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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한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명예교수/지속가능과학회장 |
최근 싱가포르 방문 중 이용한 택시의 운전기사는 공공분양 아파트인 HDB(주택개발청) 아파트에서 편안히 살고 있다고 했다. 그의 3대 대가족인 일곱 식구는 3침실형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데, 부부, 자녀 2인, 그리고 어머니와 여동생, 식모가 각각 한 침실에 거주한다. 그 아파트 가격은 약 4억 정도라고 한다.
존 추 감독 영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에는 싱가포르 거부들의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세계가 유감없이 그려지고 있다. 최고 부자의 유력한 상속자 남 주인공 닉 영의 사촌인 아스트리드 테오는 남편과 이혼하면서 자기가 가진 14채의 고급 아파트인 콘도미니엄 중 한 곳으로 이사하겠다고 말한다. 여주인공 레이첼의 대학 시절 룸메이트인 펙린 고는 베르사이유 거울의 방과 트럼프의 욕실에서 영감을 얻은 대저택에서 살고 있다. 싱가포르에서 민간 주택인 콘도미니엄과 대저택에는 주로 부자들이 산다.
주택 대란과 사회적 갈등이 증폭되고 있는 시점에서, 두 스토리를 되새겨보자. 싱가포르 국민들의 대다수(90%이상)는 자기 집을 소유하고 있다. 전체 주택수의 70%이상을 차지하는 HDB 덕택이다. 초대 총리인 리콴유는 "땅은 좁지만 누구나 살 집이 필요하다"라고 선언하고 자치정부를 수립한 1959년 이후 곧바로 1960년에 HDB를 설립하고 공공분양주택 대량 공급에 나섰다. 이 정책은 현재까지 일관성 있게 추진되어 오고 있다. 한국은 자가보유율 60%다. 국토부의 주택실태조사에 의하면, 조사 대상자의 80% 이상이 주택 소유를 원한다. 이웃 대만은 자가보유율이 90%를 넘었다.
싱가포르 사회에서는 펙린 고의 주택과 같은 호화 주택이나, 다주택자에 대한 거부감이 우리사회와 같지는 않다고 보아야 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호화주택이나 다주택자들이 다수 국민의 주거권을 침해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고급 민간 주택들은 부자들만의 리그이다. 다수 국민들은 공공 주택의 울타리에서 보호되고 있는 것이다. 대다수 한국 주택은 민간 주택이다.주택 시장에서 고가 주택의 가격이 상승하면 저가 주택도 동조화하여 상승하게 된다. 고가 주택이 서민용 저가 주택에 영향을 주는 것이다. 그래서 강북 서민들의 주거 보호를 위해서라도 강남권에 각종 규제를 겹겹이 쌓고 있는 것이다. 싱가포르에 비하여 한국 주택 소유의 가장 큰 특징은 민간 임대주택의 비중이 크다는 것이다.
싱가포르 민간 임대주택비율 5%인데 반하여 한국은 약 32%다. 싱가포르 임대주택의 비중도 한국보다 매우 낮다. 공공임대주택 비율은 한국이 약 8%, 싱가포르는 약 5%이다. 누구나 공공 주택 공급을 확대해야 하는 것에는 동의할 것이다. 문재는 ‘임대용으로 할 것이냐, 분양용으로 할 것이냐’다. 문재인 정부는 임대용 중심(10% 이상)의 공공주택 정책을 추진했다. 공공임대주택 중심 정책은 유럽에서 이미 1980∼1990년대에 그 약효가 다 떨어졌다. 유럽 사회는 그 정책으로 인하여 과도한 공공 재정 부담을 겪었으며, 자아 실현이라는 민주사회의 가치 달성에도 미흡한 것으로 보았다. 싱가포르의 리콴유 총리는 영국에 유학하면서 유럽의 사회 민주주의를 경험했지만, 선견지명 있게, 창의적으로 ‘주택 소유 사회’를 싱가포르의 핵심 비전으로 설정했고,대성공했다.
우리 사회의 주택 정책 목표는 ‘주택 소유 사회’가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공공임대주택 비율을 5% 수준에서 적정 관리하고 공공분양주택 중심의 정책 전환이 중요한 시점이다. 중장기적으로 2030년 자가보유율(80%)을 설정하고 민간자가율(70%), 민간임대주택비율(15%), 공공분양주택비율(10%), 공공임대주택비율(5%)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싱가포르는 빈부격차가 매우 심한 나라다. 사회적 지속가능성에서도 ‘형평성’보다는 ‘삶의 질’을 우선시한다. 그런데도 주택 문제로 인한 계층간 갈등은 그리 심하지 않다. 공공분양주택인 HDB 때문이다. 우리 사회도 자가보유율을 높여야 하며, 부담가능한 공공분양주택을대량 공급해야 한다. 그럴 때에 주택 문제로 인한 사회 계층간의 갈등도 완화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