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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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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기고] 지역난방, 이대로 괜찮나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19.01.08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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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한국건설기술연구원 화재안전연구소 소장

지난해 12월, 고양 일산 백석동 일대는 또 다시 날벼락을 맞았다. 이 지역은 이미 수차례 지반침하와 도로균열로 홍역을 치른 터다. 지하철 역 인근 도로와 건물 주위로 섭씨 100도가 넘는 뜨거운 물이 솟구쳐 예비사위와 함께 저녁식사를 마치고 귀가하던 60대 시민이 딸과 헤어진 지 불과 10여분 만에 차 안에서 목숨을 잃었다. 26명이 화상을 입고 인근 2800여 세대에 난방과 온수가 끊기는 사고가 발생했다. 연이은 사고로 인근 주민은 불안하기만 하다. 최근 들어 열수송관 사고가 크게 증가하고 있다. 2013년에는 성남 분당 정자동과 서울 강남 도곡동에서, 2014년에는 성남 분당 이매·서현·금곡동, 2016년에는 수원 팔달 화서동과 서울 송파 오금동 그리고 고양 일산 백석동에서, 올해는 성남 분당 서현동과 이매동, 서울 강남 삼성동 과 고양 일산 백석동 등 4곳에서 발생했다. 과거 12번의 열수송관 사고 중 8건이 일산과 분당 지역의 설치한지 20년 이상이 지난 낡은 열수송관에서 발생했다는 얘기다.

이번에 사고가 난 것과 같은 열수송관은 전국에 2164㎞에 달한다. 이 중 설치한지 20년 이상이 된 열수송관은 전체의 32%인 686㎞를 차지한다고 한다. 지역난방이 설치된 전국 대도시 대부분 지역이 언제든 이번 사고와 같이 펄펄 끓는 물대포 세례를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대책이 시급하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낡은 열수송관을 당장 바꾸기에 비용과 시간이 만만치 않고, 손상된 부위를 정확히 찾아내 수선할 수 있는 기술과 방법도 마땅치 않다는 게 문제다. 일단 낡고 오래된 열수송관이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사고가 난 지역들로부터 난방열을 공급하는 사업장까지의 거리와 사고가 발생하는 시기 등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과연 낡은 열수송관만이 사고의 유일한 원인일까? 혹시 사고에 영향을 미치는 다른 원인은 없는 걸까? 열수송관만 교체하면 우리 지역난방 시설에는 문제가 없는 걸까? 보다 근본적인 원인 분석과 그에 따른 대책이 필요한 이유다.

우선, 국내 지역난방 시설은 이 분야 선진국인 유럽이나 일본에 비해 그 규모가 매우 크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단위 사업장당 규모가 평균적으로 일본의 20배에 달한다. 1980년대 후반 주거난 해결을 위한 주택 200만호 건설계획을 지원하기 위해 지나치게 서둘러 도입한 측면이 있다. 그에 따른 부작용과 문제가 적지 않다. 대상 지역이 넓다 보니 수송관을 따라 흐르는 난방수의 유량이 더 많아지고 수송관 내 압력과 온도도 더 높을 수밖에 없다. 열수송관도 더 강해야 하고, 문제가 생기면 피해는 훨씬 더 커진다. 교통수요가 많은 대도시의 체증이 심한 것과 같은 이치다. 이번에 발생한 사고도 이와 맥을 같이 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만일 공급에 차질이라도 생기면 사회문제가 될 수 있어 시설의 운영에 유연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합리적 운영보다는 안정성 확보에 급급할 수밖에 없다는 거다.

다음으로, 지역난방은 어차피 버리는 열을 재활용하자는 게 기본 취지다. 우리 주변에는 버려지는 에너지가 적지 않다. 전기를 만들 때와 쓰레기를 태울 때, 그리고 일상생활에서도 하수와 대기 등으로 무심코 버려지는 에너지를 회수해 다시 이용하자는 거다. 큰 비용을 들여 지역난방 시설을 하는 이유다. 하지만 시설이 커지면 이런 일들이 거추장스러워지며 안정적 운영에만 집중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집집마다 보일러를 놓는 개별난방 방식보다 더 낫다는 보장이 있을까.

마지막으로, 우리 지역난방 시설은 소비자와 소통이 부족하다. 열수송관을 통해 보내진 난방수는 소비자 건물 등에 설치된 열교환기에서 열을 전해준 뒤 되돌아간다. 이후에는 소비자가 알아서 관리를 해야 한다. 결국 이 연결지점에서 관리에 허점이 있을 수 있고, 그에 따른 폐해가 적지 않다. 일단 수많은 소비자의 사용 여부에 따라 열수송관 상태가 매우 불안정해진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사업자는 난방수를 더 높은 온도와 압력으로 공급하는 악순환이 되풀이된다.

간단한 소비자 시설의 개선만으로도 큰 이득을 얻을 수 있다. 소비자는 열수송관의 높은 압력에 따른 시설의 잦은 고장에서 해방될 수 있다. 또 수많은 소비자 시설의 불규칙한 운전에 따른 열수송관 내 압력변동을 줄일 수 있다면 열수송관 내 압력과 온도를 그만큼 낮출 수 있다. 열수송관의 강도가 더 낮아도 되고, 또 불가피한 사고가 발생한다 해도 피해를 훨씬 줄일 수 있다는 얘기다. 여기에 열의 운반에 필요한 동력과 수송관을 통한 열손실도 크게 줄일 수 있어, 결국 시설의 안정적 운영과 에너지 절약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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