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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자(사진=AP/연합) |
[에너지경제신문 박성준 기자] 영국 정부가 세계 최초로 제약사 화이자-바이오엔테크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의 긴급사용을 승인한 가운데 미국과 캐나다, 유럽연합(EU)에서도 조만간 심사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미국의 경우 화이자 뿐만아니라 제약사 모더나가 개발한 백신마저 이달 내 수령할 것으로 전해지는 등 백신 공급에 속도를 올리고 있는 모양새다.
이와 함께 한국, 멕시코 등과 같이 제약사와 백신 계약을 체결하는 국가들이 나오면서 코로나19 종식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는 상황이다.
그러나 당분간은 바이러스와의 싸움이 지속될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백신 효과나 면역 지속기간 등은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으며 전 세계 수요를 감당할 정도로 물량을 확보하는 것도 아직까지는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백신 접종을 거부하는 인구층 또한 해결되어야 할 또 다른 난제로 거론되고 있다.
◇ ‘백신 속도전’...美, 이달 화이자·모더나 백신 공급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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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백신(사진=AP/연합) |
영국 보건부는 2일(현지시간) 세계에서 처음으로 화이자-바이오엔테크 백신의 긴급사용을 승인했다. 보건부는 "수개월간의 철저한 임상 시험과 데이터 분석 과정을 거친 뒤 의약품건강관리제품규제청(MHRA)은 이 백신이 안전과 질, 효능에 있어 철저한 기준을 충족한다는 결론을 내렸다"며 "다음 주부터 영국 전역에서 백신을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역시 백신 보급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날 CNN이 입수한 미 정부의 백신개발 프로그램인 ‘워프 스피드 작전’(Operation Warp Speed) 문서에 따르면 연방정부는 화이자와 모더나의 백신 1차 출하분을 각각 15일, 22일 공급받는다. 미국 정부가 두 회사의 백신 물량을 유통하는 건 식품의약국(FDA)의 긴급 사용 승인 결정에 달려 있다. 화이자는 지난달 20일 FDA에 긴급 사용 허가를 신청했고, 모더나는 같은 달 30일에 신청서를 제출했다.
이에 앞서 FDA의 전문가 자문기구인 ‘백신·바이오 약제 자문위’(VRBPAC)는 오는 10일 회의를 열어 화이자 백신의 효능을 검토하고 사용 허가 여부를 FDA에 권고할 방침이다. 모더나 백신 허가 여부를 논의할 FDA 백신 자문위는 17일 열린다.
FDA는 백신 자문위 권고 이후 짧게는 며칠 내에 사용 여부를 승인할 예정이다. 그 이후 1차 출하분이 연방정부로 넘어가고 실제 접종에 돌입하게 된다. 미 정부가 추정한 12월 중 백신 생산 물량은 화이자 2250만톤, 모더나 1800만톤이다.
‘워프 스피드 작전’ 최고 책임자인 몬세프 슬라위는 이날 별도 브리핑에서 내년 2월까지 미국민 1억명에게 코로나 백신을 접종하겠다고 밝혔다. 슬라위는 "12월 중순에 접종을 시작해 2월 중순까지 잠재적으로 1억명에게 예방 접종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의료계 종사자와 중증 환자 등에 우선적으로 백신을 투여한 뒤 대상자 범위를 늘려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슬라위는 또 이달 중 백신 4000만개(1인당 2회 접종 기준)를 확보해 2000만명에게 우선 접종하고, 내년 1월말까지 6000만개를 추가로 확보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그는 ABC방송에서도 "FDA가 (영국 정부와) 비슷한 결론에 도달할 것으로 기대한다"며 "오는 10일 또는 11일까지 화이자 백신이 승인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블룸버그통신은 케일리 매커내니 백악관 대변인이 미국이 연말까지 4000만 회분의 백신 접종을 준비하는 것을 "엄청난 성과"라고 말하면서 그 업적을 트럼프 대통령의 산업계에서의 배경으로 돌렸다고 이날 보도했다. 매커내니는 "사업가를 대통령으로 뒀다. 그것은 트럼프 백신"이라며 "우리는 데이터가 허락하는 한 백신이 가능한 한 빨리 나오길 바란다"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워프 스피드 작전’을 통해 백신의 신속한 개발과 보급을 위해 총력전을 펼쳤음에도 영국 정부가 세계 최초로 백신의 긴급사용을 승인했다. 백신 개발의 공을 스스럼없이 자신에게 돌리는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는 영국에 선수를 빼앗긴 셈이 된 것이다.
◇캐나다·EU에서도 백신 사용 승인 앞둬
미국에 이어 캐나다에서도 보건당국이 화이자 백신에 대한 심의를 곧 마치고 사용 승인 결정을 내릴 예정이다.
패티 하이두 보건부 장관은 2일(현지시간) "보건부가 이 백신 후보의 심의를 진행 중"이라며 "곧 마무리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코로나19 백신은 승인 이전에 안전성을 확실히 하는 것이 보건부의 최우선 순위"라며 "백신이 준비될 때 캐나다도 준비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보건부는 화이자 외에도 미국의 모더나, 영국의 아스트라제네카, 벨기에의 얀센 등 3개 제약사가 각각 제출한 코로나19 백신 사용 승인 신청을 심의하고 있다.
EU에서도 백신의 긴급사용과 유사한 제도인 조건부 판매 승인(CMA)이 신청된 상태다. EU의 보건 규제당국인 유럽의약품청(EMA)은 심사가 신속처리 절차에 따라 이뤄질 것이라고 지난 1일 밝혔다.
EMA는 백신의 품질, 안전성, 효과를 입증하는 자료가 얼마나 견고하고 완전한지를 따져 승인이 수주 내에 나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일단 EMA는 성탄절 기간에 품질, 안전성, 효과성 심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여기에서 합격점을 받으면 EMA의 인간의약품 과학위원회(CHMP)는 늦어도 29일까지 긴급회의를 열어 평가를 확정할 예정이다.
EMA는 백신의 효용이 위험성을 능가한다는 판정에 이르면 조건부 판매 승인을 내리는 방안을 권고한다. EU의 행정부 격인 EU 집행위원회는 권고를 받아 회원국들의 조건부 판매 승인을 위한 신속 결정절차를 며칠 내에 가동한다. 모든 과정이 순탄하게 진행되더라도 EU 회원국들에서 화이자 백신의 사용은 이르면 내년 초에 이뤄질 전망이다.
◇한국·멕시코, 제약사와 백신 공급체결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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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트라제네카(사진=AP/연합) |
제약사들과 백신 공급 체결을 완료한 국가들도 주목을 받는다.
한국 정부는 3일 아스트라제네카와 백신 계약 체결을 완료했다.
보건당국 관계자는 이날 "최근 아스트라제네카와 백신 공급 계약서에 서명했으며, 개별 백신 개발사들과의 협상이 조만간 마무리되면 내주께 전체 계약 현황과 확보 물량에 대해 발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2회 접종이 필요하며, 3상 임상시험 초기 데이터 분석 결과 백신의 예방효과는 투약 방법에 따라 70∼90%였다. 공급가격은 1회 접종분당 약 3000원∼5500원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그동안 임상시험 3상에 들어간 코로나19 백신 가운데 5개 제품을 대상으로 구매 계약 협상을 해왔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화이자나 모더나에 비해 예방효과가 다소 떨어지지만, 가격이 싼데다 -70℃ 이하의 초저온 ‘콜드 체인’을 통해 유통해야 하는 화이자와 비교할 때 2∼8도에서 유통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 지난 7월 SK바이오사이언스와 백신 위탁생산 계약을 맺어 국내 제조가 가능하다는 이점도 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최근 "전 국민의 60%에 해당하는 3000만 명보다 꽤 더 많은 양의 계약을 추진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내년도 예산에도 접종 대상을 4400만명으로 늘리기 위한 백신 구매비 9000억원이 배정된 상태다.
멕시코 정부도 2일(현지시간) 화이자와 코로나19 백신 3440만회 접종분에 대한 구매 계약을 체결했다. 멕시코 보건부는 트위터에 계약 서명 소식을 전하며 이번 달에 우선 25만회 접종분을 받아 의료 종사자에게 우선 공급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당국의 승인 절차가 간소화됐다"며 "최종 절차가 개시되면 당국이 승인을 위해 밤낮으로 일할 것"이라고 화이자 백신의 신속한 승인을 예고했다. 마르셀로 에브라르드 외교장관도 이날 트위터를 통해 멕시코에서도 화이자 승인 절차가 이미 진행 중이라며 "불가능해 보였던 것이 이제 현실이 됐다. 2020년 12월에 백신 접종이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백신 관련 희소식에도 "코로나 종식 기대하긴 일러"
이처럼 세계 각국의 백신 사용 승인을 계기로 코로나19 종식 기대감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지만 벌써부터 안심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 세계 인구가 접종할 수 있는 충분한 백신을 확보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생산량의 한계 때문에 당장 올해와 내년 초에는 선진국 위주로 백신이 배포될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 시티그룹 산하 씨티리서치의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과 EU, 영국, 일본, 캐나다, 호주 등 선진국들이 화이자와 모더나,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사전 주문량 85%를 이미 선점했다. 선진국이야 내년 2∼3분기에 대규모 접종에 나서 4분기에는 집단면역을 형성,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지만, 나머지 국가의 순서는 뒤로 밀릴 수밖에 없다.
백신 효과가 아직 검증되지 않은 점도 염두해야 한다. 특히 이들 백신의 3상 임상 시험이 아직 최종 마무리되지 않은 만큼 면역 효과가 얼마나 지속될지도 의문이다. 바이러스에 가장 취약한 노령층에도 효과가 있을지, 백신이 증상을 억제만 하는 것인지 아니면 전염 자체를 막을 수 있는 것인지도 불확실하다.
영국 BBC 방송은 전문가들을 인용, 백신 접종이 시작되더라도 집단면역에 이르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만큼 계속해서 사회적 거리두기와 마스크 착용, 코로나19 검사 및 자가 격리 등 현재의 조치를 유지해야 한다고 전했다.
백신 접종을 거부하는 인구층도 주목을 받는다.
시장조사기관 입소스가 지난 10월 8∼13일 15개국에서 성인 1만 852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를 보면 73%가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하겠다고 답했다.
국가별로는 인도 87%, 중국 85%, 한국 83%, 브라질 81%, 호주 79%로 코로나19 백신 접종에 우호적인 반응을 보였다. 반면 프랑스에서는 54%로 겨우 절반만이 백신 접종에 긍정적이었고 미국(64%)·스페인(64%)·이탈리아(65%)에서도 긍정적인 응답이 3분의 2 수준에 머물렀다.
백신을 맞지 않겠다는 이유로는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답변이 34%, ‘임상시험이 너무 빠르게 진행됐다’는 답변이 33%로 가장 많았다. 백신을 둘러싼 허위정보와 음모론 또한 접종을 꺼리게 만드는데 일정한 역할을 하고 있다. 미국 조지워싱턴대학에서 온라인 극단주의를 연구하는 닐 존슨은 지난 5월 네이처지에 발표한 논문에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반(反) 백신 움직임 확산에 책임이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