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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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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인사이트]일본 자동차 산업의 오판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3.03.22 07:50

김필수 대림대학교 교수/김필수자동차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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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필수 대림대학교 교수/김필수자동차연구소 소장


 일본의 자동차산업 수준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세계 최고 수준으로, 일본자동차 업체들은 항상 글로벌 제조업체들의 벤치마킹 대상었다. 필자도 20여 년 전에 토요타의 글로벌 교육프로그램인 토요타 테크니컬 교육프로그램(T-TEP)을 국내에 처음으로 대림대학교에 유치하면서 일본의 선진 자동차 산업을 다양하게 접할 수 있었다. 당시는 토요타의 혁신적인 생산기술인 TPS 등을 기반으로 하는 ‘Just In Time’ 등 다양한 생산 기법이 알려지던 시기였다. 이렇게 해서 당시 ‘토요타 웨이(토요타의 생산방식)’가 세계 자동차 생산의 표준이 됐고 이에 대한 각종 책자가 발간되며 토요타 웨이 열풍을 불러왔다.

우리나라에서는 외제차로 벤츠와 BMW가 대세지만 토요타는 아직도 글로벌 시장을 호령하고 있다. 세계 최고의 기술인 하이브리드차를 중심으로 양적으로도 1위를 달리고 탄탄한 판매네트워크로 해외에서 프리미엄과 가성비로 무장한 한국산 자동차와도 치열하게 주도권 싸움을 벌이고 있다. 이렇듯 자동차 시장의 영원한 맹주로 군림할 것 같았던 토요타도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차로의 시대변화에는 고개를 숙이는 형국이다. 세계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탄소중립 등 친환경 산업으로의 구조개편을 독촉하면서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내연차 시대가 급속도로 저물고 전기차가 대세인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지난해 글로벌시장의 전기차 판매량은 1000만대에 달한다. 같은 해 전체 자동차 판매량이 8000만대인 점을 감안하면 전기차의 판매비중이 10%를 훌쩍 넘어섰다.전기차 시대로의 전환속도는 더 빨라져 2025년에는 2000만대 이상으로 3년만에 2배 넘게 팔릴 전망이다.

이런 가운데 일본은 전기차 시대로의 전환이 늦어지며 산업의 위기감이 감돈다. 토요타는 물론이고 혼다와 닛산도 마찬가지다. 일본 내수 시장에서도 전기차를 구경하기가 힘들다. 연간 신차 판매량이 500만대에 달하는 일본에서 지난해 판매된 전기차는 5만9000대로 겨우 1%를 넘는 정도다. 이에 비해 일본 신차시장의 30% 수준인 우리나라는 지난해 12만대의 전기차가 팔리며 누적 판매량이 40만대에 이른다. 올해는 전기차 판매량이 27만대로 지난해의 2배 이상 늘어날 전망이다. 이는 일본 자동차 회사들이 하이브리드차에 집중한 탓이다.

이렇듯 일본 자동차 산업에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심지어는 중국 등 신흥국에까지 밀리며 침몰할 것이라는 우려마저 나온다. 필자도 일본 도쿄오토살롱 참관 등을 통해 현지의 전기차에 대한 인식이 매우 낮다는 것에 적지 않게 놀랐다. 그래서 현재의 일본 자동차 산업을 갈라파고스에 빗대 ‘재팬 갈라파고스’라는 말까지 나온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일본은 ‘충분한 전기차 기술을 갖추고 있다’는 식으로 과대평가하고 있는 점이다. 하지만 최근 토요타가 내놓은 신형 전기차 bZ4X의 현대차 아이오닉5에 비해 두 단계는 뒤떨어진다는 평가다. 실제로 아이오닉5는 지난해 3월 일본에 재진출하면서 ‘올해의 수입차’로 선정됐을 정도다. 전기차는 ‘우스갯 소리로 개돼지도 만든다’고 하지만 안전이나 시스템의 안전성, 흑자모델 등 다양성에서 큰 기술적 차이가 난다.

토요타가 큰 소리 치는 전고체 배터리 기술력도 시장에서 입증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샘플모델 출시와 다수의 특허 등을 앞세우지만 현 여건에서 토요타의 전고체 배터리의 대량 생산은 2030년에야 가능하다. 한국의 배터리 3사를 비롯해 중국 등에서 시장 선점에 들어간 데다 자동차 제작사들이 ‘내재화’를 선언한 상태라 제품 생산이 뒤늦은 토요타가 시장을 장악하기란 힘들다.이런 가운데 한국에 이어 중국의 전기차들도 일본 내수시장 공략에 힘을 쓰고 있다. 중국의 BYD가 올해초 도쿄오토살롱에서 완성도와 가성비를 앞세운 전기차를 선보이며 일본 시장 진출에 고삐를 조이고 있다.이 차는 주행거리가 400㎞를 넘고 가격과 품질경쟁력도 높다는 평가다. 일본 자동차산업의 쇠퇴는 지난 수 십 년간 세계를 주름 잡은 맹주였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이 전기차 시대 주역이 되기 위해서는 정부차원의 제도적·재정적 지원 확대와 민간기업 차원의 연구개발 및 전문인력 육성에 대한 투자를 게을리 해선 안 된다. 순간의 선택이 산업의 흥망을 좌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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