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경제 포토

여헌우

yes@ekn.kr

여헌우기자 기사모음




[진격의 K-뷰티⑥] 韓 넘어 세계로···CJ올리브영 ‘질주’ 무섭다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6.09.19 09:50

美 1·2호점 ‘오픈런’ 이어 체험형 뷰티 축제 ‘LA 페스타’ 사흘간 10만명 몰려
세포라 美 580여개 매장에도 ‘올리브영 K뷰티에딧’…아시아·유럽까지 확대
국내선 외국인 구매액 올해 벌써 1조원…192개국 소비자 찾는 ‘K뷰티 성지’

한국 화장품이 세계 시장의 변방에서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 중국인 단체관광객과 따이공(보따리상)에 기대어 성장하던 시대를 지나 미국·유럽·일본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 'K-뷰티'를 직접 찾는 소비자가 늘었다. 대기업뿐 아니라 국내에서는 이름조차 생소했던 중소·인디 브랜드가 아마존과 틱톡에서 세계적인 제품을 만들어낸다. 제품을 생산하는 제조자개발생산(ODM) 기업과 용기업체, 상품을 세계 각지로 실어 나르는 유통기업도 함께 성장하고 있다. 에너지경제신문은 수출 지형과 인기 브랜드, 제조 경쟁력, 해외 유통망, 소비 현장 등을 통해 K-뷰티 열풍의 현재를 진단하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과제를 짚어본다. <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진격의 K-뷰티①] 화장품이 제2의 반도체? 글로벌 영토 확장 '가속 페달'


[진격의 K-뷰티②] 한류 열풍에 트렌디한 마케팅까지…'인기몰이' 이유 있었다




[진격의 K-뷰티③] '인기 브랜드' 면면 살펴보니…기초부터 헤어케어까지 '각양각색'


[진격의 K-뷰티④] ODM의 힘…韓 기업들 '글로벌 열풍' 이끈다


[진격의 K-뷰티⑤] 외국인 心 잡은 한국 화장품…관광객들 '장바구니' 살펴보니


[진격의 K-뷰티⑥] 韓 넘어 세계로···CJ올리브영 '질주' 무섭다


[진격의 K-뷰티⑦] 수출 지도 바꾼 한국…글로벌 트렌드 변화 속도도 빠르다


[진격의 K-뷰티⑧] 잘나가니 짝퉁도 기승…브랜드 지키기 “방심은 금물"


[진격의 K-뷰티⑨] “단순 유행 넘어 원천 기술력 및 R&D 고도화 역량 쌓아야"




[진격의 K-뷰티⑩] “정부 인프라 지원 절실…해외 규격 인증도 적극 지원해야"


지난 5월29일 올리브영 미국 패서지나점 개점 첫날 매장 입장을 기다리는 현지 소비자들.

▲지난 5월29일 올리브영 미국 패서지나점 개점 첫날 매장 입장을 기다리는 현지 소비자들.


K-뷰티가 세계 시장을 질주하는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기업이 있다. CJ올리브영이다.


아모레퍼시픽이나 LG생활건강처럼 직접 화장품을 만들어 성장한 기업과는 결이 다르다. 메디큐브와 아누아, 조선미녀 등 최근 세계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인디 브랜드와도 역할이 다르다.


올리브영의 경쟁력은 수많은 제품 가운데 잘 팔릴 상품을 골라 소비자에게 소개하는 '큐레이션'에 있다. 국내에서는 신생 브랜드가 소비자와 만나는 등용문 역할을 했다. 외국인 관광객에게는 한국의 최신 화장품을 한곳에서 경험하는 'K-뷰티 성지'가 됐다.


이제는 역할을 세계로 넓히고 있다. 미국에 직접 매장을 열고 온라인몰과 물류센터를 구축했다. 세계적인 화장품 유통업체 세포라와 손잡고 한국 중소·인디 브랜드를 해외 매장에 소개한다. 국내에서 K-뷰티 생태계를 키워온 유통 플랫폼이 해외로 직접 진격하기 시작한 셈이다.


올리브영이 지난달 개최한 '올리브영 페스타 LA' 현장이 방문객들로 북적이고 있다.

▲올리브영이 지난달 개최한 '올리브영 페스타 LA' 현장이 방문객들로 북적이고 있다.

◇ LA에 10만명 몰렸다…美서도 통하는 '올리브영'


미국 시장에서 나타난 초기 반응은 뜨겁다. 지난달 14~16일(이하 현지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열린 '올리브영 페스타 LA 2026'에는 사흘간 10만명의 관람객이 몰렸다. 올리브영이 2019년 국내에서 시작한 체험형 뷰티 축제를 해외에서 선보인 첫 사례다.


KCON LA 2026과 연계해 1422평 규모로 꾸린 행사장에는 55개 K-뷰티·라이프스타일 브랜드가 참여했다.


현장 분위기도 한국의 올리브영을 단순히 미국으로 옮기는 데 그치지 않았다. 행사장 입구에서는 서울 지하철역 안내음이 흘러나왔다. 내부에는 강남과 성수, 명동, 홍대 등 서울의 대표 상권을 재현했다. 한글 도로표지판과 버스정류장, 횡단보도를 배치해 관람객이 K-뷰티와 한국 문화를 함께 경험하도록 했다.


제품을 진열하는 방식에도 한국에서 축적한 노하우를 적용했다. 행사장 중앙의 '올리브영 스토어'에서는 더블클렌징부터 패드, 세럼, 선케어로 이어지는 순서대로 상품을 배치했다. 현지 소비자가 한국식 스킨케어 루틴을 직접 따라가며 제품을 비교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퍼스널 컬러를 진단해 상품을 추천하는 '마이 컬러 바이브', 피부 상태를 분석해 솔루션을 제공하는 '스킨스캔' 등 체험 공간에는 행사 기간 긴 대기줄이 이어졌다.


브랜드에도 기회가 됐다. 페스타에 참여한 55개 브랜드는 모두 미국 올리브영 매장에 입점한 곳이다. 개별 중소기업이 미국에서 대규모 행사를 열기 어려운 상황에서 올리브영이 소비자와 직접 만나는 공간을 마련한 것이다.


올리브영이 K-뷰티를 '파는 곳'을 넘어 해외 소비자가 새로운 브랜드를 '발견하는 곳'을 노리고 있다는 의미다.


LA 페스타에 앞서 문을 연 미국 오프라인 매장에서도 비슷한 분위기가 나타났다. 올리브영은 지난해 1월 미국 현지법인 'CJ Olive Young USA'를 설립한 뒤 올해 5월 미국 오프라인 사업을 본격화했다. 캘리포니아 패서디나에 미국 첫 매장을 열고 미국 전용 온라인몰도 동시에 선보였다.


패서디나점은 연면적 803㎡(약 243평) 규모의 단층 대형 매장이다. 애플스토어와 인접해 있고 도보 1~2분 거리에는 룰루레몬과 알로요가, 티파니앤코 등 글로벌 브랜드 매장이 자리 잡고 있다.


전체 입점 브랜드의 80% 이상을 K-뷰티·웰니스 브랜드로 채웠다. 약 400개 브랜드, 5000개 이상의 상품을 취급한다. 메디힐·바이오던스·아누아·토리든·롬앤·퓌·미장센·어노브 등 한국 브랜드가 대거 들어갔다.


6월에는 LA 웨스트필드 센추리시티에 두 번째 매장을 열었다. 베벌리힐스와 로데오드라이브에서 차로 5~10분 거리인 프리미엄 상권이다. 문을 열자 새벽부터 소비자가 몰렸다. 쇼핑몰 내부에 100m가 넘는 대기줄이 생길 정도로 '오픈런'이 벌어졌다.


미국 소비자의 높은 스킨케어 관심을 반영해 센추리시티점의 관련 매대는 국내 표준 매장보다 1.5배 크게 만들었다. 세럼과 에센스를 모은 공간, 토너패드와 선케어 제품을 소개하는 공간, 한국에서 사용하는 뷰티 디바이스 전용 공간도 별도로 꾸렸다. 피부 상태를 분석해 제품을 추천하는 스킨스캔 서비스도 제공한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블루밍턴에 위치한 올리브영 미국 서부센터 외부전경.

▲미국 캘리포니아주 블루밍턴에 위치한 올리브영 미국 서부센터 외부전경.

◇ 매장 2개인데 美 전역으로…비결은 '세포라'


올리브영의 미국 공략이 눈길을 끄는 이유는 직접 매장만 늘리는 방식이 아니라는 데 있다. 현재 자체 오프라인 매장은 캘리포니아를 중심으로 출발했지만 세계적인 화장품 유통 플랫폼 세포라를 활용해 단숨에 미국 전역으로 소비자 접점을 넓히고 있다.


올리브영은 지난달 20일부터 미국 세포라 오프라인 매장 580여곳과 온라인몰에 '올리브영 K뷰티에딧(OLIVE YOUNG K-Beauty Edit)'을 선보였다. 지난 1월 세포라와 체결한 파트너십의 결과물이다.


매대에는 올리브영이 직접 고른 19개 K-뷰티 브랜드의 제품 약 150종이 들어갔다. 미국 소비자에게 인기가 높은 세럼과 크림, 선케어부터 토너패드와 새로운 제형의 클렌저, 마스크팩까지 K-스킨케어 루틴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구성했다.


여기에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한국의 작은 화장품 브랜드가 미국에서 직접 세포라 입점을 추진하려면 브랜드 인지도부터 유통 협상, 물류, 마케팅까지 상당한 진입장벽을 넘어야 한다.


올리브영이라는 플랫폼을 거치면 얘기가 달라진다. 국내 판매 데이터와 소비자 반응을 토대로 가능성이 있는 제품을 골라낸 뒤 '올리브영이 선택한 K-뷰티'라는 묶음으로 세계적인 유통망에 진입할 수 있다. 올리브영이 단순한 화장품 판매업체가 아니라 한국 인디 브랜드의 해외 진출을 돕는 일종의 'K-뷰티 유통 인프라'를 자처하는 배경이다.


올리브영의 목적지는 미국만이 아니다. 회사는 미국에서 시작한 'K뷰티에딧'을 올해 안에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태국, 홍콩의 세포라 오프라인 매장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내년에는 캐나다와 호주, 영국, 중동 등으로 진출 지역을 넓힌다.


오프라인 행사도 세계를 돈다. 국내에서 연 1회 열었던 올리브영 페스타를 올해부터 '월드투어' 형태로 바꿨다. 지난 5월 일본에 이어 8월 미국 LA에서 행사를 개최했다. 국내에서 인지도를 얻은 신생 브랜드를 해외 소비자에게 직접 보여주는 창구를 넓히겠다는 구상이다.


온라인에서는 글로벌몰이 또 다른 축이다. 올리브영 글로벌몰은 해외 소비자가 한국 화장품을 직접 구매할 수 있는 역직구 플랫폼이다. 국가별 상품과 프로모션을 운영하고 배송비와 배송기간을 개선하며 취급 브랜드를 늘리고 있다. 지난해 3월 글로벌몰 '올영세일'에 참여한 브랜드 수는 2021년과 비교해 약 3배로 증가했다.


미국에는 별도 온라인몰까지 만들었다. 캘리포니아 블루밍턴에 서부 통합물류센터를 구축하면서 기존 글로벌몰에서 영업일 기준 5~7일 걸렸던 배송기간을 미국 전용몰에서는 3~5일로 단축했다. 무료배송 기준도 60달러(약 8만원)에서 35달러(약 5만원)로 낮췄다.


지난 5월29일 올리브영 미국 패서지나점 개점 첫날 매장을 찾아 K뷰티 제품을 쇼핑하는 현지 소비자들.

▲지난 5월29일 올리브영 미국 패서지나점 개점 첫날 매장을 찾아 K뷰티 제품을 쇼핑하는 현지 소비자들.

◇ 한국에선 이미 'K뷰티 성지'…외국인이 0.9초마다 결제


올리브영이 미국에서 자신 있게 'K-뷰티 큐레이터'를 자처할 수 있는 배경에는 국내 시장에서 쌓은 영향력이 있다. 최근에는 한국인보다 외국인 소비자 관련 지표가 더욱 눈에 띈다.


올해 들어 8월까지 국내 올리브영 오프라인 매장에서 외국인이 구매한 금액은 1조원을 넘어섰다. 지난해에는 11월에야 1조원을 돌파했지만 올해는 시점이 3개월 빨라졌다. 1~8월 외국인 결제 건수는 1101만건이다. 회사가 매장 영업시간을 기준으로 환산한 결과 0.9초마다 외국인 결제가 한 번씩 발생한 셈이다. 세금 환급 데이터를 기준으로 올리브영에서 상품을 구매한 외국인의 국적은 192개국에 달했다.


더 눈에 띄는 것은 매출 구성이다. 2022년만 해도 국내 오프라인 매출에서 외국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2%에 불과했다. 올해 8월에는 33%까지 높아졌다. 3년여 만에 전체 매출의 3분의 1을 외국인 소비자가 만들어내는 수준으로 커진 것이다.


서울 명동이나 성수만의 현상도 아니다. 올해 1~8월 전체 외국인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47% 늘어난 가운데 강원 지역은 105%, 경주 88%, 대전 80%, 전주 62%의 증가율을 보였다. 올리브영이 한국 여행 중 한 번 들르는 화장품 매장을 넘어 외국인이 K-뷰티 트렌드를 확인하는 쇼룸으로 기능하기 시작했다는 의미로 읽힌다.


성수동에서 운영하는 '올리브영N 성수'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3월 기준 이 매장의 전체 매출 가운데 외국인 비중은 70%에 달했다. 피부 진단과 제품 추천을 결합한 스킨컨설팅 이용자의 72%도 외국인이었다.


올리브영 미국 센추리시티점 외부 전경.

▲올리브영 미국 센추리시티점 외부 전경.

◇ 신사동 작은 매장이 매출 5조8000억원 기업으로


지금의 위상을 감안하면 올리브영의 시작은 소박했다. 1999년 11월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첫 매장을 열었다. 당시 제일제당그룹 HBC(Health & Beauty Convenience) 사업부가 선보인 신사업이었다. 약국과 화장품 가게, 슈퍼 등으로 나뉘어 있던 건강·미용·생활용품을 한곳에 모으는 새로운 형태의 매장이었다.


처음부터 순항한 것은 아니다. 국내에 없던 시장을 개척하는 과정에서 규제와 사업모델 정립 등에 어려움을 겪었다.


전환점은 2008년이었다. 식품·헬스 중심의 드럭스토어에서 '헬스&뷰티 스토어'로 사업 정체성을 다시 잡고 20~30대 여성 소비자와 화장품을 중심으로 시장을 넓혔다.


매장은 빠르게 증가했다. 2008년 57개였던 점포 수는 2011년 100개를 넘어섰다. 2017년에는 1000호점을 돌파했다.


오프라인 매장만 늘린 것도 아니다. 2018년 업계 최초로 당일 배송 서비스 '오늘드림'을 선보이며 매장과 온라인몰을 연결했다. 코로나19 이후 온라인 구매가 급증하면서 이 같은 옴니채널 전략은 성장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


실적도 가파르게 뛰었다. CJ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올리브영의 별도 기준 매출은 2022년 2조7774억원에서 2023년 3조8611억원, 2024년 4조7900억원으로 늘었다. 지난해에는 5조8335억원을 기록해 전년 대비 21.8% 성장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7447억원으로 22.5% 증가했다. 3년 사이 매출이 두 배 이상으로 커진 셈이다.


올리브영 성장에서 매장 수나 매출보다 눈여겨볼 대목은 국내 화장품 산업에 미친 영향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해석이다. 과거 신생 화장품 브랜드가 소비자에게 제품을 알리려면 자체 매장을 내거나 백화점·대형마트 등에 입점해야 했다. 대규모 광고도 필요했다.


올리브영은 다른 방식을 만들었다. 여러 브랜드를 한 매장에 모으고 판매 데이터와 트렌드를 토대로 제품을 선별했다. 소비자는 브랜드 이름을 몰라도 '올리브영에서 잘 팔리는 제품'을 발견할 수 있게 됐다. 신생 브랜드 입장에서는 전국 유통망과 온라인몰을 통해 단기간에 소비자와 만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미국 하버드 경영대학원은 지난해 올리브영과 중소기업의 동반성장 사례를 수업 교재로 채택했다. 하버드 측은 유망 신진 브랜드를 발굴·육성하고 매장과 온라인, 글로벌 채널 등 인프라를 활용해 브랜드 성장을 지원한 구조를 주목했다.


다만 올리브영이 '성공스토리'를 써내려가고 있다고 해서 해외 사업이 무조건 성공을 보장받은 것은 아니다. 미국에는 세포라와 얼타뷰티를 비롯해 이미 강력한 뷰티 전문 유통업체가 자리 잡고 있다. 아마존과 틱톡숍 등 온라인 플랫폼의 영향력도 막강하다. 세계 최대 화장품 시장에서 이제 막 자체 매장을 열기 시작한 올리브영은 이들과 경쟁하며 현지 소비자에게 독자적인 브랜드 가치를 증명해야 한다.


업계 한 관계자는 “올리브영 입장에서는 다음 목표를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화장품 매장'이 아니라 '세계 소비자가 새로운 K-뷰티를 발견하는 첫 번째 관문'으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