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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 |
이태원 참사에 대한 국정조사 여부를 둘러싸고 여야 간에 입씨름을 벌이고 있다. 문제는 여야 모두 염불에는 관심 없고 잿밥에만 관심이 있다는 점이다. 야당은 정치적 공세의 수단으로 이용하려 하고 있고, 여당은 관계자에 대한 저인망식 수사로 수세적 상황을 하루라도 빨리 모면하려는 것 같다. 진정성 없이 정치적 이해득실만 따지는 것은 그간의 많은 참사에서도 반복되어 왔다.
야당은 국정 ‘조사’라는 외피를 썼지만 사실 정치적으로 공격하고 책임을 추궁하는 데 주된 목적이 있는 것 같다. 여당은 처벌을 통해 물타기를 하면서 야당의 공격을 수세적으로 방어하는 데만 급급하지 대응의 진정성은 통 보이지 않는다.
사고수사는 책임추궁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참사의 심층적인 원인을 파악하고 이를 토대로 재발방지대책을 수립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재발방지에 초점을 맞춘 사고조사를 별도로 진행해야 한다. 국정조사도 조사의 일종이긴 하지만 그 성격상 전문성과 객관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당파성을 떠나 전문가들이 중심이 된 특별사고조사위원회를 설치·운영하는 것이 타당하다.
사고조사를 할 경우 그 성과를 달성하기 위해선 다음과 같은 원칙이 충족될 필요가 있다. 첫째, 독립성의 원칙이다. 사고가 발생한 경우 그 사고원인을 둘러싸고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착종하게 된다. 어떤 이해관계자에도 치우치지 않는 공평하고 중립적인 사고조사가 수행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이다. 공평하다고 인정된 사고조사이면, 그 조사결과도 설득력을 가진다. 이것은 사고에 의해 실추된 국민으로부터의 신뢰를 회복시키는 것으로도 이어진다. 이를 위해선 사고조사 담당기관이 행정기관, 정치권 등으로부터 고도의 독립성을 확보해야 한다.
둘째, 전문성의 원칙이다. 설령 조사가 공평하고 중립적으로 이루어지더라도, 전문적이고 숙련된 자가 조사를 담당하지 않으면, 공연히 조사시간이 많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조사결과도 정확성, 타당성을 잃을 수 있다. 이런 사태에 빠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선, 조사는 사고조사에 숙련된 전문가들에 의해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셋째, 공개의 원칙이다. 조사에서의 객관성, 중립성을 담보하기 위해선, 그리고 조사의 결과를 관계자가 활용하여 안전의 향상에 기여하도록 하기 위해선 조사과정과 결과가 관계자뿐만 아니라 국민 일반에게 공개될 필요가 있다. 조사과정의 공개는 유족의 "사고의 전체 모습과 원인을 알고 싶다"는 강한 바램에 응하는 것이기도 하다.
넷째, 교훈화의 원칙이다. 조사에 의해 얻어지는 사실과 지식은 사회적 자산이 되어 교훈화돼야 한다. 즉, 사고원인이 된 여러 요인에 대한 개선대책이 마련돼 실시될 필요가 있다.
이태원 참사를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우리 사회의 사고 예측능력을 높여야 한다는 점이다. 엄벌을 통한 공포감 조성보다 예방의 사각지대를 찾고 예방기준의 실효성을 높이는 것이 훨씬 더 정의로운 일이다. 처벌도 필요하지만, 처벌은 적정 수준이면 된다. 예측능력을 높이는 일은 대중적 인기도 별로 없고 쉽지 않지만 끊임없이 지속돼야 한다. 한 사회의 안전수준은 예측능력이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치권은 그간 사회의 위험감수성을 높이는 일은 소홀히 하고 들끓는 여론을 잠재우는 데 가장 손쉬운 방법인 엄벌에만 과도하게 의존해 왔다. 그 화룡점정이 중대재해처벌법이다. 그 점에서 여야 모두 이번 사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엄벌에 몰빵할 시간의 일부를 예방 사각지대를 찾는 데 할애했더라면 이번 참사를 막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정확한 사고조사는 피해자와 유족의 정신적 치유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 특히 유족은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이 발생하게 되었는지, 도대체 원인은 무엇인지 등 몹시 괴로운 생각을 계속해서 품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 사랑하는 사람을 빼앗긴 분노는 간단히 치유될 건 아니다. 사고원인을 정확하게 아는 것은 피재자와 유족들을 치유하는 출발점이다.
그간 우리 사회는 사회적 참사로부터 참된 교훈을 이끌어내지 못하다 보니 제대로 배우지도 못했다. 이번 이태원 참사에 대해서도 책임을 추궁하는 데만 급급하고 희생양 만들기로 면피하려는 꼼수를 부린다면, 당장 여론을 잠재우고 표에 도움은 될지 모르지만, 이는 고인들을 두 번 죽이고 유족에게 몹쓸 짓을 하는 것이다. 물론 역사의 심판에서도 자유로울 리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