수록 커지는데 여기에 배정된 예산은 초라하다. 의지와 행동이 맞지 않는다. 제대로 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보급해 절감효과를 높일 수 있는 새로운 정책이 시급하다. 에너지 절감을 위한 규제시스템의 체계화도 필요하다. 그동안 효율기술이나 건물에 대한 기준이나 규제를 통해 적지 않은 성과가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어떤 제도가, 언제, 어디서, 얼마만큼 절감을 가져왔는지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분석은 없다. 최저효율제, 고효율기기 인증과 같은 제도와 여러 절감시책이 시행되고 있지만 국가계획 수립시에 이를 객관적으로 뒷받침하지도 못하고 있다. 이제라도 관행처럼 굳어진 절감 목표설정 방식과 절차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쳐야 한다. 정책목표를 뒷받침할 수 있는 표준화된 기준과 프로그램을 통한 객관적 분석과 평가도 수반돼야 한다. 언제까지 말로만 떠들 것인가. 에너지절감을 위한 진정성 있는 접근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