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문재인 대통령(왼쪽)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1일 오후(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정상회담 후 공동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연합 |
향후 백신·배터리 협력의 구체적인 시행 방안을 잘 마련할지 여부와 ‘신흥 기술 분야’에서 어떤 방향으로 대화를 모색할지는 관전 포인트다.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한미 협력 뿐 아니라 대만 문제 등 민감한 안건까지 건드린 만큼 중국의 반응도 지켜봐야 한다는 분석이다.
23일 정치권과 재계 등에 따르면 한미정상회담 이후 발표된 양국간 경제 협력의 핵심 분야는 반도체, 배터리, 백신 등이다. 미국은 기술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반도체·배터리 공급망 강화 정책을 펼치고 있다. 우리 기업들은 이 같은 상황에 과감한 투자를 결정해 미국과의 경제 동맹을 강화하는 한편 현지 첨단 기술·수요 기업과의 협력을 강화할 수 있을 전망이다.
‘파운드리 승부수’를 띄울 준비를 하고 있는 삼성전자의 경우 경쟁사와의 격차를 좁히기 위한 발판을 마련할 것으로 기대된다. 대만의 TSMC가 애리조나에 6개의 파운드리 공장을 짓기로 하는 등 대미 투자를 확대하고 있고, 반도체 1위 기업인 인텔 역시 파운드리 사업을 다시 강화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우리 기업들은 조 바이든 대통령의 ‘그린 뉴딜’ 정책의 수혜도 기대할 수 있다. 바이든 정부의 친환경 정책에 힘입어 미국 전기차 시장은 2025년 240만대, 2030년 480만대, 2035년 800만대 등으로 연 평균 25%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가운데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의 미국 내 신규 투자금액은 약 140억달러(약 15조 8000억원)에 달한다. 갈수록 커지는 미국내 전기차 시장 수요를 선점하기 위해 배터리 부문에 공격적인 투자를 단행하는 것이다. 업계는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이 각각 미국 완성차 1·2위 업체인 제너럴모터스(GM)와 포드와 손잡으면서 ‘K배터리’가 미국을 발판으로 글로벌 시장 지배력을 확대할 것으로 기대한다.
현재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 점유율 1위는 중국의 CATL이다. 중국 기업이 진출하기 어려운 미국 전기차 시장을 우리 기업들이 적극 공략하면 K배터리의 위상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백신 파트너십의 지속 가능성도 재계의 이목을 잡는 분야다. 한국은 바이오의약품 생산능력 세계 2위 수준이지만 백신 수급에 애로를 겪어왔다. 이런 가운데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의 주요 백신 생산업체와 한국의 첨단기업 간 협력을 직접 언급하며 백신 생산량 증가에 대한 기대도 밝혔다. 미국은 백신 기술과 원부자재 공급능력을 갖추고 있다.
향후 관전 포인트는 ‘신흥 기술 분야’가 될 전망이다. 백신, 배터리, 반도체 등 외 다른 신산업에서 양국간 협력이 어떤 형식으로 흘러갈지 여부에 이목이 쏠리는 것이다. 양국 정상은 정상회담 이후 공동 성명에서 "신흥 기술 분야에서 파트너십을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양 정상이 5G·6G 네트워크 기술, 바이오 기술, ‘아르테미스 약정’을 포함한 우주기술 분야 등에서 협력 확대를 약속한 만큼 우리 기업들은 빠르게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다.
전체적인 합의 내용이 포괄적 협력에 불과해 향후 국내 백신도입 시기와 반도체 배터리 투자에 대한 미국 측의 세부적인 지시가 뒤따라야 한다는 점은 풀어야 할 숙제다. 우리 정부는 현지에 대규모 투자를 약속한 우리 기업을 위해 세제, 인프라 등 투자 인센티브를 지원해달라고 미국 측에 요청한 상태다.
42년만의 미사일 주권 완전 회복으로 중장거리 미사일 개발이 가능해진 점도 큰 성과로 평가된다. 이번 회담을 통해 양국이 한미 미사일 지침 해제에도 합의하면서다. 미사일지침 종료는 최대 사거리 및 탄도 중량 제한이 해제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어서다.
다만 한반도 비핵화 문제는 다른 안건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볍게 다뤄진 분위기다. 바이든 대통령이 대북특별대표에 성김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대행을 임명하겠다고 발표하는 등 북한과의 대화 의지를 내비치긴 했으나,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만남 등에 확실히 선을 그었기 때문. 바이든 대통령은 완전한 비핵화 약속이 있어야 북미간 정상회담을 추진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변수는 중국이란 시각이 우세하다. 그간 미중 갈등에서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여온 한국 정부가 중국이 민감해하는 사안에서 미국과 함께 목소리를 냈기 때문이다. 특히 양 정상이 공동성명에서 대만 해협에서의 평화와 안정 유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는 점이 눈길을 잡는다. 한미가 공동성명에서 대만 문제를 공개적으로 거론한 것은 처음이라서 그렇다.
‘최대 800km 이내’로 제한된 한국군의 미사일 지침을 완전히 해제한 것도 미국이 직접 한반도에 자국 미사일을 배치하지 않고도 동맹인 한국을 통해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는 점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평가다. 이미 중국 매체들은 한미정상회담 공동선언문 내용을 해석하며 자국 내정을 간섭하지 말라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