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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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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호 칼럼] 확전 치닫는 우크라이나 전쟁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3.01.30 10:30

이상호 대전대학교 정치외교학 전공 교수

이상호교수

▲이상호 대전대학교 정치외교학 전공 교수


최근 미국과 독일 등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은 러시아와 전쟁에서 고전 중인 우크라이나에 서방의 최신예 주력 전차를 공급하는 결정을 했다. 러시아와 갈등이 확대될 수 있기 때문에 많이 고민했지만 결국 전쟁 장기화 가능성에도 러시아에 강력하게 대응하는 선택을 했다. 이 결정에는 미국과 독일 주도로 영국, 폴란드, 포르투갈, 스페인, 덴마크, 핀란드, 노르웨이, 프랑스 등 많은 나토 회원국이 동참했다.

M-1 에이브럼스, 레오파드 2, 챌린저 2 전차 등 서방이 보유한 강력한 주력 전차 약 176대를 우크라이나에 양도할 예정이다. 이외 과거 공산권 국가지만 현재 나토 회원국인 폴란드 등이 보유하고 있는 구소련·러시아제 전차도 추가 제공할 예정이어서 우크라이나는 최종적으로 약 350대 이상의 전차를 신규 보유하게 된다. 이를 두고 우크라이나가 전쟁에서 주도권을 장악할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기대와 함께 궁지에 몰린 러시아가 전쟁을 유럽 전역으로 확대하여 제3차 세계대전을 초래하는 잘못된 판단이란 주장이 충돌했다.

이 결정으로 우크라이나의 방어 능력이 강화될 것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러나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와 대결에서 우위를 확보하거나 전쟁에서 승리하지는 못할 것이다. 아무리 대규모 고성능 전차 돌격으로 러시아군에 피해를 줘도 러시아군을 괴멸시키지는 못할 것이다. 오히려 제공권을 확보하지 못한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의 역공으로 막대한 피해를 볼 수 있다. 현대전의 승리는 무엇보다 전폭기, 공격헬기 등이 주도하는 제공권 확보가 중요하며 제공권이 없으면 아무리 강력한 수백 대의 전차부대도 단 한 번의 폭격으로 전멸하는 불상사가 발생한다. 우크라이나는 여전히 러시아에 지상 전력도 열세고 제공권도 확보하지 못했다.

반면 이런 서방의 결정이 러시아를 크게 압박하여 반발을 초래할 수 있다. 우선 우크라이나의 전력이 보강되어 전장이 고착화되면 전쟁의 장기화가 불가피하다. 이 경우 러시아의 피해가 크게 확대될 것이다. 우크라이나 동부를 확보한 러시아가 이들 지역을 포기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특히 러시아가 국가 전략 요충지로 생각하는 크림반도가 위협을 받으면 러시아는 전술핵 사용을 고려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러시아는 서방이 우크라이나를 지원하여 중장기적으로 러시아의 국력과 잠재력을 훼손하려는 의도를 잘 알고 있다. 서방이 이 기회에 러시아의 국력과 영향력을 확실히 소진한다면 앞으로 유럽에 대한 러시아의 위협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충분히 논리적인 판단이다. 안타깝지만 우크라이나 영토와 국민을 희생하여 유럽과 러시아 사이의 파멸적인 전쟁을 회피하고 유럽의 안전을 확보하는 것은 비도덕적일 수 있지만, 충분히 가능한 선택이다.

이를 알고 있는 러시아는 전력이 더 손실되기 전에 발트 지역이나 폴란드 등 나토 회원국을 침공하여 서방에 전면전을 강요하는 선택을 할 수 있다. 이 경우 확전을 두려워하는 서방과 타협을 통해 러시아가 유리한 환경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고 유럽을 길들이는 좋은 선택이라는 판단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러시아는 1천만 명 전사(戰死)라는 엄청난 인명 피해를 초래했던 제2차 세계대전 방식의 국가 총력전을 개시하여 서방에 막대한 희생을 강요할 것이다.

핵무기 사용도 적극 고려하여 전쟁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운영할 가능성이 크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제3차 세계대전을 선택하는 게 궁극적으로 더 유리하다고 오판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크게 보면 서방 자유민주주의와 러시아, 중국, 이란, 북한 등 권위주의 독재 세력과의 대결이다. 서방이 우크라이나를 돕고 중국, 이란, 북한이 러시아를 군사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러시아, 중국 등 이들 국가는 이미 느슨한 동맹을 구축했고 천연자원, 핵과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 영토 분쟁 등의 도구를 공유하며 서로 협력하고 있다. 반민주주의 세력은 동북아시아, 중동 등 전 세계에서 전방위적으로 세력을 확대하고 있고 서방도 이에 대응하는 각종 대응 체계를 만들고 있다. 인도와 태평양 지역 국가를 묶은 쿼드(QUAD), 영국과 오세아니아, 미국 등 유럽과 아시아·태평양 전역을 커버하는 오커스(AUKUS) 등이 그 사례이다. 서방은 이들 반민주주의 세력이 경제적·군사적으로 더 강해지는 것을 막아야 국제사회 평화 유지가 가능하다고 판단한다.

이미 제3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는지 모른다. 사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우크라이나나 유럽만의 문제가 아니다. 6.25 한국전쟁이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서방이 공산주의 확산을 저지하기 위한 공동 노력의 상징이었듯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도 상징적 사건이다. 이번 서방의 전차 공급 결정은 러시아가 전쟁을 제3차 세계대전으로 확대할 만큼 자극하지는 않되 러시아의 잠재력에 최대한 타격을 주어 중장기적으로 반민주주의 세력의 규합과 확산을 억제하려는 조심스러운 시도로 볼 수 있다. 적어도 가장 큰 무력을 가진 러시아가 반민주주의 세력 진영의 주도 국가가 되는 것은 막을 수 있을 것이며 이 세력의 빠른 확산을 견제할 시간을 벌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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