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5월 31일(수)



[EE칼럼] 섣부른 '탈탄소 지상주의'가 키운 화석연료 위기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2.06.29 10:03

온기운 에교협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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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기운 에교협 공동대표


원유·천연가스·석탄 등 화석연료의 공급 부족과 가격 상승세가 심화되고 장기화될 조짐이다. 원유가격 폭등에 따른 위기는 1970년대 1·2차 오일쇼크를 뛰어넘는 최대의 위기로 평가되며, 원유가격에 연동돼 움직이는 천연가스 가격은 연료전환(fuel switch)이라는 요인까지 겹쳐 전례없는 폭등세를 보이고 있다. 원유·석탄의 대체재인 석탄 가격도 폭등하기는 마찬가지다.

작금의 화석연료 위기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침체 국면에 빠졌던 세계경제가 빠른 회복세를 보이면서 수요가 크게 늘어난데 기본적인 원인이 있다. 여기에 원유의 경우 ‘OPEC(석유수출국기구)플러스’의 소극적인 증산이 유가상승을 부추겼다. 올해 들어 화석연료 가격 상승세에 기름을 부은 요인으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도 물론 빼놓을 수 없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유럽에 대한 러시아의 화석연료 공급이 크게 줄면서 공급 부족과 가격 상승세가 심화됐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세계적인 탈탄소 움직임이 화석연료 가격 급등을 초래했다는 사실이다. 탈탄소가 화석연료 개발·생산을 줄여 공급부족을 심화시킨 탓이다. 세계 최대 석유회사 아람코의 최고경영자(CEO)인 아민 나세르는 지난해 12월 미국 휴스턴에서 개최된 세계석유회의(WPC) 연설에서 "석유·천연가스가 전환기에 필수불가결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가격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오를 것"이라며 "세계는 하루아침에 청정에너지로 이행할 수 있다는 환상을 버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회의에 참석한 미국 최대 석유채굴 기업 할리버튼의 CEO 제프 밀러는 "화석연료 개발 투자가 오랜 기간 부진함에 따라 세계가 석유 부족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공급 부족이 완화되기까지 10년 안팎의 세월이 걸릴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2015년 이후 자원 메이저들은 상류(upstream) 부문 개발투자 규모를 크게 줄였다. 셰일 혁명으로 화석연료 가격이 하락세로 전환된 가운데 세계적인 탈탄소로 화석연료의 장래 리스크가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2014년 약 8000억달러에 달했던 상류 부문 투자액은 지난해 약 3400억달러까지 감소했다.

국가별로 보면 나이지리아 앙골라 등 OPEC플러스 일부 산유국은 지난해 10월부터 투자 부족 여파로 생산능력이 떨어지면서 소폭 증산 속도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세계 최대의 잉여생산 능력을 가진 사우디아라비아도 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상응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미국에서는 바이든 정부가 취임 직후 캐나다와 멕시코만을 연결하는 원유 파이프라인 프로젝트 허가를 취소하는 등 탈탄소의 강도를 높였다. 미 하원의 감시개혁위원회는 지난해 10월 석유 메이저 4개사(엑손모빌·로열더치셸·셰브론·BP) 간부들을 초청해 공청회를 개최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석유업계가 기후변화에 있어서 화석연료의 역할에 대해 일반인에게 잘못된 정보를 흘리고 있다며 강하게 비판했고, 업계 측이 이를 전면 부인하는 상황이 6시간 가까이 전개됐다.



석유업계의 자금줄 역할을 하고 있는 미국 월가에도 압력이 가해지고 있다. 미국의 대형 투자회사인 블랙스톤그룹의 CEO 슈워츠먼은 지난해 10월 "우리는 진정한 의미에서 에너지 부족에 빠질 것"이라며 비관적인 생각을 토로했다. ESG(환경·사회·투명경영)를 중시하는 투자자들이 투자회사에 석유가스 관련 자산을 매각하도록 압박하고 있어 미국 석유기업들은 신규 채굴을 위한 자금조달이 어려워지고 있다. 자금조달의 어려움은 셰일오일의 증산도 가로막아 셰일오일이 원유시장의 수급을 안정시켜주는 ‘스윙 프로듀서’ 역할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하고 있다.

화석연료의 초과수요는 중국 인도 등이 석탄화력발전소를 계속 건설하고 있는데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독일·네덜란드·폴란드·오스트리라 등 유럽 주요국이 석탄이용 확대로 회귀할 조짐을 보이고 있어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1973년 1차 오일쇼크가 중동지역을 중심으로 한 산유국들이 가격 인상을 목표로 원유 공급을 대폭 줄이면서 발생한데 비해 이번 위기는 환경을 중시한 성급한 탈탄소에 따른 공급축소에서 비롯되고 있다. 따라서 지금의 위기를 해소하려면 탈탄소와 원유수급 안정의 균형을 도모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화석연료에서 재생에너지로 전환해 나가기 위한 정교한 이정표가 글로벌 치원에서 수립돼야 한다.

산업혁명이 일어난 19세기는 석탄의 시대였고, 20세기는 석유의 시대였다. 21세기 들어 재생에너지가 비중을 높이고 있지만 금세기 전반까지는 수송이나 저장이 용이하고 에너지 효율이 높은 화석연료가 여전히 세상을 지배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 점에서 자원빈국인 우리나라는 에너지안보를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탈탄소를 추진하면서도 화석연료의 국가비축 상황을 점검하고 향후 지속될 공급부족과 가격 상승세에 만반의 대비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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