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에너지경제신문=나유라 기자] 금융당국이 사모펀드 사태와 관련해 일관된 원칙이나 기준 없이 모든 책임을 금융사에게 떠넘기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사모펀드 사태의 재발 방지를 위해 금융소비자 보호에 힘을 모아야 하는 현 상황에서 책임 피하기에만 급급하며 소비자들이 2차로 피해를 입고 있다는 분석이다. 당국이 금융사 간에 잘잘못을 따지지 않고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는 사례가 많아지면서 펀드 가입으로 피해를 본 투자자들은 판매사와 소송을 감수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 펀드 판매사에 책임전가...성급함이 투자자 피해로
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금융권에서는 금감원이 최근 분쟁조정위원회(분조위)를 열고 NH투자증권이 판매한 옵티머스 펀드 관련 분쟁조정 신청 2건에 대해 ‘착오에 의한 계약취소’를 결정한 것을 두고 판매사를 향한 책임 떠넘기기라는 비판이 나온다. 착오에 의한 계약취소는 당초 계약을 체결하지 않았을 만큼 중요한 사항을 제대로 알리지 않았을 경우 계약을 취소할 수 있도록 한 조항이다. 분조위는 계약체결 시점에 옵티머스 펀드가 공공기관 확정매출채권에 투자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에서 NH투자증권이 운용사 설명에만 의존해 공공기관 매출채권에 95% 이상 투자한다고 설명함으로써 투자자 착오를 유발했다고 판단했다.
분조위 결정이 나오면서 이제 공은 NH투자증권 이사회로 넘어가게 됐다. 분조위 권고는 강제력이 없어 수용 여부는 NH투자증권 이사회 결의를 통해 결정한다. 다만 NH투자증권은 펀드 수탁사인 하나은행, 사무관리회사인 예탁결제원이 함께 책임을 지는 다자배상안이 현실적으로 투자자 보호에 효과적이라는 입장을 고수한 만큼 투자원금 전액을 반환하라는 분조위 결정을 수용할지는 미지수다.
업계에서는 아직 하나은행, 예탁결제원에 대한 검찰 조사가 진행 중인 와중에 금감원이 NH투자증권에 원금 전액을 반환하라는 권고를 내린 것은 다소 이해하기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검찰은 지난달 말 옵티머스 사태에 대해 양호 전 나라은행장을 조사한 데 이어 이달 초에는 옵티머스 고문단에 이름을 올린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를 소환 조사했다. 옵티머스 연루자 중 가장 고위급인 고문단까지 소환조사를 받으면서 옵티머스 수사가 막바지로 접어들었다는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감독당국이 하나은행, 예탁원의 책임을 확인하지 않은 채 전례없는 ‘착오에 의한 계약취소’ 결정을 내렸다는 분석이다.
◇ 無원칙, 無일관성..."금융업에 잘못된 선례 남겨"
문제는 이같은 결정이 투자자 보호에는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만일 NH투자증권 이사회에서 조정을 거부할 경우 옵티머스 펀드 투자자와 NH투자증권 간에 민사 소송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또 하나은행, 우리은행이 작년 초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 관련 중징계에 대해 반발하며 행정소송을 진행한데 이어 증권사마저 분조위 결정을 거부할 경우 금융사를 관리, 감독해야 할 당국도 난감한 상황에 빠질 것이라는 관측도 적지 않다. 익명을 요구한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모든 절차나 원칙은 물론 소비자 보호라는 대의명분도 없이 무조건적으로 판매사에 책임을 떠넘기고, 이것이 다시 투자자들의 소송 부담으로 이어지는 상황이 발생했다"며 "만일 NH투자증권이 하나은행에 대한 검찰 조사가 나오기 전까지 분조위 수용 여부를 미루거나 조정안을 수락하지 않으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투자자가 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투자자 보호는 물론 재발 방지 대책, 금융산업 발전 등을 위해 종합적이고 포괄적인 대책을 내놔야 할 당국이 관리 소홀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나는데만 주력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특히 원금 전액 반환 등의 분조위 권고안은 향후 또 다른 금융사고에도 적용될 수 있어 보다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사모펀드 사태가 발생한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인지, 금융 시스템의 개선 방안은 무엇인지 등에 대해 종합적인 대책을 세워야만 제2의 사모펀드 사태를 막을 수 있다"며 "그러나 현재는 종합적인 대책과 원칙, 소비자 보호도 없이 무조건적으로 판매사에만 책임을 무는 식으로 금융업 발전에 잘못된 선례를 남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판매사, 당국, 소비자 모두 각자의 이익만 주장하면서 오히려 투자자들만 피해를 입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