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현대중공업 울산 조선소 야경. 사진=HD현대중공업 제공
중동발(發) 해상물류 차질로 촉발된 유조선 시황 초강세 효과가 해운업계를 넘어 조선업계까지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초대형원유운반선(VLCC)을 중심으로 운임이 역대급 수준까지 치솟으면서 선사들의 투자 여건이 개선된데 더해, 노후선 교체 수요와 맞물려 신조선 발주 심리까지 확대될 수 있어서다.
30일 한국해양진흥공사 등 해운업계에 따르면, 지난 주 중동~중국 노선의 VLCC 환산용선수익(TCE)은 하루당 123만4685달러(16억7000만원)를 기록했다. 직전 주 124만1097달러(16억8000만원) 대비 소폭 하락세를 보였으나 여전히 하루 16억원대 초강세를 지켰다.
업계는 이 시기 단기계약(스팟) 운임이 전 노선 평균 일일 60만~70만달러를 기록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같은 운임 초강세의 원인은 중동전쟁에서 비롯된 복합적 해상운송 차질로 지목된다.
장기화된 호르무즈해협 통항 차질로 주요 산유국의 원유 수출길이 우회노선 통항으로 기존보다 길어진 데다, 후티 반군의 타격으로 사우디아라비아 동서 송유관 가동 역시 일시적으로 차질이 빚어지면서 '선박 간 환적(STS)'과 같이 운송방식 역시 비효율화해 유효 선복이 감소한 영향이라는 설명이다.
최근 사우디 동서송유관이 재가동되면서 VLCC 운임의 상방 압력은 다소 완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으나, 시장에선 당분간 높은 수준의 운임이 이어질 것이란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중동지역 원유 수송망이 완전히 정상화되지 않은 데다 우회운송에 따른 톤마일(화물량×운송거리) 증가로 선복 수급 역시 빠르게 해소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에 시장에선 이 같은 고운임·선복부족 사태가 VLCC 선주들이 장기계약 중심의 이익체력을 확보하는 계기로 작용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글로벌 화주 혹은 정유사들이 스팟운임 대비 상대적으로 저렴한 장기용선계약을 체결하는 방식으로 고운임 환경에 대응하면서 해운사의 장기계약률 상승이 기대된다는 논리다.
안도현 하나증권 연구원은 “최근 높아진 VLCC 스팟 운임에 대응해 장기계약을 체결하려는 수요가 글로벌 시장에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며 “이런 시장 환경에서는 국내 선사도 높은 운임의 장기계약을 향유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러한 시장 흐름은 실제 계약으로도 나타나고 있다. 팬오션은 지난 23일 글로벌 원자재 업체 트라피구라 마리타임 로지스틱스와 1482억원 규모로 VLCC 1척에 대한 장기대선계약(36~39개월)을 체결했다.
특히 팬오션은 해당 계약의 공시에서 계약규모(1482억원)가 일일 대선료에 최소 계약기간(36개월)을 적용해 산출됐다고 밝혔는데, 이를 환산하면 해당 계약의 일일대선료는 1억4000만원(10만달러) 수준이다. 업계가 추산하는 손익분기점(2~3만달러)을 3배가량 웃도는 수준이다.
이처럼 스팟과 장기계약을 가리지 않고 유조선 수익성이 개선되면서 시장은 해운사들의 신조선 투자 확대 가능성도 주목하고 있다. 초강세 시황으로 투자 여견이 개선된 해운사들의 신규 선박 발주 부담이 낮아질 수 있어서다.
실제 글로벌 VLCC 발주시장은 이미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글로벌 해운분석업체 시그널 그룹에 따르면, 올해 들어 이달 중순까지 발주된 VLCC는 217척으로 지난해 연간 93척의 두 배를 넘어섰다. 발주금액만 200억달러(27조원) 이상으로 25년 새 최대 규모다.
고령화된 글로벌 VLCC 선대 선령도 해운사들의 신조선 발주를 부추기는 요인이다. IBK투자증권에 따르면, 글로벌 선대에서 선령이 20년을 넘긴 선박이 차지하는 비중은 21%, 선령 15~20년 선박 비중은 26%에 달한다.
VLCC의 평균 폐선 선령은 20~25년 수준으로 알려졌는데, 글로벌 VLCC 선대 절반 가량이 폐선연령에 근접했다는 설명이다.
장성호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현재 VLCC의 1년 용선료를 기준으로 선박 투자회수기간은 1990년 이후 최저치인 1.7년으로 추산된다"며 “선주들이 보유하고 있는 선박을 1년 대선하는 것 만으로도 신조 투자비를 절반 이상 확보할 수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각 선박의 실제 스펙과 계약금액, 개별 기업의 비용구조 등에 따라 실질 투자회수기간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선주들의 투자 부담이 크게 낮아진 상황"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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