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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 충전 이미지. |
[에너지경제신문 여헌우 기자] 재계 주요 기업들이 이차전지 소재와 원자재 투자에 속도를 내는 배경에는 ‘탈(脫)중국’이라는 의도가 녹아 있다는 분석이다. 우리 기업들이 중국산 소재 의존도가 높은 가운데 미국과 중국간 무역갈등의 ‘불똥’이 우리 쪽으로 튈 수 있다는 계산을 한 것이다. 전세계적으로 전기차 판매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도 배터리 소재 투자 시점을 앞당긴 요인으로 꼽힌다.
중국 기업들은 전세계적으로 양극재, 음극재, 분리막, 전해질 등 주요 이차전지 소재 시장에서 50% 이상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배터리 성능 향상을 위한 필수 소재인 음극재, 전해질 등 분야에서는 중국산 점유율이 60~70% 수준에 이른다고 전해진다. 음극재, 분리막, 전해질의 경우 중국과 일본 업체 합산 점유율이 90%에 육박해 한국이 영향력을 발휘하기 힘든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SK, LG 등 주요 이차전지 기업들이 미국에서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 제너럴모터스(GM)와 2조 7000억원 규모 제2배터리 합작공장을 세울 방침이다. 별도로 5조원 수준의 자체 공장 설립도 추진한다. SK이노베이션은 포드와 6조원 가량을 모아 배터리 공장을 설립하기로 했다. 이차전지 소재 수요 역시 늘어날 수밖에 없는 셈이다.
재계 관계자는 "SKC의 동박 생산시설 건설, 포스코의 리튬 투자, 에코프로비엠의 증설 등은 모두 한미 정상회담 이후에 발표된 내용"이라며 "수요를 따라간 측면도 있겠지만 정치적 리스크 등에 대비해 소재 분야에서 중국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는 계산도 깔린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미국과 중국간 갈등으로 무역 분야에서 불확실성이 높아진 데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양국이 대만 문제 등을 언급했다는 점이 부각된 것으로 보인다. 수익성 확보 측면에서도 소재 내재화는 필수 조건이라는 게 중론이다. LG가 석유화학 기업인 LG화학을 중심으로 핵심 소재 자체 생산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것도 궤를 같이 한다. 삼성은 국내 소재기업들과 합작법인 설립 등을 추진하고 있으며 SK도 분리막 생산 확대에 1조원대 투자를 결정했다.
김광주 SNE리서치 대표는 지난 25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NGBS 2021’ 세미나에서 "국내 배터리 제조사들은 생산·공정 기술에 앞서 있지만 원부자재 비용 절감 등은 풀어야 할 숙제"라며 "우리 기업들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소재 점유율을 늘리는 동시에 원자재 수급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짚었다.
글로벌 전기차 시장이 무섭게 커지고 있다는 점도 재계 주요 기업들을 이차전지 소재 ‘전쟁터’로 불러들이는 요인 중 하나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세계 전기차 수요는 지난해 310만대에서 2030년 5180만대로 17배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같은 기간 전기차 배터리 수요도 139GWh에서 3254GWh로 23배 급증할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앞서 GS가 양극재 사업에 나섰다 이를 매각한 적이 있는데 당시에는 전기차 시장과 배터리 수요가 빠르게 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각국 정부의 친환경차 정책으로 폭발적인 수요 증가가 예상되는 만큼 기업들도 소재·원자재 등 분야에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yes@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