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경제 포토

이원희

wonhee4544@ekn.kr

이원희기자 기사모음




대전환시대, 英 탄소중립 현장을 가다..."산업혁명 태동 도시 박물관서도 '혁명' 진행 중"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2.01.01 05:00

맨체스터, 석탄 싣은 배 오가던 운하 따라 축구 명문구단 홈구장 들어서



런던 석탄발전소, 미술관으로 변모…세계 첫 탄소중립 마을 '베드제드' 조성도

clip20211230134213

▲영국 런던의 탄소제로 마을인 ‘베드제드’의 경관. 바이오리즈널


[에너지경제신문 / 영국 런던·맨체스터=이원희 기자] "혁명은 진행 중(REVOLUTION IN PROGRESS)"

영국 맨체스터 산업의 변화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과학산업박물관 안내판의 글귀다. 이제 탄소중립 시대를 맞아 과학산업박물관도 탈탄소 박물관으로 변화고 있다. 과학산업박물관은 이 과정을 ‘혁명’이라고 표현해 공사현장에 붙여놨다.

대표적인 탄소중립 추진 나라를 들라면 영국이 첫 손가락에 꼽힌다. 그런 영국에게도 탄소중립을 향한 탈탄소화 과정은 산업혁명과 같은 새로운 혁명이다. 산업혁명이 태동한 영국은 진작에 제조업 중심에서 벗어났다. 이제는 서비스업이 경제의 중심으로 자리잡았다. 재생에너지로의 에너지전환도 상당히 진행됐다. 영국의 전체 발전량 중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4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온실가스 배출량은 1990년 때부터 30년 동안 점점 감소해와 2050년이면 탄소중립을 달성할 것으로 전망된다.

영국 현지 곳곳에선 실제로 탈탄소화가 한창이다. 영국 런던 한가운데에서 연기를 내뿜으며 전기를 공급하던 석탄발전소는 이제는 미술관으로 탈바꿈했다. 세계 최초의 탄소중립 마을로 알려진 ‘베드제드’가 탄생한 곳도 런던이다. 맨체스터도 산업혁명의 도시에서 이제 탄소중립의 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우리나라가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을 선언한 게 겨우 1년 남짓 전인 지난 2020년이다. 우리나라와 영국의 탄소중립 목표 달성 시기는 2050년으로 같지만 본격적인 탈탄소화의 출발은 우리가 영국보다 한참 뒤졌다. 에너지경제신문이 영국 런던과 맨체스터를 지난해 11월 5박 7일 간 방문, 현지 취재한 결과는 우리가 탄소중립을 향해 가는 길의 작으나마 나침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KakaoTalk_20211120_160239086

▲공사중인 영국 맨체스터 과학산업박물관의 모습, 사진=이원희 기자


◇ 런던의 석탄발전소 '미술관으로 변모'…태양광 다리로 전기 공급

영국 런던에 있던 석탄발전소는 미술관과 상업시설 등으로 변모해 관광지로 자리 잡았다. 런던에 전기를 공급하던 석탄발전소는 이제 일부 흔적 만 남아있다. 옛 석탄발전소 근처에는 태양광 발전소가 전기를 공급하고 있다. 영국의 에너지전환을 단적으로 상징하는 모습이다. 전기를 무탄소 에너지원으로 생산하는 건 탄소중립 과정에서 필수로 꼽힌다. 전력생산 때 온실가스가 상대적으로 많이 배출되기 때문이다.

런던 템즈강의 블랙프라이어스 다리 바로 옆에 현대식 미술관 ‘테이트 모던’이 눈에 띈다. 보통의 미술관답지 않게 높은 굴뚝을 가진 이 테이트 모던은 옛 석탄발전소를 개조해서 만들었다. 놀라웠던 건 런던 시내 한복판에 석탄발전소가 위치해 돌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런던 취재에 동행하며 안내해준 현지 교민 안정민씨는 "옛날에는 런던 시내가 석탄발전소 때문에 스모그로 뒤덮였다"며 "당시 현지 신문들은 스모그로 죽은 사람들을 알리는 기사를 싣느라 지면이 모자랄 정도였다는 이야기도 있다"고 전했다.

우연찮게도 테이트 모던 앞에 잇는 블랙프라이어스 다리는 태양광 발전소가 설치된 세계 최대 규모의 태양광 다리다. 더 이상 스모그를 찾아보기 힘든 런던에서 전기를 공급하는 석탄발전소들은 은퇴했고 태양광 발전소가 이제 그 자리를 대체했다.

테이트 모던에 들어서니 석탄저장소의 경우 천장이 높아보였다. 전시물 진열 모습을 통해 이곳이 미술관으로 제격이란 생각이 들었다. 입구 근처에서는 석탄발전소의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내부 깊숙이 들어가서야 석탄발전소의 흔적이 하나 둘 나타났다. 석탄을 직접 때 발전했던 내부에서는 석탄 냄새가 여전히 배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테이트 모던 뿐만 아니라 런던에 위치한 옛 석탄발전소들은 박물관이나 미술관, 상업시설로 변모하고 있었다. 템즈강 부근에 위치해 네 개의 굴뚝을 자랑하는 석탄발전소 ‘배터시발전소’도 가동을 중단한 지 오래다. 이제 곧 상업시설로 바뀔 예정이라고 한다. 런던에서 옛 석탄발전소가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 보는 것도 또 하나 볼거리다.

KakaoTalk_20211215_163101846

▲석탄발전소를 미술관으로 개조한 영국 런던의 테이트모던의 내부. 사진= 이원희 기자


◇ 세계 최초 탄소중립 마을 ‘베드제드’…"영국 탄소중립 표준돼야"

세계 최초의 탄소중립 마을 ‘베드제드’가 런던에 지어진 건 우연이 아니다. 1990년 때부터 탄소배출량이 감축했던 영국이다. 탄소중립이라는 말 자체도 생소했던 국내와 달리 영국에서는 1997년 탄소중립 마을을 만들고자 하는 구상이 진행 중이었다. 베드제드 조성이 본격 시작된 건 지난 2002년이다.

하지만 영국의 탄소중립 마을도 여전히 큰 숙제를 가지고 있다. 탄소중립 마을이 아직 영국에서 표준 마을 모델로 자리 잡지 못한 것이다.

베드제드를 설계·운영하는 기업 ‘바이오리즈널’(bioregional)의 패트릭 클리프 커뮤니케이션실 최고 담당자는 "탄소중립 마을은 특별한 마을이 아니다"며 "앞으로 영국의 마을은 모두 탄소중립 마을로 건설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베드제드로 가기 위해 런던 중심지에서 남쪽으로, 차로 30분을 넘게 달렸다. 거리 자체는 런던 시내에서 10km 남짓 정도로 가깝지만 자동차로 돌아다니기 불편한 도시가 런던이다. 도로가 대부분 좁고 꾸불거려 차 속도를 내기 어렵다. 서울과 비교할 때 런던에는 차가 확실히 덜 돌아다닌다. 런던 공기가 맑은 비결이라면 비결이다.

네비게이션엔 베드제드에 도착한 것으로 나왔지만 막상 베드제드를 찾기 어려웠다. 주변 마을이 다 비슷비슷해 보였다. 주소로 검색, 베드제드로 나타난 곳에 가까이 가보니 지붕에 베드제드를 상징하는 굴뚝이 눈에 들어왔다. 미리 알고 가지 않았으면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였다.

베드제드 마을 입구 근처 건물은 베드제드를 운영하는 바이오리즈널의 사무실로 운영되고 있었다. 패트릭 담당자는 먼 한국에서 온 기자를 반기며 베드제드에 대해 자세히 알려줬다. 베드제드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역시 집집마다 지붕에 있는 굴뚝이다.

패트릭 담당자는 이 굴뚝에 대해 "굴뚝으로 공기를 순환시켜 실내를 환기하고 내부 온도를 조절한다"며 "집집마다 유리를 두껍게 설치해 햇빛을 받으면서도 열을 최대한 보호하도록 설계했다"고 설명했다. 마을 지붕에 태양광 발전소가 설치돼 있는 모습도 보인다.

패트릭 담당자에게 이곳에 거주하려면 특별한 조건이 있느냐고 물었다. 탄소중립 마을이니 환경에 특별히 관심이 있는 사람이 오지 않을까 해서다. 그는 웃으며 "그런 질문을 여태 많이 받아왔다. 베드제드에 살기 위해 어떤 특별한 조건이 있는 건 아니다"며 "주민들이 이곳에 살면서 어느 정도 환경에 관심이 생기는 듯하지만 보통 사람들하고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패트릭 담당자와 마을 주변을 걸으며 국내에서도 영국처럼 탄소중립 마을을 조성하려 한다는 얘기를 들려줬다. 그런 뒤 영국 정부가 탄소중립 마을 육성에 적극 나서고 있지 않느냐고 묻자 패트릭 담당자는 "꼭 그렇지는 않다"고 답했다.

그는 "탄소중립 마을이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면서 유지비 등을 따졌을 때 이제 일반마을을 조성하는 비용하고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며 "앞으로 영국에서 짓는 마을은 탈탄소화를 하도록 제도를 마련해야 하는데 현재 그렇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두 개의 탄소중립 마을이 더 지어지고 있지만, 생각보다 탄소중립 마을 홍보가 부족해 아직 갈 갈이 멀다"고 토로했다.

영국에서도 탄소중립으로 가는 길이 아직 순탄치 않은 모습이다.

clip20211216112841

▲영국 맨체스터 쉽 운하의 모습. 사진= 이원희 기자.


◇ 산업혁명이 태동한 도시 맨체스터…"혁명은 진행 중"

런던 히스로공항에서 한 시간 정도 비행기를 타고 도착한 곳은 산업혁명이 일어난 도시 맨체스터다. 맨체스터에서는 이제 새로운 ‘혁명’, 탄소중립이 진행 중이다. 맨체스터의 산업구조는 온실가스 배출을 많이 하는 제조업에서 이제 서비스업 중심으로 넘어갔다. 도시에서 제조업의 흔적은 박물관에서나 찾아볼 수 있었다.

1894년 개통돼 석탄을 실은 배가 부지런히 오갔던 맨체스터 쉽 운하는 이제 고요히 강물만 흐르고 있다. 막상 보니 강폭이 생각보다 좁다. 이 좁은 운하가 산업혁명의 물줄기였다는 게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저 평범한 강변 운치였다.

운하를 쭉 따라가다 보니 ‘미디어시티 UK’가 멀리서 보였다. BBC 등 영국의 유명한 방송국들이 하나같이 모여있는 곳이다. 미디어시티에서 운하 반대편으로 갔더니 프리미어리그 축구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홈 구장 ‘올드 트래퍼드’가 나왔다. 우리나라 박지성 선수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한창 활약할 때 낯 익었던 곳이다.

미디어시티이자 축구 명문 구단을 가진 도시 맨체스터의 면모가 운하를 걸을 때 한 눈에 들어왔다.

항구도시 리버풀과 연결하기 위해 1830년 건설된 세계 최초의 기차역은 이제 유물로 남았다. 그 유물은 맨체스터 과학산업박물관에서 찾을 수 있다. 맨체스터 과학산업박물관은 맨체스터의 산업현장 역사와 현재, 미래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박물관을 직접 찾아갔더니 일부 시설의 리모델링 공사가 한창이었다. 밖에서 철도가 얼핏 보였지만 실제로 기차역에 들어가지는 못했다. 다만 박물관 내부의 일부 시설 입장만 가능했다.

clip20211217120656

▲맨체스터 과학산업박물관의 리모델링을 알리는 안내문. 사진= 이원희 기자


박물관에 들어가자 한 안내문이 눈에 띄었다. 박물관은 친환경적이고 지속가능한 박물관으로 변모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공사현장에 붙어 있는 혁명은 진행 중이라는 글귀처럼 박물관은 변화하고 있었다. 입구에 나눠주는 책자에는 박물관에서 아이들을 위해 진행하는 탄소중립 관련 교육프로그램도 소개됐다. 박물관에서까지 이뤄지고 있는 영국 탄소중립 추진 노력의 단면이 인상적이었다.


wonhee4544@ekn.kr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