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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국생명. |
[에너지경제신문=나유라 기자] 국내 보험사가 5억 달러 규모의 외화 신종자본증권 중도상환(콜옵션)을 실시하지 않기로 하면서 채권시장 투자심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가뜩이나 주요국 중앙은행의 고강도 긴축과 함께 레고랜드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리스크(강원중도개발공사 회생 신청 사건)로 단기자금시장 경색 이슈가 불거진 가운데 흥국생명의 콜옵션 미실시로 투자심리가 악화되면서 달러 조달시장도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다.
◇ 5년 만기 외화 신종자본증권 미실시 결정
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흥국생명은 이달 9일로 예정된 5억 달러 규모의 외화 신종자본증권에 대해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기로 했다.
앞서 흥국생명은 2017년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하면서 오는 9일 콜옵션을 행사하기로 했다. 이 회사는 이를 상환하기 위해 지난 9월 7일 3억 달러 규모의 신종자본증권과 1000억원 규모의 원화 후순위채를 신규로 발행하기로 했다. 다만 최근 미국발 금리 인상, 강달러 지속 등으로 시장 변동성이 커지자 콜옵션 행사를 연기하기로 했다.
원/달러 환율이 2017년 신종자본증권 발행 당시 1120원 수준에서 지난 9월 이사회 결의일 기준 1370.30원으로 높아진 점도 이번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 해당 신종자본증권의 만기는 30년으로, 2047년 11월 9일이 최종 만기다. 이번 콜옵션이 행사되지 않았다고 해서 채무불이행(디폴트)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발행사가 져야 할 법적인 책임도 없다. 신종자본증권 이자지급 단위가 6개월인 점을 고려할 때 흥국생명은 내년 3월께 시장 상황을 고려해 다시 신종자본증권 발행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그간 5년마다 기업들의 신종자본증권에 대한 콜옵션을 행사하는 것이 관행처럼 여겨졌다. 발행사들도 투자자와의 신뢰를 위해 조기행사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는 점에서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미국과 유럽의 경우 경제적인 이유로 신종자본증권 콜 행사를 하지 않는 사례가 종종 있었지만, 국내 금융권에서는 이러한 사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실제 신종자본증권에 대한 콜옵션이 미행사된 사례는 2009년 우리은행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당시 우리은행은 콜옵션 미행사로 자금조달을 둘러싼 우려가 커지자 다음 상환기일에 콜을 이행했다.
유승우 DB금융투자 연구원은 "미국, 유럽 등에서는 펀더멘털에 문제가 있지 않는 이상 신종자본증권 조기행사를 하지 않았다고 해서 최근에는 크게 이슈화되고 있지 않는 편"이라며 "그러나 우리나라 은행, 보험사가 발행한 신종자본증권은 첫 콜일자를 예상만기로 간주하고 투자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라고 말했다.
◇ 콜옵션 실시 관례 깨져...투자심리 위축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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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너지경제신문DB) |
특히 최근 보험사를 비롯한 금융사들이 선제적인 자본 확충 수단으로 신종자본증권을 대거 발행한 만큼 이번 미행사로 다수의 금융사들이 신종자본증권 발행에 어려움을 겪거나, 더 높은 금리를 제공할 가능성이 커졌다. 가뜩이나 자금시장 경색에 대한 우려가 커진 상황에서 흥국생명의 이번 콜옵션 미행사는 금융사의 평판리스크를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최성종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레고랜드 이슈, 기업들의 펀더멘털 저하 가능성 고조로 국내 기업이 발행한 외화채권(KP) 신용 스프레드는 확대되는 기조였다"며 "이번 미실시로 투자심리는 당분간 위축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채권시장의 새로운 매수 주체로 부상한 개인투자자들마저 매수 여력이 악화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윤원태 SK증권 연구원은 "최근 채권시장에서 매수 여력이 있는 건 사실상 개인투자자나 일반 법인밖에 없다"며 "그간 관례처럼 여겨진 신종자본증권의 콜옵션 행사가 앞으로 지켜지지 않을 수 있다는 메시지는 단연 매수 주체들에게 부정적"이라고 진단했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가뜩이나 부동산 PF를 중심으로 자금조달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 이번 콜옵션 미행사로 투자자들은 앞으로 리스크 방지에 더욱 주력할 것"이라며 "당분간 보험사들이 신종자본증권을 통한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금융당국도 흥국생명의 조기상환권 미행사에 대해 문제되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금융위원회는 "흥국생명은 조기상환권 미행사에 따른 영향, 조기상환을 위한 자금 상황 및 해외채권 발행 여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었다"며 "이에 흥국생명은 채권발행 당시의 당사자 간 약정대로 조건을 협의, 조정하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흥국생명의 수익성 등 경영실적은 양호하고, 계약자에 대한 보험금 지급 등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며 "현재 금감원, 기재부, 흥국생명과 소통 중이며 조기상환권 미행사에 따른 시장 상황을 모니터링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ys106@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