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경제신문 전지성 기자] 전기료의 일부를 떼 조성하는 전력산업기반기금(이하 ‘전력기금’)의 올해 운용예산에서도 탈원전이 뚜렷한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전력기금 운용액의 무려 70%를 신재생에너지 지원사업에 배정한 반면 원자력 관련 지원엔 고작 9%로 신재생에너지 지원액의 6분의 1에 그쳤다.
이를 두고 불특정 다수 국민의 호주머니에서 재원을 마련하는 전력기금 운용액 배정의 형평성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저조한 재생에너지산업 육성을 위해 아무리 다급하다고 국론 분열과 산업계 갈등의 주요 사안인 탈원전 가속화에 재원을 지나치게 쏟아붇는 게 문제라는 것이다. 정부가 값 싼 비용에 효율성까지 갖춘 원전 산업 죽이기를 하면서 친환경이라는 이유만으로 고비용·저효율로 평가받는 신재생에너지 살리기에 무리하게 나선다는 뜻이다.
27일 산업통상자원부의 ‘2021년 예산 및 기금운용계획’에 따르면 전력기금 올해 운용 예산 총 2조6900억원으로 지난해 2조6000억원보다 900억원 정도 증가했다. 올해 예산 중 70% 가량인 약 1조9400억원이 신·재생에너지지원사업에 배정됐다. 반면 원자력 관련 지원 예산 배정액은 약 9%인 3337억원에 그쳤다. 신재생에너지 확대·원자력 축소 등 에너지전환에 대한 정부 정책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해에도 전력기금의 절반 가량인 48.74%가 신재생에너지 지원에 사용됐다.
재생에너지지원사업 예산은 지난해 1조2065억원에서 올해 1조3770억원으로 14% 늘었고, 융자사업인 신재생에너지금융지원사업 예산 역시 4680억원에서 5740억원으로 23% 증가했다. 원자력은 전년 3172억원 대비 5.2% 늘어났다.
재생에너지지원사업은 신재생에너지원에 대한 발전차액을 지원하는 사업이 핵심이고, 신재생에너지금융지원사업은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설치자금을 융자해 주는 것이다. 기존 사업인 전기충전소 외에도 수소 충전소와 하천수 열에너지 등 수소와 재생에너지 분야에서도 새 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원자력 관련 예산은 원자력핵심기술개발, 중대사고방지 안전강화기술개발사업 등이다.
2019년 기준 전체 발전량 중 원전의 비중이 25.9%, 재생에너지가 6.5%로 4배 정도 차이가 난다. 정부가 전력기금을 재생에너지 지원에 몰아주는 것에 대해 저조한 산업 육성을 위해 불가피하지만 재원 배분에서 원전 등 특정산업을 소외시키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 전력기금 활용 범위 두고 여전히 논란
전력기금은 산업부가 전력산업의 지속적인 발전과 전력산업의 기반조성에 필요한 재원 확보를 위해 마련한 기금으로, 전기사용자에게 전기요금의 3.7%에 해당하는 부담금과 일정 규모의 발전사업자에게 부과되는 RPS(신재생에너지의무할당제) 과징금이 재원이다. 전기사업법에 법적 근거를 둔 전력기금은 전력산업의 발전과 기반 조성에 필요한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2001년 설치됐다. 2019년 말 기준 4조300억원 가량이 적립됐다.
감사원은 지난 국정감사에서 여유자금이 과도하게 누적되고 있는 전력산업기반기금의 부담금 요율을 적정한 수준으로 인하하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적한 바 있다. 또한 정부는 올해 초 법령 개정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공약으로 한전 공대 건설 및 운영 예산을 전력산업기반기금에서 끌어 쓸 수 있도록 해 논란이 일었다. 이 외에도 여권과 정부가 탈원전 비용 보전, 신재생에너지 보급 및 운영 지원을 위해 이 기금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도 추진 중이다. 야권은 정부의 에너지전환 정책 수행을 위해 국민들의 기금을 끌어다 쓴다고 비판하고 있다.
국민의힘 구자근 의원은 지난해 말 ‘전력산업기반기금 부담금’을 인하하고 재생에너지 지원 근거를 삭제하는 전기사업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구 의원은 "공익사업 수행을 위한 전력기금 필요성은 인정된다"면서도 "합리적 운용을 위해 전력기금 관리 체계 강화 및 주택용 복지할인 등 전력기금 목적에 맞는 활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회 예산정책처에서도 전력기금 부담금 인하, 여유재원 규모 축소 등을 제시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산업부 측은 "전력기금은 신재생에너지 보급, 에너지효율 향상, R&D 지원 등 전력산업 발전과 기반조성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해오고 있고, 앞으로도 미래 전력산업과 에너지분야 신규투자 수요확대에 적극 대응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