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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문희 한양대학교 겸임교수/정치평론가 |
"망국 외교, 굴욕 외교, 윤석열 정권 심판하자!" 윤석열대통령의 방일 후 한일정상회담 결과와 강제동원 해법을 비판하는 대규모 시민단체 집회로 연일 뜨거운 분위기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끝내 일본 하수인의 길을…. 역사를 저버린 이 무도한 정권을 그대로 두고 볼 수 없습니다"라고 비판하며 야당도 이에 합세하고 있다. 반면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반일 정서에 기댄 선동의 DNA를 주체하지 못하고 있다"며 "체포안 표결에서 누더기가 된 방탄복을 ‘죽창가’로 땜질하려 한다"고 비난하고 있다.
한국인이 한일문제에 대해 마냥 냉철한 머리를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이성보다 뜨거운 가슴이 먼저 반응하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안중근 의사를 다룬 영화 ‘영웅’을 보며 눈물을 흘리고 어느 새 두 주먹을 불 끈 쥐게 되는 우리 국민이 가장 화나는 대목이 바로 제대로 사과하지 않는 일본의 뻔뻔한 태도이다. 그러나 한번 더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한국을 둘러싼 지정학적 맥락 하에서 냉철하게 한일문제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먼저 국제정치로 고개를 돌려보자.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주도 하에 국제사회의 평화를 유지해오던 자유주의 국제질서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 중국의 경제발전을 도우면 민주화가 촉진되고 결국 국제적 평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 믿고 중국을 국제사회로 적극 끌어내고 지원했던 미국의 셈법과 달리 중국은 강력한 라이벌로 등장해 미·중간 새로운 패권경쟁과 신냉전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독자적으로 중국의 도전을 막는 것이 힘겨워진 미국은 이제 한미일, 쿼드, 인도태평양전략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동맹과 파트너들의 협력을 바탕으로 중국의 도전을 막으려 한다. 지정학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미국의 인도태평양전략에서 제1도련선 국가들의 중요성이 상승한 반면 한일관계 악화로 인한 한국의 전략적 가치는 약화된 측면이 있다.
지난 박근혜정부와 문재인정부에서 대일관계는 역사, 영토 분쟁 등의 문제에서 한 걸음도 나가지 못했다. 특히 문재인정부 시기에는 양국관계가 더욱 악화되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후 첫 광복절 연설에서 "진정성을 갖고 대화하겠다"며 일본과의 관계 개선에 대한 의지를 보이면서 일본과 대립을 피하는 징용 배상방안을 찾고 있었다. 그 해답으로 내놓은 것이 ‘제3자 대위변제 방식’이다. 이 대안이 국민의 눈높이와 감정에는 매우 불만족스럽고 자존심을 건드리는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안보, 경제, 중국의 부상에 따른 신 국제질서 재편 등에서 ‘공동의 이익’을 풀기 위해 협력해야만 하는 대내외적 압력에 노출된 한국정부가 현실적으로 취할 수 있는 운신의 폭은 그리 넓지 않다.
일본은 가깝고도 먼 참으로 불편한 이웃이다. 그러나 아무리 마음에 안 든다고 지정학적으로 떼려야 뗄 수 없는 처지이다.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감정’에 치우친 외교정책을 구사하는 것이다. 김영삼 대통령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는 발언이나 문재인 정부 때 ‘죽창가’를 내세우는 맹목적인 민족주의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적 이해득실에 따라 민족주의 감정을 동원하고 소비하는 무책임한 정치인들은 경계해야 한다. 한일문제는 일도양단식의 시원한 해결은 어렵고 인내와 끈기가 필요하다. 오늘날 한국의 위상은 국제사회에서 일본과 어깨를 겨루는 경제대국이다. 자신감을 갖고 맹목적인 반일(反日)이나 숭일(崇日)에서 벗어나 극일(克日)의 단계로 나아가야 할 시점에 서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보여주듯이 국제정치는 ‘naked power’가 지배하는 약육강식의 세계이다. 이 속에서 외교는 냉철한 머리로 국익의 관점에서 실리를 찾아 나가는 끊임없는 여정이다. 최근 한동훈 법무장관이 출국길에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손에 들고 간 사진이 화제가 되었다. 이 책에 나오는 ‘투키디데스의 함정’은 신흥강대국의 등장 과정에서 패권을 둘러싼 충돌 가능성을 경고하고 있다. 오늘날 미중 패권경쟁 하에서 한국외교가 풀어내야 할 복합방정식의 현주소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장면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방일과 강제동원 해법 역시 이런 구조적 맥락에서 평가해야 한다. 윤대통령의 이런 행보를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쌍수를 들고 반기는 미국의 모습을 보면 그간의 물밑 진행상황이 충분히 짐작된다. 다만 외교는 실리 못지않게 모양새나 명분도 중요하다. 외교는 상대가 있는 것이고 사람 간의 관계처럼 국가 간에도 ‘감정’이나 ‘정서’가 존재한다. 이 감정을 별 게 아닌 것으로 치부하다간 큰 낭패를 볼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는 가슴 아픈 모진 세월을 온몸으로 견뎌낸 위안부 할머니들과 강제징용 피해자들, 그리고 마음 상해있는 국민을 설득하고 이해를 구하는 섬세한 배려를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한일관계 정상화’라는 숙제는 결코 한국 혼자 풀 수 없다. 한국이 먼저 주도적이고 파격적인 행보를 보여준 만큼 이제 공은 일본에게 넘어갔다. 지금까지 일본의 행태로 보아 틈날 때마다 과거 역사를 반성하는 성숙한 독일의 모습을 기대하긴 어렵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이 통 크게 반을 채워 내민 물 컵에 성의 있게 남은 절반의 물을 채우는 것은 일본의 몫이다. 계속 부끄러움을 모르는 역사의 소인배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열린 미래로 함께 나아가는 이웃이 될 것인가는 이제 일본의 선택에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