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산업혁명 시대 불확실성 겹쳐 기업들 미래 위한 투자 선뜻 못 나서
-기업 죽이고 살리는건 시장이 선택…정부 규제 일변도 행태 벗어나야
-소득양극화는 개인간 테크놀로지 격차 탓…휴먼캐피탈 투자 늘려 풀어야
-남북경협에 대한 환상은 금물…4차산업혁명 시대 맞는 협력방안 고민을
-실증적. 창의적 방법으로 경제 문제 해결 접근한 남덕우 리더십서 교훈 얻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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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실 차기 한국경제학회장.(사진=허재영 기자) |
[인터뷰=성철환 에너지경제신문 편집국장, 정리=송두리 기자] "정책 리스크야말로 지금 우리 경제를 불안하게 하는 가장 큰 위협 요소중 하나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경제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데 정부가 이런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오는 2월 여성 최초로 우리나라 경제학계를 대표하는 한국경제학회 회장에 오르는 이인실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는 에너지경제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침체를 면치 못하는 현재 경제상황에 대해 "구조적 문제와 정책적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노동시장과 산업구조가 필연적으로 바뀌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잠재성장률 하락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그나마 정부가 이같은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함으로써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는 "전 세계 국가가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우리라고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마법의 지팡이가 있는 건 아니다"라고 밝히면서도 정부가 현장에서 문제를 찾고 현실에 기반한 해결책을 마련할 수 있도록 기업들과 진지하게 소통하려는 태도변화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성철환 에너지경제신문 편집국장이 서강대 남덕우경제관내 연구실에서 이 교수를 만나 새해 우리 경제가 풀어가야할 중요 현안에 대해 의견을 물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Q. 한국 경제의 위기를 걱정하는 소리가 무성하다.
A. 국내 주요 그룹마저도 실적이 급속히 악화되고 있다는 점에서는 과거 외환위기 때와 비슷한 점이 있다. 하지만 외환보유고도 그렇고 낮은 부채비율 등 재무구조도 그때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지금 상황은 문제가 눈에 보이는 ‘화이트 스완’이라고 부를 수 있다. 경기가 꺾이는 것은 우리나라만이 아닌 세계적인 현상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2009년 이후 선진국 경제가 침체에 빠졌을 때 적극적인 투자로 세계 경제성장을 견인한 중국도 경제성장이 둔화되는 조짐이 뚜렷해지고 있다.
2019년 우리나라 경제 성장률은 2018년보다 낮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의 노력만으로 그런 흐름을 바꿔놓기는 어렵다.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도래하면서 기술이 기존 산업을 파괴하고 새로운 산업을 열어가고 있는데 어떤 모습이 될 지 모르니 기업들은 미래를 위한 투자를 꺼린다. 노후가 불안하니 소비 주체들도 돈을 안 쓴다.이런 요인들이 잠재성장률의 저하라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다.
Q. 우리 경제의 어려움이 주로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뜻인가.
A. 정부의 정책 실패가 구조적인 문제를 악화시키고 있다. 우리는 지금 또다른 고비에 놓여 있다. 우리는 과거 2차 산업혁명의 끝자락에서 열심히 노력한 덕분에 성공을 이뤄냈다. 4차 산업혁명이 진행되는 지금은 앞을 내다보고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살아 남는다. 하지만 우리는 정책이 미래의 불확실성을 오히려 더 키우고 있는 형국이다. 만나는 기업인마다 새해가 어떨지 모르겠다고 걱정한다.경제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환경 변화를 정부가 도무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Q. 정부의 정책적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지 않은가.
A. 적어도 기업들의 노력을 방해해서는 안된다. 중후장대 산업에 매달리던 시대는 지났다. 새 산업을 발굴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 기업들이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뜩이나 투자를 꺼리는 판에 정부가 규제에 골몰해서 되겠는가. 어차피 시장이 냉정하게 죽이고 살릴텐데 정부가 미리 나서서 되니 안되니 하는 일이 안타깝다. 미국은 물론 중국도 우리보다는 전향적인 자세로 더 앞서 나가고 있다. 빅데이터도 개인정보보호 명분에 밀려 아예 내놓지 못한다. 부작용은 막아야겠지만 아예 사업을 막아 서서는 안된다.
Q. 서민들의 소득은 절대적으로 줄고 부자들은 느는 양극화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A. 그런 현상이 왜 생겼는지에 대한 명확한 규명이 필요하다. 양극화 심화는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구조적으로 원인을 규명하고 해결을 고민해야 한다. 기술을 가진 자와 가지지 않은 자, 테크놀로지를 가진 산업과 그렇지 않은 산업, 그런 개인들간의 격차도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스마트폰을 이해하고 잘 활용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가진 기회는 다르지 않나. 테크놀로지를 가진 산업이나 개인간 차이가 점점 벌어지고 있어 경쟁에서 뒤지지 않도록 무기를 장착시키는 것이 소득 불평등을 줄이는 최선의 길이다. 재정으로 그저 돈만 나눠 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무엇보다 휴먼캐피탈에 대한 투자를 늘려야 한다. 중년의 직장인들에게도 평생 교육을 제공함으로써 새 일을 찾아 이동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동시에 임금체계를 개편해야 개인도 살고 기업도 살아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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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실 차기 한국경제학회장을 찾은 성철환 에너지경제 편집국장이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사진=허재영 기자) |
Q. 잠재성장률 하락이 수요 축소 때문이라면 소비를 늘려야 하는 것 아닌가. 이를 고려하면 소득주도성장이 의미가 있지 않나.
A. 최저임금을 높여 소비를 늘리고 경기진작 효과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1분위(소득최하위 20%) 소득층은 가뜩이나 소득에 비해 소비하는 돈이 많다. 시간이 지난다고 달라지겠나. 더구나 소득이 낮은 계층의 소득을 늘리려 한다면 최저임금을 건드리는 수준으로는 안된다. 우리나라는 압축성장의 결과로 자영업자가 너무 많이 생겨 났다. 산업의 변화과정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너도 나도 자영업에 뛰어 들어 과도한 경쟁을 벌인다. 이런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안되고 그 핵심에는 서비스업이 자리 잡고 있다. 패러다임이 바뀌면서 세계적으로 서비스업이 제조업보다 커지는 흐름이다.
하지만 우리는 서비스업을 가로막는 규제들이 많다.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영리병원을 허용했다.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서비스업에 대한 규제도 풀어야 일자리를 늘릴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보면 한 해 의료 관광객은 1억명을 헤아린다. 이들 중 우리나라를 찾는 의료 관광객은 한해 20만명 정도다. 태국은 700만명에 달한다. 우리나라는 의료분야에 최고의 인재들이 몰리고 태국보다 훨씬 나은 의료 서비스를 갖추고 있음에도 이를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의료만이 아니다. 법률, 교육 등 다른 전문 서비스 분야도 마찬가지다.
Q. 규제완화와 관련 네거티브 시스템으로 규제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지 오래인데 진척되지 않고 있다.
A. 네거티브 규제로 바꾸지 못하는 것은 기득권층 때문이다. 4차 산업혁명으로 확장해보면 몰라서 못하는 측면도 있다. 경제에 어떤 파국적인 영향을 미칠 지 불안감이 있다. 빅데이터도 개인정보보호 명분에 밀려 아예 내놓지 못한다. 개인정보는 보호하면서 여러 단계로 나눠 빅데이터를 활용할 방법은 많이 있다. 이것 자체를 막으면 안된다. 우리는 데이터가 일종의 권력이기 때문에 각 행정부처별로 데이터를 내놓지 않는다. 데이터를 내놓고 윈윈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Q. 일자리 창출의 주체는 기업이 돼야 하는데 지금 정부는 재정투입을 늘려 억지춘향식 일자리만 늘린다는 지적이 많다.
A. 구조적으로 조선, 기계, 반도체, 해운, 화학 이런 전통적인 산업은 다 축소되는 추세다. 우리나라는 로봇 대체율에서 세계 1위다. 일자리가 기본적으로 줄 수 밖에 없다면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산업을 육성해야 한다. 정부가 벤처를 육성한다지만 벤처는 일자리를 대량으로 만들 수도 없고 양질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Q. 기업들의 투자의욕을 살리는데 도움이 되려면 정부가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
A. 정부는 시장을 만들어 주는 게 중요하다. 누가 더 잘하고 못하고를 평가하는 건 나중에 할 일이다. 공정거래 질서를 해치면 정부가 규제를 해야겠지만 아직 시작도 안 했다. 우리나라가 1960∼1970년대 성공한 이유는 관료가 밀어부친 것도 있으나 글로벌 경제 시장에서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수출이라는 성과를 냈고 이에 따라 조세지원도 받고 금융지원을 받았다. 냉정하게 시장이 알아서 결정할 것이다.
경제학회 세미나에 참석한 청와대 관계자가 "경제학자들은 입만 열면 ‘기승전 기업살리기’냐" 고 볼멘 소리를 하던데, 정부야말로 ‘기승전 재벌개혁’에 매달리는게 아니냐고 반문하고 싶다. 어려운 경제상황을 일거에 해결할 마법의 지팡이가 있는 건 아니다. 정부가 좀 더 솔직하고 열린 자세로 기업들과 소통하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경제에 대한 큰 그림을 그려 보여줘야 한다. 문재인 정부 ‘100대 국정과제’를 보면 경제 목표 자체가 약하다. 달성 가능한 수준에서 투명하고 명확한 목표를 제시하고 기업들에게 ‘같이 가자’고 손을 내밀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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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실 차기 한국경제학회장이 지난 6일 에너지경제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사진=허재영 기자) |
Q. 경제가 힘든데 정부가 너무 북한에만 매달리고 있다는 불만들이 나온다. 대북제재가 풀려 남북경협이 잘 돌아가면 우리 경제에 굉장한 훈풍을 가져 오지 않을까.
A. 남북경협이 풀리면 당장은 철도 등 인프라 협력부터 숨통이 트일 것이다. 매력적인 투자처가 되려면 길을 닦는 것만으로는 안되고 거기서 뭔가 생산을 해서 수송할만한 것이 있어야 한다. 그저 길만 닦는 것은 토목공사이상 의미를 갖기 어렵다. 헛된 환상을 갖지 말고 하나하나씩 풀어나가야 한다. 큰 틀에서 남북관계 진전은 장기적으로는 희망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 믿는다. 남북이 합치면 8000만명이라는 독일과 견줄 수 있는 경제규모가 된다. 이런 경제규모를 바탕으로 4차산업혁명시대 세계 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노동과 산업분야 협력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지금처럼 낮은 차원의 협력으로는 성과를 내기 어렵다.
Q. 연구실이 있는 남덕우경제관은 1970년대 한국 경제의 고도성장기 활약했던 고(故)남덕우 경제부총리의 이름을 딴 건물이다.(이 교수는 서강대 지암남덕우경제연구원 원장을 맡고 있다.) 남 전부총리로부터 우리가 얻어야할 교훈이 있다면.
A. 남 전부총리는 학자이자 장수 경제관료다. 학자로서 이론만 앞세운 것이 아니라 관료로서 현장의 상황을 깊이 있게 관찰하고 실증에 기반한 정책을 수립함으로써 문제를 고치고 현실을 개선했다. 특히 눈길이 가는 것은 과거와 똑같은 방식으로 문제를 풀려고 하지 않고 그때마다 창의적인 방법을 고민했다는 점이다. 그는 기업인들을 끊임없이 만나고 소통하려 노력했다. 경제가 어려울 때 남 전부총리는 지금 정부와는 다른 방법으로 해결책을 찾으려 했을게 틀림없다.
◇ 이인실 차기 한국경제학회장(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 약력
△1956년 서울 출생 △경기여고 △연세대 경제학과 △미네소타대 경제학 박사 △하나경제연구소 금융조사팀장 △한국경제연구원 금융재정연구센터 소장 △국회예산정책처 경제분석실장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 △통계청장 △한국경제학회 부회장(2017년) △한국경제학회 회장(2019년 2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