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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동본 |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제왕적 대통령 권력 내려놓기 시도가 거침없다. 쏟아내는 구상이나 공개되는 행보를 보면 눈이 번쩍번쩍 뜨인다. 20일 청와대의 용산 이전을 공식화하고 대통령 취임 첫날부터 새 집무실에서 근무하겠다고 한 것만 봐도 그렇다. 대통령 절대 권력의 상징으로 보였던 청와대를 국민에 돌려주겠다는 것 자체가 뜻하는 것은 작지 않다. 그 속마음이 뭐든, 절차나 비용문제가 어떻든 현직 대통령도 추진했다가 이루지 못한 약속이지 않는가.
청와대 민정수석을 없애겠다고 했고 법무부의 검찰 수사지휘권 폐지 및 공직자비리수사처 개편, 특별감찰관 임명 등을 공언한 것도 마찬가지다. 이 모든 것은 과거 정권, 현 정권이 권력유지의 중요 수단으로 활용한 것이다. 윤 당선인 이전 국민적 합의로 만든 제도에 따라, 또 외부 권력에 의해 바뀌는 게 아니다. 윤 당선인 스스로 권력을 내려놓고 자신의 손발을 묶겠다는 것이다. 한 줌의 권력이라도 더 얻기 위해 기존 제도나 관행도 갈아엎는 것과 다르다. 새 정부 출범과 함께 110석대 172석의 여소야대 국회에서 이러다가 ‘식물 대통령’, ‘불행한 대통령’ 되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할 정도다.
언뜻 보면 정치 아마추어가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거나 마구 던지는 느낌마저 든다. 지난 대선 선거 국면에서 상대 진영의 ‘윤석열 무능 프레임’ 공세에 갇혀 고전한 게 다시 떠오른다. 사실 알고 보면 윤 당선인의 내공은 나름 만만찮다. 윤 당선인이 검사 26년 하면서 평검사로 수사만 한 게 아니다. 검사도 형사법을 집행하는 행정 공무원이다. 공무원은 국민이 봉급 주며 일을 시킬 정도로 일에 관한 한 선수다. 그가 검찰총장에 이르기까지 민감한 수사를 하면서 법무부, 법원, 청와대, 국회 등 상대하며 보고 듣고 느낀 게 적지 않았을 것이다. 수사도 검찰 안팎에선 윤석열 검찰 이전과 이후가 다르다고 할 만큼 윤 당선인의 능력이 뛰어났다는 게 중론이다. 더구나 윤 당선인의 대통령 권력 내려놓기 중 다수는 그의 전공과목이다.
그렇더라도 많은 사람들은 그가 대통령을 맡기엔 아직 경험이 부족하고 미덥지 못하다고 한다. 뭔가 불안하다는 뜻이다. 초보 운전자가 의욕만 앞세우고 운전하다가 사고 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다.
그러나 무소불위의 대통령 권력을 스스로 내려놓겠다는 윤 당선인의 의지는 평가할 만 하다. 우리 정치 역사를 되돌아보면 제왕적 대통령 권력 축소는 그간 수차례 시도됐으나 모두 물거품이 됐다. 청와대 주인이 되기 전과 후가 항상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권력은 혈육으로 맺은 부모자식 간에도 싸우는 대상이다. 정치인은 눈 앞에 놓인 것을 조금이라도 더 갖기 위해, 더 나아가 상대방이 가진 것까지 빼앗기 위해 혈안이 돼 아귀다툼한다. 정치는 권력을 나누기보다 얻고 빼앗아 독차지하려는 탐욕 경쟁의 현장이다.
멀리 갈 것도 없다. 문재인 정부가 최근 임기 말 공공기관 ‘알박기’ 인사 논란으로 비난을 받고 있다. 물러나는 정부가 임기 이후까지 권력을 틀어쥐겠다며 몸부림치는 것으로 비춰진 게 이유다.
그러면서도 정권이 책임 질 일은 설거지 거리를 뒤로 미루듯 하며 발버둥치는 모습이다. 정권의 최고 책임자가 재임시절 사정 당국에 의해 사법 처리된 전직 대통령 사면만 해도 그렇다. 여권의 최근 태도를 보면 사면의 정당성을 떠나 비겁하다. 전직 대통령 사법처리는 현직 대통령 재임 때 이뤄졌다. 그런데 그 전직 대통령 수사 책임자가 집권했다. 그러니 새 집권자가 전직 대통령을 사면할 거면 네가 취임한 뒤 하라는 식이다. 이런 무책임이 도대체 어디 있는가. 전직 대통령 수사에 이 정권은 아무런 간여도 하지 않았는데 검찰이 알아서 북 치고 장구 쳤다는 말인가. 설령 그렇더라도 당시 주요 검찰 인사권이 현 정권에 있고 그 반사이익을 본 것도 현 정권이다.
대통령의 사면권이 거래의 대상처럼 보이게 한 것도 매우 부적절하다. 윤 당선인 측의 전직 대통령 사면건의가 있고 나서 당초 예정됐던 문재인 대통령과 윤 당선인 간의 회동이 무산됐다. 회동 무산 배경으로 양측은 의제조율 실패를 들었다. 문 대통령이 뒤늦게 회동에 무슨 의제협의가 필요하냐고 했지만 버스 떠난 뒤 손 흔드는 격일 뿐이다.
윤석열 당선인의 권력 내려놓기나 권력 나누기가 제대로 성과를 거두려면 검찰의 독립성 보장이 무엇보다 우선이다. 검찰이 그간 권한남용 문제로 오래도록 국민의 지탄을 받아온 데엔 역대 대통령들의 책임이 크다. 대통령이 검찰을 권력에 순치되도록 한 것 또한 부인하기 어렵다. 이에 검찰은 대통령의 큰 권력과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하지 않고 정권에 기생하며 작은 권력을 챙겨온 의혹도 제기됐다. 때론 검찰이 정권 수사 악용 등 권한을 자의적으로 행사해 임명 권력이 선출 권력을 위협하는 오만한 태도까지 보였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검찰이 정권 임기 초엔 정권의 충실한 개로 숨 죽여 살다가 나중에 해당 정권을 물어뜯는 사례가 비일비재했다는 것이다.
그 대가는 혹독했다. ‘검수완박’(검찰의 수사권 완전 박탈) 등 수모와 조직 난도질까지 당했다. 지금 와서 보면 이걸 개혁이라 할 수 있는지, 개혁이라면 누구를 위한 개혁인지조차 분간하기 어렵다. 비록 정권이 검찰을 악용하면서 나타난 상처라고 할 수 있지만 결국 검찰의 자업자득 결과다.
그러나 빈대 잡는다고 초가삼간 다 태울 순 없다. 사회의 거악(巨惡)을 도려내고 공정과 정의를 실현하는 검찰 본연의 기능과 역할을 포기해서는 안된다. 그 지름길이 검찰 독립이다. 윤 당선인이 아무리 민정수석·수사지휘권 폐지 방침을 내놓았다고 해도 그것만으로는 검찰 독립엔 역부족이다. 대통령이 검찰 인사권을 부당하게 행사하면 다른 어떤 제도가 있건 무용지물이고 검찰 독립은 순식간에 무너진다. 검찰 인사권의 제한 없는 검찰 독립은 도로아미타불이다.
윤 당선인은 그런 점에서 검찰 인사권도 내려놓아야 한다. 무엇보다도 새 정부의 검찰총장을 적어도 공수처장 임명절차를 준용해 임명했으면 한다. 현행 법상 공수처장은 후보추천위원회가 2명을 추천하고, 대통령이 그 중 1명을 지명한다. 추천위원은 국회의장의 위촉으로 법무부장관, 법원행정처장, 대한변호사협회장 등 각 1명과 여야 교섭단체 각 2명 등 총 7명으로 구성된다. 특별검사 임명절차도 추천위원회 구성원이 법무부 차관과 법원행정처 차장이 각각 법무부 장관과 법원행정처장을 대신할 뿐 나머지는 대체로 같다. 현 공수처장에 대해 공정성 시비가 일고 있지만 ‘윤석열 대통령, 여소야대 국회’란 변화된 정치지형에선 검토해볼만 하다.
현행 검찰청법을 조금만 바꾸고도 대통령이 검찰총장 인사권을 내려놓을 수 있다. 특히 여소야대 국회에서 국회를 존중하며 국정을 원만하게 이끌 수 있는 협치의 의미도 갖는다. 윤 당선인이 그간 입이 마르도록 말한 부정부패 비리 척결 등 공정과 정의 실현을 위해서도 불가피하다. 윤 당선인은 선거 때 상대 후보에 대해 대장동 사건 등 각종 의혹을 집중 제기했고 집권 때 엄정한 수사를 수차 다짐했다. 본인뿐만 아니라 부인, 장모 등의 의혹 거론으로 여러 건 수사 대상에 올라 있지 않는가. 이에 본인의 말대로 내편 네편 가리지 않고 내로남불하지 않고 제대로 수사해 비위를 밝혀내는 것은 당연하다. 그 첫 단추가 수사 지휘자인 검찰총장 인사를 공정하게 하는 것이다.
윤 당선인의 이런 검찰총장 인사권 행사도 적어도 내년 5월까지는 김오수 현 검찰총장이 스스로 물러날 때 가능하다. 김오수 총장은 최근 "법과 원칙에 따라 본연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 하겠다"며 윤 당선인 측근들의 사실상 퇴진 압력을 일축했다.
검찰총장은 제도적으로 임기 2년을 보장받는다. 대통령이 임기를 남겨둔 총장을 갈아치울 수 없다. 윤 당선인은 본인이 검찰총장 재직 당시 여권의 거센 퇴진 압력에 "국민과의 약속"을 얘기하며 버텼다. 윤 당선인은 당장 앞으로 1년 이상 임기를 남겨둔 김오수 총장 거취에 어떠한 간여도 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윤 당선인이 외부 추천으로 검찰총장을 임명하는 것은 김오수 총장의 퇴로를 열어줄 명분도 제공할 수 있다.
윤 당선인이 검찰총장 인사에서도 공수처장 임명절차를 따른다고 천명한다면 김오수 총장이 스스로 물러나는 게 맞다. 김 총장은 조국 법무부 장관 당시 법무부 차관을 지낸데 이어 감사위원 후보로 여러 차례 추천됐다. 하지만 여권과 갈등 끝에 물러나 현재 야당 의원으로 변신한 최재형 감사원장의 감사 독립성 문제 제기로 번번이 제청 거부됐다. 그가 검찰총장이 되고 나서도 권력 수사 뭉개기 의혹 등 수사 중립성 논란의 한 복판에 있었다. 김 총장이 윤 당선인의 검찰총장 인사권 내려놓기 선언에도 끝까지 자리를 고수한다면 현 정권 연루의혹이 제기된 각종 검찰 수사를 막는 정권 방패막이 총장의 불명예를 안을 수밖에 없다.
김 총장이 최근 자진 사퇴론을 일축하자 벌써부터 일부 여권 지지자들 사이에서 윤 당선인의 선거 슬로건을 패러디한 "국민이 키운 김오수" 포스터가 확산됐다고 한다. 이런 국면에선 새 정부에서 김 총장의 잔류는 김 총장이나 현 여권이 의도했건 안했건 현 정권 방탄용 알박기 인사로 비춰질 수 있다. 결국 윤 당선인이 결단하면 김 총장의 거취는 자진사퇴의 길 밖에 없다.
대통령의 검찰총장 인사권 제한은 어떤 대통령의 결단만으로 이룰 수 없다. 관련 입법 등 후속 제도 개편이 뒤따라야 한다. 윤 당선인은 검찰의 독립적인 예산 편성을 공약했다. 검찰청을 사실상 법무부의 외청이 아니라 독립기구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지금은 대통령이 법무부를 통해 검찰 인사와 예산을 쥐고 검찰을 장악할 수 있도록 돼 있다. 검찰 독립을 내세우면서 권력의 3요소인 인사·정책·예산 중 핵심인 인사권은 유지하겠다는 것은 반쪽짜리 개혁이다. 검찰 독립기구화는 권력 비대화 문제를 부를 수 있다. 그건 공수처, 경찰 등이 견제할 수 있도록 제도를 따로 만들면 된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겠는가. 문재인 정부는 국가 역병 코로나가 창궐하던 2020년 총선 때 개헌선에 가까운 압도적 다수의석을 차지했다. 그 뒤 권력에 취해 검찰총장 몰아내는데 국력을 낭비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 결과 이들은 정권교체 10년 주기론에도 5년 만에 정권을 잃고 쫓아낸 그 검찰총장에 대통령 자리를 내주었다. 윤 당선인은 그런 문재인 정권의 독주와 오만으로부터 교훈을 얻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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