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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문희 정치평론가/한양대 겸임교수 |
‘자립준비청년’이란 아동양육시설에서 생활하다가 만 18세가 돼 퇴소한 청년들이다. 자립준비청년은 나이가 차면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찬바람 몰아치는 사회로 내던져진다.
자립준비청년은 생계유지와 진로, 취업이라는 세 가지 문제에 직면한다. 여기에 외로움과 막막함은 상수로 존재한다. 인간에게 일차적 안정감을 주는 것이 ‘가정’이라는 울타리일진대 그나마 가정의 역할을 대신했던 보호시설을 떠나 홀로 지내야 하는 아이들의 마음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막막해진다.
물론 정부의 지원이 없지는 않다. 자립준비청년은 자립정착금(지자체에 따라 500만~2500만원)을 받고 5년 동안 매달 35만원의 수당을 받는다. LH 전세자금 대출을 받아 임대주택에 입주할 수도 있다. 이자를 내야 하는 부담은 있지만 입주 후 20년간 지원이 유지된다. 그러나 과연 이것으로 충분할까.
정부에서 정한 자립준비청년 기준은 만 18세부터 만 24세까지이다. 유복한 집안에서 부모의 따뜻한 관심을 받고 자라나 대학을 졸업해도 직장을 구하기 어려운데 이들이 안정된 자립을 할 수 있을까.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졸업 후 취업 경험이 있는 15∼29세 청년 가운데 첫 취업에 3년 이상이 걸린 사람은 2022년 5월 기준 35만8천명으로 집계됐다.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 청년층 부가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2년 기준 고졸 이상 미취업자는 133만명이고 2년 넘게 구직에 실패한 취준생도 35만명이다. 이런 현실에서 제대로 자리를 잡는 것은 모든 청년 세대의 공통된 고민이겠지만 주변에 아무도 없는 자립준비청년에게는 더욱 고독하고 막막한 세상이 될 수밖에 없다.
당장 발등의 불인 생계유지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하는 자립준비청년들은 진로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할 여유조차 없다. 2020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진행한 ‘보호종료아동 자립실태 및 욕구조사’에 따르면 "돈 벌려고 대학 진학 안한다"는 응답이 52%로 진학 대신 구직을 택하는 경우가 절반을 넘었다. 고려하는 직업군도 ‘뷰티·미용·애완’이 20.3%로 적성이나 하고 싶은 일보다는 당장 생계를 위한 일자리를 선호했다.
자립준비청년들에게 부여된 ‘홀로서기’ 준비기간 5년은 사회에서 온전히 자립하기엔 턱없이 짧다. 7년도 마찬가지다. 대학진학을 한 자립준비청년의 경우는 대학졸업 후 취업전까지로 자립기준을 더 연장해야 한다. 대학진학 대신 바로 사회로 나간 청년들에게도 추후 진로탐색을 위한 교육비를 지원해줘야 한다. 사회 생활에 적응할 수 있는 금융·경제교육과 근로능력을 키울 수 있는 직업훈련도 강화해야 한다.
사회 첫걸음을 어떻게 내딛느냐에 따라 인생의 방향이 정해지는 경향이 있다. 경제적 궁박함에 떠밀려 제대로 진로탐색의 기회조차 갖지 못하는 자립준비청년들이 안정감을 가지면서 다양한 진로 멘토링의 기회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 현재 자립준비청년 사후관리 대상인원이 1만 2000명이 넘는다. 정부와 지자체는 자립준비청년들의 현재 상황에 대해 정확한 실태 파악부터 하고 부족한 자립지원 전담인력도 확충해야 한다.
나라 곳간이 화수분도 아니고 국가가 돈 쓸 일이 어디 한두 곳 뿐이겠냐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청년은 우리나라의 미래다. 가족이나 부모로부터 정서적 지지를 받지 못한 아이들이 찬바람 부는 황량한 사회 속에서 혼자 감당해야 할 몫이 너무 무겁다. 이들이 실수로 넘어질 때 기댈 수 있는 등을 내주고 다시 일어설 용기를 줄 부모나 가족이 없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밥만 먹는다고 배고픔이 해결되지 않는다. 특히 정서적 배고픔은 오직 따스한 관심과 사랑으로만 채워질 수 있다. 톨스토이는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고 답했다.
힘든 청년들에게 조그만 울타리도 되어주지 못하면서 말로만 요란하게 떠드는 저출산(저출생) 대책은 공허하기 짝이 없다. 2006년 이후 2021년까지 역대정부가 출생률을 높인다면서 퍼부은 돈이 380조 2000억원이다. 그러나 현재 한국은 출생률 0.81로 인구총감소 쇼크상태에 빠져 있다. 더 이상 혈세 낭비하지 말고 이미 태어나 사회 구성원으로서 당당히 자리 잡으려 노력하는 청년들을 제도적으로 더 지원해야 한다.
자립준비청년 외에도 학교밖, 가정밖, 이주배경 청소년 등 국가와 사회가 관심 갖고 돌봐야 할 아이들도 많다. 정부 지원책이 조금씩 개선되고는 있지만 아직도 충분하지 않다. 그렇다고 오롯이 정부의 몫으로만 남겨둘 수도 없다. 사회라는 든든한 공동체의 울타리가 필요하다.
출산을 기피하는 세태를 한탄하기 전에 태어난 아이부터 잘 돌보는 게 순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