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 |
‘고비용 저효과’, ‘관료적 형식주의’, ‘보여주기’. 산업안전을 두고 현장에서 많이 나오는 말이다. 우리나라 산업안전이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었는가. 어느 때부터인가 산업안전이 불합리의 대명사이자 냉소의 대상이 되었다. 가장 큰 책임은 전문성과 진정성 없는 정부에 있지만, 기업·학계·로펌·컨설팅기관의 잘못도 그에 못지 않다.
많은 기업들은 중대재해처벌법이라는 발등의 불을 끄기 위해 이 법을 ‘근로자’ 보호를 위한 법이 아니라 ‘경영책임자’ 보호를 위한 법으로 전락시키고 있다. 안전역량을 끌어올리기보다는 치장하는 데 엄청난 돈을 쏟아 붓고 있다. 외부기관에 과도하게 의존하다 보니 자율역량은 향상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현실과 맞지 않는 보여주기 대책이 남발되면서 실질적 역량은 되레 후퇴하는 모습마저 보인다.
학계에도 학자라는 타이틀이 무색할 정도로 안전에 무지한데도 정부와 기업을 상대로 허장성세하는 자들이 적지 않다. 이들은 전문성이 없다 보니 엄벌이 곧 정의라는 프레임에 갇힌 채 정부의 들러리가 되어 왔다. 교수라는 직함을 돈벌이에 활용하는 인사들도 적지 않다. 자신의 무능을 이념으로 가리려는 학자들도 있다. 진보 코스프레를 하면서 안전에 대한 허황된 주장으로 혹세무민하는 자들이야말로 꼴불견 중에서도 압권이다. 진보를 오염시키고 진보에 대한 환멸을 불러일으키는 몹쓸 자들이다.
모름지기 학자는 지식인으로서 정부를 비판하고 기업을 견인해야 한다. 일찍이 막스 베버는 학문에 대한 역량과 사명감을 갖고 있지 않는 자들은 학자가 될 생각을 접으라고 일갈했다. 학문적 열정과 전문성으로 무장하는 것은 산업안전 분야 학자도 그 예외가 될 수 없다.
로펌은 중대재해처벌법으로 가장 신나 있다. 문제는 상당수 로펌이 산업안전에 대한 기본지식도 없으면서 산업안전 전문가 행세를 하며 공포 마케팅으로 중대재해처벌법을 횡재 수단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일부 로펌은 노동부 출신의 변호사를 전면에 내세우면서까지 돈벌이를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있다. 직업윤리라곤 찾아볼 수 없다. 산업안전의 문외한을 대표선수인 양 내세우는 것은 법률시장을 혼탁하게 하는 것이자 스스로의 위상을 훼손하는 일이다.
로펌은 자신들에게 특화된 전문영역에 충실해야 한다. 처벌을 위해 자의적인 법집행을 일삼는 수사기관으로부터 피의자의 인권을 보호하는 일이 정작 로펌이 집중해야 할 일이다.
안전컨설팅시장은 최근 하향평준화 현상이 뚜렷하다. 무늬만 전문기관일 뿐 의뢰하는 기업보다도 전문성이 못한 컨설팅기관들로 넘쳐나고 있다. 이들은 중대재해처벌법을 배경으로 기업들의 ‘묻지마’ 컨설팅 분위기에 편승하면서 내용적으로 빈약하기 짝이 없는 컨설팅에 ‘몰빵’하고 있다. 당연히 오래 갈 수 없다. 명실 공히 안전에 관한 전문성을 갖춘 기관으로 성장해야 컨설팅기관으로서 지속 가능하고 산업안전 발전의 밑거름이 될 수 있다.
산재예방선진국과 비교하여 사회적으로 엄청난 자원이 산업안전에 투입되고 있지만, 안전역량은 올라가지 않고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낭비되고 있다. 현장작동성을 도외시한 대책이 쏟아지면서 현장의 안전이 곪아가고 있다. 새해에는 이러한 뒤틀림이 바로 잡힐 수 있도록 산재예방시스템이 정상화되어야 한다. 국가적으로 막대한 비용을 들이고도 산업재해가 줄지 않고 있는 상황의 심각성을 깨닫고 그 원인을 밝히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정부가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하면 단기간엔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문제가 고착화될 수 있다.
산업안전의 실질적 발전을 위해선 정부를 위시하여 산업안전 관계자들 모두 환골탈태해야 한다. 염불보다 잿밥에 관심이 많은 인사들은 산업안전 시장에서 퇴출되도록 하고, 전문성이 없는 자들이 전문가 행세를 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이럴 때 비로소 산업안전 분야가 진정성을 갖춘 전문가들로 넘치고 보람 있게 일하는 영역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이런 방향으로 분위기를 바꾸는 데 정부부터 앞장서야 한다. 난마처럼 꼬인 작금의 상황에 정부가 가장 큰 책임이 있는 만큼 결자해지해야 한다.
새해에는 산업안전이 관계자들의 잇속 챙기기나 보여주기 수단이 아니라 근로자들의 실질적 보호수단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