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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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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칼럼]무너진 개화 질서, 이래도 기후위기론이 사기인가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3.04.09 09:26

온기운 에교협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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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기운 에교협 공동대표

올 봄 한반도에서는 꽃 피는 시기가 전반적으로 열흘 이상 빨라지며 개화 질서가 파괴되는 양상이 나타났다. 원래 벚꽃보다 1주일 가량 앞서 피는 목련이 올해는 벚꽃과 같이 피거나 오히려 더 늦게 피었고 벚꽃은 제주에서 서울까지 시차 없이 전국에서 일제히 만개했다. 3월에 기온이 초여름 수준인 25도 안팎까지 올라가면서 매화, 개나리, 진달래 등도 동시에 꽃망울을 터뜨렸다. 꽃의 개화시계가 고장나 버린 셈이다. 현재의 속도로 지구 온난화가 진행되면 21세기 후반에는 봄 꽃 개화 시기가 2월로 앞당겨질 것이라 하니 한반도가 아열대 기후로 변하는 건 시간 문제다.

문제는 꽃에서 그치지 않는다는다는 점이다. 꽃들이 일찍 피면서 지상보다 아직 온도가 낮은 땅속에서 뒤늦게 태어난 꿀벌들은 제 역할인 수분을 제대로 하지 못할 뿐 아니라 스스로 먹이(꽃)를 구하지 못하는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식물과 곤충간 동조화가 깨지고 있다. 생태계 붕괴는 농작물의 수확 감소와 인류의 식량위기로 이어질 수 있음은 물론이다. 그런데도 기후변화에 무감각한 사람들이나 기후위기를 과학자들의 사기극으로 치부하며 국제사회의 친 환경 노력에 반기를 드는 세력이 존재한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환경보호에 앞장서 온 유럽에서 조차 최근 친 환경 정책에 반대하는 정치세력이 약진하고 있고 ‘녹색반란’에 부딪쳐 각국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 의지도 흔들리고 있다.

기후변화에관한정부간협의체(IPCC)가 지난달 20일 공개한 보고서는 각국의 온난화대책 지연에 대한 위기감을 표출했다. IPCC는 산업화 이전(1850~1900년)에 비해 지구기온이 이미 1.1도 올랐고, 2030년대 전반에는 2100년까지의 억제 목표인 1.5도를 넘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보고서는 그러면서 2035년에 온실가스를 2019년 대비 60%, 2040년에는 69% 감축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전례 없는 대담한 대책을 각국에 촉구한 것이다.

사실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천연가스 가격이 폭등하면서 세계적으로 석탄 의존도가 높아졌고, 유럽을 중심으로 각국의 온실가스 감축 의지가 약화됐다. 유엔 환경프로그램(UNEP)이 지난해 10월 발간한 ‘Emissions Gap Report 2022’에 따르면 국제적 지원이 따르지 않는 각국의 무조건부 NDC(국가 온실가스감축 기여)가 완전히 구현돼도 ‘2030년에 1.5도 상승’ 시나리오보다 배출량이 230억톤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국제적 지원이 전제된 조건부 NDC의 완전한 구현의 경우에도 1.5도 시나리오 보다 배출량이 200억톤을 초과한다. 현재 각국이 유엔에 제출한 NDC 목표는 탄소중립으로 가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정부는 2030년에 2018년 대비 온실가스를 40% 줄이겠다는 NDC를 유엔에 제출했다. 7억 2700만톤에서 4억 3660만톤으로 줄이는 것이다. 2019년과 2020년에는 온실가스가 각각 전년 대비 3.5%, 6.4% 줄었으나 코로나19 팬데믹 직후 위축됐던 경기가 회복되면서 2021년에는 다시 3.5% 늘었다. 온실가스종합정보센터는 지난해에도 온실가스 배출량이 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NDC를 달성하려면 2018년 이후 연 평균 4.17%씩 배출량을 줄여야 하지만 되레 늘고 있으니 NDC가 공염불이 될 공산이 크다.

정부는 지난달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을 통해 온실가스 배출량의 36%(2021년 기준)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산업 부문의 감축 목표를 14.5%에서 11.4%로 낮췄다. 산업계의 반발에 부딪치면서 후퇴한 것이다. 대신 발전 부문의 감축 목표를 44.4%에서 45.9%로 높였으나 구체적 대안이 뒷받침되지 않은 수치만의 상향이다. 문재인 정부 5년간의 탈 원전 정책 때문에 온실가스를 제대로 줄이지 못했고, 전기요금 등 에너지 요금도 ‘정치요금’으로 억제돼 에너지절약을 통한 온실가스 감축 성과도 거두지 못했다.

윤석열 정부는 2030년까지 원전 10기를 계속운전해 안정적 전력공급과 온실가스 감축에 기여하도록 한다는 방침이지만 당장 이달 설계수명이 끝나는 고리2호기의 계속운전 절차는 전혀 진행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적어도 2년간은 운전 정지가 불가피하며, 온실가스 감축 차질은 그만큼 커질 수 밖에 없다. 세계 온실가스 배출 순위 7위로 ‘기후악당’ 소리를 들었던 우리가 이렇게 안이한 대응을 한다면 기후위기는 되돌리기 힘들다. 지구가 파멸에 이르는 것을 바라만 보고 있을 것인가.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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