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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 |
요란한 빈 수레가 따로 없다. 중대재해 감소에 효과가 없는 것을 넘어 산업현장 안전에 많은 부작용을 초래하면서 목적으로 한 처벌도 이뤄지지 않고 있는 중대재해처벌법을 두고 하는 말이다. 지난 5년간 산재예방행정 인원과 예산이 2.5배나 늘어난 점을 감안하면 이 법이 중대재해를 줄이는 쪽이 아니라 늘리는 쪽으로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엄벌로 공포감을 조성해 재해를 크게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한 것 자체가 단선적이자 순진한 발상이다. 그렇게 해서 안전수준이 올라갈 것 같았으면 북한이나 중국 등은 진작 안전 선진국이 됐어야 한다.
중대재해처벌법을 밀어붙인 정치인이나 공무원 중 안전원리와 현장안전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었는가? 다른 건 몰라도 안전에는 아마추어였을 게다. 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이 법을 만들었나 되묻고 싶다. "선무당이 사람을 잡는다."는 말은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싶다. 복잡한 사회문제를 해결하려면 의도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정확한 현실인식과 정교한 방법론으로 뒷받침되지 않으면 설령 의도가 선하더라도 정반대 결과를 낳는 경우가 적지 않다. 문제는 의도도 선하지 않고 들끓는 여론 잠재우기에 급급했다는 점이다. 부작용이 양산되는 건 예견된 일이었다.
중대재해처벌법의 대표적인 부작용 몇 가지만 짚어 보겠다.이 법 제정으로 산업안전보건법 등 기존 안전관계법 위반에 따른 처벌에 대해선 상대적으로 무감각해졌다. 발등에 떨어진 불 끄는 데 집중하느라 많은 비용을 들이지만 실질적인 안전관리는 오히려 후퇴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게다가 사고사망에만 집중하다 보니 직업성 질환과 일반 산업재해에 대한 관심이 떨어진다. 최근 직업성 질환과 전체 산업재해의 지속적인 증가가 이를 방증한다.
안전부서의 외형 확대로 현업부서의 안전역량을 강화하는 노력이 등한시되고 품질·환경업무와의 분절화가 야기되는 문제도 생기고 있다. 안전전담조직을 강제하다 보니 현업부서의 안전책임은 되레 약화되고 다른 업무와의 연계성이 파괴되는 것이다. 안전관리 비효율과 기능 중복이 초래될 수 밖에 없다.
이 법 지지자들에게 여러 의무주체가 착종되는 상황에서 누가 안전조치를 해야 할지에 대해 물어 봤다. 답변을 못하거나 사람마다 답변이 제각각이었다. 같은 질문을 고용노동부에도 했지만 구렁이 담 넘는 듯한 답변 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재해예방의 실효성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엄청난 비용을 들이면서도 재해가 줄지 않는 이유다. 예측 가능성과 이행 가능성이 없다 보니 실효적인 안전관리는 온데간데 없고 외부기관의 형식적 컨설팅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문제는 컨설팅을 의뢰하는 기업이 형사처벌 회피에 주된 관심이 있을 뿐이라면 컨설팅이 재해예방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실제로 엄청난 자원이 허투루 사용되고 있다. 그 막대한 비용을 현장의 재해예방에 사용한다면 요긴하게 쓰일 텐 데 말이다. 안타깝기 짝이 없다.
법이 처벌수준은 높고 의무내용은 불명확하다 보니 수사기관의 권한만 하늘을 찌를 듯 커졌다. 가뜩이나 권한이 많은 검찰 등 수사기관의 자의적 법집행에 날개를 달아준 꼴이다. 정치권은 말로는 수사기관의 권한을 축소해야 한다면서 실제로는 이들에게 막강한 힘을 실어주고 있다. 지난 1월 고용부는 중대재해처벌법령 개선 TF를 꾸렸다. 이해하기 어려운 건 TF에 안전 전문가는 단 한 명도 없고 주로 형법 전문가로 채워져 있다는 점이다. 안전을 도외시한 처사이다. 안전기준은 손대지 않고 벌칙만 조정하겠다는 속셈이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고용부 스스로 이 법이 처벌이 목적이라는 걸 자인한 셈이다. ‘올바른 개정안이 나오긴 틀렸고 개악안이 나올 수 있다’는 시각이 지배적인 이유다.
이 법을 신주 받들 듯 하는 이들은 현실에서 초래되고 있는 많은 부작용에 대해 눈을 감고 애써 부정하려 한다. 이들의 세계에는 반성과 성찰이 없는 것 같다. 한 국가의 법을 과학과 이성이 아닌 감성과 분노에 편승하여 제정한다는 건 무책임의 극치이다. 21세기 법치국가에서 이런 허접한 법을 두고 있다는 것은 국제적으로 망신이 아닐 수 없다. 정치권과 정부의 진정성 있는 책임감을 기대한다. 현장 노동자들도 거창하고 요란한 구호가 아니라 실효성 있는 해법을 내놓길 바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