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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석 서울대학교 원자력정책센터 연구위원 |
산업자원통상부는 작년말 ‘전력계통 혁신방안’을 발표했다. 2030년까지 78조원을 전력망에 투자하는 방안이다. 투자 규모가 엄청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않다. 78조원은 기 계획된 송변전투자(23.4조원), 배전설비투자(24.1조원)에 온실가스감축목표(NDC) 상향을 감안한 추가 투자 약 30조원을 합한 금액일 뿐이다.
’가슴이 뛰는‘ 신안해상풍력 8.2GW 투자비가 49조, 울산 앞바다의 풍력단지는 35조로 두 프로젝트의 투자비만 83조원이다. 더구나 78조원에는 NDC 상향에 따른 재생에너지 비중 확대만이 반영된 것이고, 탄소중립안에 따라 증가될 전력수요를 공급할 망 투자비는 포함되지 않은 것이다.
지난 5년간 발전설비는 97GW(2015년)에서 129GW(2020년)로 연평균 5.8%(재생에너지는 27.1%) 증가했다. 반면 송·배전망은 2.0% 증가에 머물렀다. 망 증가도 대부분 배전망에 집중되었으며, 송전망 증가는 0.8%에 불과했다.
망이 보강되지 않는다면 발전소의 출력제어가 불가피하고 전력수급도 불안하게 된다. 제주지역은 몇 년 전부터 태양광, 풍력의 출력제어가 잦았고, 작년에는 신안군 안좌스마트팜태양광발전소가 수차례 출력제한 되었다. 별도의 보상이 없으니 사업자가 불만인 것도 당연하다. 다른 나라에는 없는 송?변전설비 주변지역의 보상 및 지원에 대한 법률(송주법)이 있고 매년 1300억원 이상을 지원하는 데도 송전선 건설은 쉽지 않다. 우리만 어려운 것이 아니고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지역사회의 반대 때문이다.
우리나라 에너지전환의 모델국가는 독일이다. 독일 에너지전환의 중심인 풍력전기는 북쪽에서 만들어져 산업이 활발한 남쪽으로 송전되어야 한다. 하지만 에너지전환을 지지하는 독일인들도 거주지 근처에 고압선로가 지나가는 것은 반대한다. 독일은 2030년까지 4개의 직류 송전선, 세계 최장 700km 길이의 100% 지하 송전선을 포함하여 총 7783km의 송전망 건설이 추진 중이다. 이 중 1600km가 완료, 734km가 건설 중이다. 4717km는 건설승인 절차를 밟는 중이고 712km는 기획도 못하고 있다.
독일은 에너지케이블구축법과 전력망구축촉진법을 마련해 전력망 건설 지연 대응방법을 입법화했다. 주요 내용은 송전선 필요성 입증 생략 등 행정절차 최소화, 주거지 최소거리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할 때는 지중화 가능, 토지소유주나 송전망사업자가 공사를 지연시키는 경우 페널티 부과, 토지주가 원활히 협조하는 경우 더 높은 보상금 지급, 그리고 송전망사업자의 투자보수율 상향 조정 등 참신한 방안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미국은 위스콘신주에서 아이오와 주까지 102마일, 345kV 초고압 송전망 건설을 추진 중이다. 이 송전선로는 재생에너지 전력의 융통을 통해 탄소중립 목표를 지원하며 전력시스템의 혼잡 완화를 목적으로 한다. 환경단체 그룹은 경관훼손을 이유로 소송을 제기했고 카운티 순회 법원 판사는 환경단체에 프로젝트 지연으로 발생하는 비용증가분 지불을 위해 무려 3200만 달러의 보증금을 내라는 임시 명령을 승인했다. 환경단체가 승소하면 돌려받을 것이다. 연방법원 재판은 아직 진행 중이다.
우리나라의 송전망 건설 반대의 주된 요인은 송주법상 보상 수준이 적다는 것이다. 송전선 건설 촉진을 위해 지중화 조건 완화, 더 높은 보상금 지불, 공사지연에 대한 패널티 부과 등 다양한 수단을 벤치마킹하기 바란다. 물론 이러한 제도 개선은 전력망 투자비의 대폭적인 확대를 전제하며 이로 인한 비용증가분은 당연히 전기소비자가 부담해야 한다. 만일 전력망 부족으로 정전이 발생한다면 우리 사회가 부담해야할 비용은 추정하기 어려운 수준일 것이다.
요금 수준이 우리의 3배가 넘는 독일은 도매전력 구입비용 보다 망 비용이 더 많이 들어간다. 우리의 망비용 비중은 지나치게 낮다. 그러니 전력망 확충이 어려운 것이다. 전력당국의 유연한 사고와 적극적 발상의 전환을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