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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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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호 칼럼] 범세계적 군비증강과 한국의 고민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2.12.08 10:02

이상호 대전대학교 정치외교학 전공 교수

이상호교수

▲이상호 대전대학교 정치외교학 전공 교수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전 세계 여러 국가가 군비 증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점령될 경우 러시아와 직접 국경을 공유해야 하는 폴란드의 경우 한국에서만 약 40조 원에 달하는 무기를 중장기적으로 구입하기로 하고 그중 구매가 확정된 FA-50PL 경공격기 구매 금액 4조1700억 원 중 30%인 1조 2000억 원을 선수금으로 납부하며 정시 납품을 독촉했다. 이는 통상 10% 정도의 선수금을 납부하는 관행을 깬 파격적인 행동으로 폴란드는 그만큼 신무기 도입이 절박한 상황이다. 한국은 함께 계약한 K-2 전차 10대와 K-9 자주포 24문을 계약 두달만인 6일 납품하며 폴란드의 기대에 부응했다.

독일의 134조 원 군비 증강안은 이미 의회를 통과했고 2024년까지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의 2%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루마니아는 2.5%로 증액을 목표로 하는 등 과거 러시아의 위성 국가였던 여러 동유럽 국가의 군비 증강도 가속화하고 있다.

특히 이번 전쟁에서 러시아군 무기와 장비의 성능이 예상보다 부실하다는 사실을 확인한 이들 국가는 실전에서 기량을 발휘한 서방·나토 기준 장비로 빠른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나 독일 등 전통적인 무기 수출 강국이 군비축소로 인한 생산 능력 저하로 여러 나라가 요구하는 장비를 정시에 공급하지 못하면서 북한과 대결을 염두에 두고 장기간 실전에서 검증된 우수한 무기체계를 개발해온 한국의 방산 업체가 전례 없는 호황을 맞고 있다.

일본도 지난 45년 동안 유지해온 방위비 ‘GDP 1%’ 룰을 깨고 2%까지 증액하기로 했다. 이 목표가 실현되면 일본 방위비 지출은 미·중에 이어 세계 3위 수준으로 늘어난다. 특히 중국의 확대되는 위협과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이 일본을 자극했다. 일본의 군비증강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은 "일본 열도 머리 위로 (북한) 미사일이 날아가는데 국방비를 증액하지 않고 그냥 방치할 수는 없지 않을까 추측한다"고 견해를 밝히면서 반대 의견을 나타내지 않았다.

이미 세상은 코로나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리면서 많이 험악해졌다. 팬데믹 기간 몸집을 불린 중국은 미국과 갈등을 초래하면서 미·중 대결이 신냉전 구도로 발전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중국과 러시아가 밀접하고 북한과 이란과 같은 불량국가들이 여기에 동참했다. 북한은 핵과 미사일 위기 확산, 이란은 중동에서 전쟁 위기 조장과 자국민 탄압 등의 만행을 서슴지 않았다.

국제사회가 팬데믹 이후 경제 침체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초래된 에너지와 식량 위기 및 고도의 인플레이션으로 고통받으며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동안 이들 국가는 서로 도우며 자신의 입지와 세력을 강화했다.

이런 도전에 대해 서방 여러 나라의 급격한 군비증강 노력은 당연하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면 지금보다 국제사회 위기가 더 고조될 것이기 때문이다. 과거 냉전이 미국과 소련이라는 두 초강대국의 대결이었다면 이번에는 미국·유럽·일본·한국 등 전통 강자 및 경제 대국이 한 축을 이루고 러시아·중국 및 이에 동조하는 이란과 북한 같은 힘 센 불량국가가 블록을 형성하여 대결하는 범세계적 세력 다툼이 될 것이다.

신냉전 시대 신 서방와 신 동방 세력이 격돌하는 양상이며 과거보다 더 첨예하게 대결하는 초냉전시대의 서막이다. 제1차 세계대전의 비극을 초래한 유럽의 복잡한 동맹 구도가 전 지구로 확대된 모습으로 이 난해한 퍼즐이 꼬이면 제3차 세계대전이 촉발될 수 있다.

현재 한국은 신냉전 상황의 수혜자이다. 최근 급증한 방위산업 수출은 반도체, 자동차 등 부진한 한국 주요 산업 대신 어려워진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한국의 지속적인 군사 기술을 향상과 전력 증강을 도와주는 긍정적인 요소이다. 이는 한국이 서방 세력권 안에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한국이 확실한 서방의 일원이라는 확신은 없다.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발생하는 정체성 위기 때문이다. 이전 좌파 정부는 중국·북한을 추종하고 서방의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를 배격했다. 이런 좌 편향 성향을 수정하려는 현 정부의 노력은 반정부 세력에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어 성공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한국은 범세계적 세력 대결의 최일선에 서 있다. 미래 인도·아시아지역에서 전쟁은 한반도를 불지옥으로 만들 수 있다. 6.25 한국전쟁에서 400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한반도의 다음 전쟁은 이보다 훨씬 많은 사상자가 발생할 것이다. 한국 정부와 국민은 최선의 선택, 아니면 최악을 회피하는 현명한 선택을 해야 하지만, 정치 부재와 정쟁으로 항상 몸살을 앓는 한국이 어떻게 이런 위기를 회피할지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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