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은 전력 소비를 부추겨 온실가스 배출을 늘릴 수도 있고(그림 왼쪽), 탄소 회계 개선과 자동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온실가스 배출을 줄일 수도 있다. (이미지=챗GPT 이미지)
인공지능(AI)이 기후변화 대응의 새로운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AI를 구동하는 데이터센터가 막대한 전력을 소비하고 온실가스를 배출하면서 환경적 부담에 대한 비판이 커지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AI가 에너지 사용과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핵심 기술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잇따르고 있다.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해 기업의 탄소 배출량을 계산하고, 복잡한 공급망에서 배출이 집중되는 지점을 찾아내며, 위성영상으로 메탄 누출을 탐지할 수 있다. 전력 수요와 재생에너지 발전량을 예측해 전력망을 최적화하는 것도 가능하다.
지구온난화가 가속화하면서 지구 평균기온이 산업화 이전 대비 1.5℃를 넘어서지 않도록 하자는 파리 기후협정의 저지선도 돌파될 위기에 처했다.
이에 따라 1.5℃ 아래로 다시 내려오는 데 필요한 2050년 넷제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탄소 배출을 보다 빠르고 정밀하게 줄일 수 있는 기술이 시급해졌다. AI가 주목받는 이유다.
◇AI로 기업 탄소 회계 자동화
기업의 기후 대응에서 출발점은 정확한 탄소 배출량 측정이다. 하지만 기존 탄소 회계(Carbon Accounting)는 여러 사업장과 부서에서 데이터를 수집해 사람이 취합·검증하는 경우가 많아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고 오류가 발생하기도 쉬웠다.
일부에서는 AI가 이러한 탄소 회계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3월 학술논문 사전 공개 플랫폼 '프리프린츠(Preprints.org)'에 게재된 한 논문에서는 AI 기반 탄소 회계 도구를 도입한 120개 기업을 조사한 결과를 소개했다.
조사 대상 기업의 75%가 데이터 정확도 향상을 경험했고, 78%는 보고 과정의 효율성이 개선됐다고 답했다. 46%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규제 대응 능력도 크게 향상됐다고 평가했다.
AI가 단순한 업무 자동화를 넘어 기업의 탄소정보 관리와 규제 대응 능력을 높일 수 있다는 의미다. 다만 초기 투자비용과 기존 정보시스템과의 통합, 직원들의 기술 적응 등은 과제로 지적됐다.
◇공급망 탄소 배출도 한눈에 확인
기업 내부뿐 아니라 복잡하게 연결된 글로벌 공급망 전체의 탄소 배출을 추적하는 데도 AI와 디지털 기술의 결합이 활용되고 있다.
지난 2024년 국제산업·시스템공학회(IISE) 연례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연구에서 아랍에미리트 칼리파 과학기술대학교 연구진은 블록체인·사물인터넷(IoT)·AI를 결합한 지속가능한 공급망 탄소 회계 체계를 제안했다.
IoT 센서가 생산 현장의 데이터를 수집하면 블록체인이 데이터의 투명성과 위변조 방지를 지원하고, AI가 공급망 전체의 데이터를 분석해 탄소 배출이 집중되는 '핫스팟'을 찾아내는 방식이다.
산업단지처럼 여러 기업과 생산설비가 밀집한 공간에서는 디지털 트윈과 에지 AI를 활용한 탄소 관리 기술도 등장하고 있다.
디지털 트윈(digital twin)은 실제 공장·설비·전력망 등의 상태와 작동을 가상공간에 똑같이 구현해 실시간 데이터를 바탕으로 상태를 분석하고 미래 상황을 예측하는 기술을 말한다. 에지 AI(Edge AI)는 데이터를 중앙 서버나 클라우드로 보내지 않고 센서나 기기 등 데이터가 발생하는 현장에서 AI가 직접 분석·판단하도록 하는 기술이다.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로스앤젤레스캠퍼스(UCLA)의 버질 페피스 교수팀은 현 센서의 오류나 데이터 누락이 발생하더라도 AI가 남아 있는 데이터를 활용해 탄소 배출을 예측하고 관리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위성으로 메탄 누출까지 찾아낸다
AI의 활용이 특히 주목되는 분야가 메탄이다. 메탄은 단기간 온난화 효과가 이산화탄소보다 훨씬 강해 조기 감축의 기후효과가 크지만, 배출원이 다양하고 간헐적으로 발생해 누출 지점을 찾기가 쉽지 않다.
지난달 국제학술지 '환경과학·기술(Environmental Science & Technology)'에 실린 리뷰 논문에서는 2018~2025년 발표된 메탄 배출 관련 AI·머신러닝 연구 63편, 93개 모델 사례를 분석했다.
연구진은 메탄 배출을 '찾아내기→배출량을 계산하기→감축 조치로 연결하기'의 세 단계로 나눠 AI의 활용 가능성을 분석했다. 메탄 배출 모니터링(감지, 위치 추적, 정량화, 예측)과 이를 실제 감축과 연계하는 방안 등을 검토한 것이다.
실제로 AI는 위성·항공영상과 지상 센서 등을 분석해 메탄이 새는 지점과 배출 규모를 파악하고, 이를 바탕으로 어느 곳부터 점검하고 수리해야 가장 큰 감축 효과를 얻을 수 있는지 판단하는 데 활용될 수 있다.
AI 기술을 이용하면 위성사진을 분석해 가로·세로 약 100m 정도의 작은 지역에서 발생하는 메탄 누출도 찾아낼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초분광영상 분석에 특화된 AI 모델인 '메타넷(MethaNet)'은 시간당 40㎏이 넘는 대규모 메탄 배출원의 배출량을 실제 값과 약 17% 정도의 오차 범위에서 추정했다.
연구진은 그러나 AI의 역할이 누출을 찾아내는 데 그쳐서는 안 되며, 실제 시설을 보수해 얼마나 많은 메탄을 줄였는지 측정·검증하는 단계까지 연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력망도 AI로 탄소 최적화
전력 수요를 사전에 예측하고 전력망을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데에도 AI가 활용되고 있다.
지난달 '국제 정보통신기술 저널(International Journal of Information and Communication Technology)'에 발표된 연구에서 중국 국가전망 신장전력공사 연구진은 새로운 전력 소비 예측 모델을 제시했다.
이 모델은 건물과 산업시설의 시간별 에너지 사용 데이터를 학습해 전력 소비와 탄소 배출 패턴을 예측한다.
이 같은 기술을 활용하면 전력 수요가 급증하기 전에 피크 부하를 분산하고,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 발전량 변화에 맞춰 전력망을 조정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전력계통의 탄소집약도를 낮추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슈나이더 일렉트릭은 AI를 활용해 에너지 시스템과 전력망 운영을 최적화하고 있다. 미국의 송전망 기술기업 라인비전(LineVision)은 기상·풍속 데이터를 분석해 기존 송전선의 송전 가능 용량을 높이는 동적 송전용량(DLR) 기술을 활용하고 있다.
▲인공지능(AI)이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방법들. (이미지=챗GPT)
◇AI의 탄소 발자국보다 감축 효과가 클까
AI와 데이터센터의 환경 부담에 대한 우려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AI 연산량이 증가할수록 데이터센터의 전력과 물 사용량도 늘어나기 때문이다.
또, AI가 화석연료 채굴과 운반, 이용에서 채산성을 높여 화석연료 사용을 부추겨 온실가스를 더 많이 배출하도록 한다.
하지만 AI가 에너지·산업·운송 등 전 분야의 효율을 높일 경우 그 감축 효과가 AI 자체의 환경 부담을 넘어설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마이크로소프트 지속가능성 과학·혁신 부문의 에이미 루어스(Amy Luers) 박사 등은 2024년 4월 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에 기고한 글에서 “AI가 산업 전반의 효율성을 높여 온실가스 감축에 기여할 가능성이 크지만, AI 자체의 에너지·자원 소비에 따른 환경 부담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25년 4월 발표한 '에너지와 인공지능(Energy and AI)' 보고서에서 AI를 에너지·산업·운송·건물 등에 광범위하게 적용할 경우 2035년 연간 약 14억t의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어 런던정치경제대학교(LSE) 니컬러스 스턴 등이 참여한 연구진은 2025년 6월 국제학술지 'npj 기후행동(Climate Action)'에 발표한 연구에서 AI를 전력·식품·모빌리티 분야에 적용하면 2035년 연간 32억~54억t의 온실가스 배출을 줄일 잠재력이 있다고 분석했다.
AI의 진정한 가치는 탄소가 어디에서 발생하고 언제 증가하며 어떤 조치를 취했을 때 얼마나 줄어드는지를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실제 감축으로 연결하는 데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바로 AI가 동시에 탄소 감축을 가속화하는 '넷제로 내비게이터'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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