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헌 동덕여자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
대선이 치열한 승부 끝에 야당의 승리로 마무리됐다. 국민들은 국가 주요 정책의 개편을 통해 정권교체를 체감하게 된다. 현 정부가 경로파괴적인 정책을 워낙 많이 밀어붙인 탓에 여러 분야에 걸쳐 개편이 불가피해 보이지만, 특히 에너지정책은 극명한 방향선회가 예상된다. 바로 탈원전 정책 폐기다.
사실 문재인 정부는 과학적 논리, 객관적 사실, 현실적 상황을 모조리 무시하고,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총 1368명이 사망했다"와 같이 황당하기 짝이 없는 가짜 통계에 기대어 "원전은 안전하지도 않고, 저렴하지도 않으며, 친환경적이지도 않다"고 단정 짖고 탈원전을 거의 이념화하여 논의 자체를 봉쇄한 측면이 있다.
결과는 예상했던 대로 실패다. 세계 최고로 평가받던 국내 원전생태계는 붕괴 직전이다. 거의 27조원을 웃돌던 원전산업 매출액은 10조원대로 쪼그라들고, 대학 원자력학과 신입생은 2017년 817명에서 2020년 524명으로 급감하였다.
그렇다고 친환경적이지도 않다. 서울 여의도 면적의 30배가 넘는 논밭이 태양광으로 뒤덮였다. 이 정도는 애교다. 거액의 돈을 들여 얻은 새만금 간척지에 태양광을 덮는 것은 천신만고 끝에 얻은 보석으로 구슬치기를 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렇게 무리하게 재생에너지 보급에 힘썼지만, 석탄발전량은 과거 정부 때보다 오히려 7.2% 늘어 탄소중립에 역행 중이다. 한전의 경영은 최악이다. 영업이익은 2016년 12조원 흑자에서 2021년에는 무려 6조원 적자로 돌아섰고 부채는 105조원에서 146조원으로 수직 상승했다. 물론 한전의 경영 악화가 최근의 에너지가격 급등 탓도 있지만, 탈원전도 무시할 수 없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에너지정책 실패의 원인이 묻지마식 탈원전 추진에 있다고 진단하고, 에너지정책 개편의 중심축을 ‘탈원전 정책 폐지’에 두고 있다. 큰 틀에서 올바른 진단과 처방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탈원전 정책을 폐기하고, 탄소중립에 필요한 모든 에너지, 기술, 제도를 총망라하여 도전적이지만 현실적인 탄소중립 에너지믹스를 새로 짜는 일은 난마처럼 얽혀있는 에너지문제 해결의 첫걸음이 될 것이다.
새 정부는 정직해야 한다. 현 정부는 새로운 에너지계획과 관련된 비용 추계를 내놓은 적이 별로 없다. 아마도 급격한 비용 증가로부터 탈원전 정책의 정당성을 보호하기 위한 꼼수였을지도 모른다.
탄소중립을 위한 에너지전환은 상대적으로 값비싼 재생에너지 비중을 높여야 하기 때문에 발전비용 상승은 불가피하다. 기후변화를 방지를 위해 전기가격이 인상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국민께 정직하게 고해야 한다. 다만 원전을 일정 수준으로 유지하면 인상폭을 조금 줄일 수 있다는 점을 진솔하게 설명하고 이해를 구해야 한다.
하지만 현 정부와 반대로 가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현 정부가 손 놓고 방치했던 중요 정책을 찾아 재검토하는 것도 중요하다.
우리나라는 에너지의 약 95%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에너지안보 최약체 국가다. 미국의 셰일혁명으로 국제 석유가스 시장이 안정되면서 한동안 잊혔던 에너지위기 가능성을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새삼 확인하게 되었다. 전 세계가 탄소중립을 선언했어도 석유, 가스, 석탄과 같은 화석에너지는 아마도 짧게는 30∼40년, 길게는 100년 이상 중요 에너지원의 위치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탄소중립 추세로 화석에너지 개발 투자가 위축되기 시작한 가운데 이번 전쟁 여파로 러시아의 석유, 가스 생산 능력 감소가 현실화되면 앞으로 에너지위기는 상시적으로 반복될 우려가 높아진다.
에너지안보 정책은 지난 10년간 실종된 상태였다. 이번 윤 당선인 공약에서도 명시적으로 찾아보기 어렵다. 에너지안보는 경제적 차원을 넘어 국가 안보 차원의 문제라는 사실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입증되고 있다. 군사전쟁 뿐만 아니라, 석유, 가스의 수출입 통제로 상대방을 옥죄는 경제전쟁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기후위기보다 에너지위기가 훨씬 자주 그리고 심각하게 우리를 어려움에 빠뜨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