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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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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능·폐기물 분리’ 핵연료 문제 해결... 세계가 주목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16.05.26 11:10

[현장르포] 대전 원자력연구원 PRIDE

프라이드(PRIDE)_1

▲파이로프로세싱 연구의 본산인 한국원자력연구원 PRIDE 시설 대형 아르곤셀에서 연구원들이 파이로 공정장치를 원격운전하고 있다.이 시설은 1급 시설이라 내부 촬영은 금지돼 사진은 연구원에서 제공받았다.


[에너지경제신문 천근영 기자] 서울에서 KTX로 한 시간 남짓한 거리인 과학의 도시 유성구에 자리잡은 원자력연구원. 거기에 원자력계의 오랜 숙명이자 과제인 사용후핵연료 문제를 해결할 시설이 있다. 바로 ‘ PRIDE’ (PyRoprocess Integrated inactive DEmonstration). 우리말로 풀면 ‘파이로프로세스 모의시험시설’이다. 그런데 이 건물이 세계 원자력계에는 개발된 파이로 핵심기술을 바탕으로 모듈화, 자동화, 원격 운전 그리고 유지와 보수성이 구체화된 세계 최대 규모의 시설로 알려져 있다.

그 대단한 시설, 사용후핵연료에서 방사능을 추출해 폐기물만 분리해 내는 고도의 기술을 연구하는 본산은 전혀 거대하지도, 첨단기계들이 가득 들어차 있지도 않았다. 겉으로 보기엔 원구원 내 여느 건물들과 다름 없었다. 아니 고작 3층 밖에 안 돼 오히려 초라해 보였다.

2012년 지어져 올해로 4년째를 맞고 있는 이 시설에서 연간 10톤의 우라늄이 다뤄지고 있다.

기자가 이 사업 총책인 송기찬 핵연료주기기술개발본부장과 이 곳을 찾았을 때는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아리송하지만) 마침 연구원들이 작업을 하지 않아 자유롭게 내부 구석구석을 훑어볼 수 있었다.

파이로 공정이 그려진 판넬이 내걸려 있는 1층을 지나 작업장인 2층에 도착하자 초록색 옷을 입은 연구원이 종이 재질의 흰 겉옷을 건내 준 뒤 방사선측정기에 두 팔을 넣으라고 했다.

‘삐∼삐∼’

두어 번 소리를 기계음이 들리자 이번에는 하얀 단화를 신으란다. 방사능 수치가 정상이니 들어가도 괜찮다는 것이다.(이 과정은 나올 때도 반복했다)

미닫이 문을 열고 ‘역사의 현장’인 PRIDE 대형아르곤셀로 들어섰다. 파이로프로세싱 설비 준공식 보도자료에 첨부돼 있던 사진 속 모습이 한 눈에 들어왔다.

천장에 매달린 ‘알파고’ 아니 로봇팔 같이 생긴 기계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모두 17쌍. 그리고 그 옆에는 컴퓨터 모니터가 두 세 대씩 설치돼 있고 그 앞에는 유리창으로 막힌 또 다른 공간이 있었다.

녹색 옷을 입은 연구원이 "로봇팔은 원전취급시스템이고, 유리창 안은 아르곤셀"이라고 귀띔해 주었다.

17쌍 34개의 로봇팔이 사용후핵연료 문제를 처리해 줄 해결사라고 생각하니 생경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고 아무튼 심경이 복잡했다. 사실 좀 실망스러웠기 때문이다. 세로 길이 30여 미터 너비 5미터 남짓한 공간에 17쌍이나 되는 기계들이 들어차 한 눈에 보기에도 답답했다. 작업이 없어 불을 꺼 두어선지 아르곤셀 내부마저 어두컴컴해 흡사 생산을 중단한 공장 같았다.

실망과 당혹이 동시에 교차하고 있는 기자의 반응을 감지했는지 송 본부장이 "그래도 이 시설이 세계 최대"라며 "겉이 중요합니까? 속이 중요하지..."라고 했다. 그렇게 말하는 그의 눈빛에서 자부심이 읽혀져 고개만 끄덕거렸다.

진짜는 눈 앞에 있는 로봇팔이 아니었다. 연구원들이 로봇팔을 잡고 수행하는 ‘일’이었다. 그 일은 유리창 안에서 일어난다.

유리창에 눈을 밀착하고 내부를 들여다 보니 거기엔 난생 처음 보는 기계와 설비들이 로봇팔 앞에 줄줄이 늘어서 있었다. 로봇팔로 그 기계와 설비를 움직여 방사능과 폐기물을 분리해 내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기계와 설비들은 얼핏 봐서는 다 같은 것으로 보였지만 자세히 보니 조금씩 달랐다. 17쌍의 로봇팔은 제각각의 공정이 따로 정해져 있었던 것이다.

첫 번째 로봇팔이 작업을 해서 다음으로 넘기고, 또 넘기면서 최종 공정에 도달하도록 설계돼 있는 것이었다. 설명만 들어도 복잡하고 지난하고 지리한 과정임이 머릿속에서 그려졌다. 당연히 작업도 회사원 출근하듯 매일 하지 못한다. 아니 할 수도 없다. 작업일은 연간 100일 정도. 사흘에 하루 꼴이다.

사진에서는 작업자들이 두 손으로 로봇팔을 조작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실제로는 그렇게 못 한다. 하나씩 작동한다. 아무리 손기술이 좋아도 그렇다. 다만 작업시간이 좀 빠르고 더딘 차이는 있지만, 지금은 거의 모두 숙련자라 엇비슷하단다.

송 본부장은 "유관으로 확인할 수 없겠지만 셀 내부에는 아르곤가스가 가득 들어차 있어 부식도 방지해 주고 작업을 편하게 해 준다"며 "연구원들이 3교대로 작업을 한 지 5년째"라고 했다.

현재까지 우리나라가 가동하고 있는 24기 원전에서 발생된 사용후핵연료는 1만5000톤. 전력수급계획상 2029년에는 원전이 35기까지 늘어나 그 양은 더 증가할 것은 기정사실이다. 이 추세라면 2100년 우리나라의 사용후핵연료는 약 8만톤에 육박한다. 재처리를 하지 않는 한 어딘가에는 저장하거나 묻어야 한다. 그 전 단계가 바로 파이로프로세싱이다. 그 바탕을 닦는 일. 그 일을 원자력연구원 핵연료주기기술개발본부가 ‘ PRIDE’에서 실현해내고 있다. 또 그 일은 반드시 해내야 하는 사명이다.

송 본부장은 "어렵고 힘들지만 우리 세대에서는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며 "셀에서 연구원들이 하는 작업 하나 하나가 우리나라와 세계 원자력계가 한 걸음 전진하는 아름다운 역사"라고 했다.

지금, ‘ PRIDE’에 막 불이 켜졌다. 

◇파이로프로세싱은 뭐?

사용후핵연료를 처리하는 두 가지 방법 중 하나로 건식처리 기술이라고 한다. 쉽게 풀면 500∼650도의 높은 온도에서 전기화학적 방법을 써서 사용후핵연료 속의 우라늄과 초우라늄 원소 등을 회수하는 방법이다. 조금 어렵지만 전해환원 (Electrolytic Reduction)과 전해정련(Electrorefining) 기술을 이용해 경수로 사용후핵연료를 금속으로 전환한 후 95%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우라늄 금속을 중저준위폐기물로 회수해 처분대상 고준위폐기물의 부피를 획기적으로 감축시키는 기술이다. 이 방법은 기존의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방식은 퓨랙스(Purex)와는 완전히 다른 기술로, 전기화학적 특성상 고순도의 플루토늄 회수가 불가능한 것이 특징이다. 퓨렉스 방식은 공정이 매우 복잡(공정장비 약 180개)하지만 파이로는 공정이 단순(공정장비 약 20개)해 처리비용이 적게 든다. 또 고열을 내는 방사성물질(세슘, 스트론튬)을 별도 처리 관리할 수 있어 고준위폐기물 처분장의 면적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우리나라는 2011년부터 10년 과제로 미국과 공동으로 이 기술을 연구하고 있는데, 2020년까지 이 기술에 대한 타당성을 입증한 후 2025년 상용화시설인 KAPF를 지을 계획이다. 

◇우리나라 사용후핵연료 기술 어디까지 왔나

사실 우리나라는 미국 보다는 20년 일본 보다도 10여 년 정도 늦게 시작했다. 그러나 불과 10여 년 만에 따라잡았다. 그 중심에 원자력연구원이 있다.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에 연구원의 열정이 시너지를 낸 것이다. 1997년부터 금속환원제를 사용한 금속 전환기술을 개발했고, 2007년부터 본격적인 재활용에 기반을 둔 종합 파이로 공정을 연구하기 시작해 독창적 파이로 핵심기술과 규모확대(scale-up) 공정기술을 개발해 실용화에 한발 더 다가갔다. 특히 흑연음극을 이용한 고성능 전해정련기술, 재생과 재활용을 통한 폐기물 발생량 최소화 등 파이로공정의 상용화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핵심기술들을 독자적으로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흑연음극기술과 잔류 악티나이드 회수기술은 한미핵주기공동연구를 통해 미국으로 이전돼 한미핵주기공동연구에 활용되고 있다.



[인터뷰] 송기찬 핵연료주기술개발본부장

"사용후핵연료를 안전하게 처리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 중 가장 확실한 게 파이로프로세싱입니다."

송기찬 핵연료주기기술개발본부장은 원자력연구원에서 29년째 사용후핵연료를 다루고 있다. 방사성폐기물학회 회장을 맡고 있는 송 본부장은 우리나라에서 손 꼽히는 사용후핵연료 전문가다.

송 본부장은 "올해가 5년 단위로 업 그레이드 되는 사용후핵연료 관리 연구 마지막 해로 개발한 기술을 검증하는 단계"라며 "기술 상용화는 연구원 만으로는 어려워 한수원 등 직접 사업을 하고 또 할 회사와 기관이 다 함께 뭉쳐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연구를 시작한 2007년부터 현재까지 투입된 예산은 약 2000억원인 파이로프로세싱, 이 가운데 80%가 인건비다. 박사급 60여명에 테크니션 10여명 등 100여명에 달하는 고급인력이 10년째 파이로프로세싱 한 우물을 파고 있다. 그럴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어서다.

개정된 한미원자력협정이 ‘조금은 아쉽지만 그나마 다행’이라는 송 본부장. 그는 "사용후핵연료에 플루토늄이 들어있어 건건 마다 미국의 허가를 받아야 했는데, 핵물질을 분리하는 전반 공정에 대해서는 자유롭게 연구하고 통보만 해 주면 돼 숨통이 확 트인 기분"이라며 "미국과 공동으로 연구하는 후반 공정까지 머지않아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라고 했다. 그는 그때는 미국과의 공동연구가 완료되는 2020년 경으로 기대하고 있다.

원자력전문가가 조망하는 원자력 그리고 에너지. 그는 "미래는 에너지를 얼마나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안전하게 사용하느냐 하는 문제가 더 중요해질 것"이라며 "사용후핵연료 문제는 안전한 관리 차원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했다. 특히 "석탄 원자력 가스 등 에너지원을 믹스하듯 사용후핵연료 역시 직접 매립하는 방법과 중간저장하는 방법 등을 조합해 관리하는 게 가장 합리적인 방안"이라고 강조했다. 다양한 방법 가운데 처분장 면적을 최소화 하면서 고독성 핵종(방사능)을 소멸시킬 수 있는 기술이 바로 파이로프로세싱이라는 게 송 본부장의 말. 이런(파이로프로세싱) 기술 없이 말 그대로 보관이나 저장만 할 경우 2100년에는 최소한 경주 방폐장의 10배 이상의 면적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파이로프로세싱 작업장인 ‘PRIDE’에서 전 공정을 한 시간에 걸쳐 세세하게 설명한 송 본부장은 "과학자들의 가장 큰 기쁨은 발견하고 창조하는 것이지만 더 큰 즐거움은 그것으로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지는 것"이라며 "이 연구 역시 국민들을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활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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