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사진=AP/연합)
미국과 전쟁 중인 이란이 극심한 경제적 압박에도 불구하고 결사항전 의지를 재확인했다. 이란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할 것이라며 전쟁이 미국 중간선거 직후 끝날 것이라고 호언장담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반대 입장이다.
9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이란의 한 고위 당국자는 “미국이 자국 영토와 인프라 시설에 대한 공격을 계속할 경우 보복 수위를 높여 전쟁을 더욱 격화시킬 준비가 돼 있다"며 “미 해군의 해상봉쇄와 이란 유조선 공격에도 이란은 물러설 의사가 없다"고 밝혔다.
이란은 미국의 봉쇄로 이란이 받는 경제적 타격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미국과의 전쟁을 국가 존립 자체를 위협하는 사안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전쟁을 계속하는 것 외에는 선택지가 거의 없다는 설명이다.
이 당국자는 또 전쟁이 가장 격렬했던 지난 4월 이후 이란이 군사력을 재건해왔으며, 장기전을 이어갈 수 있을 만큼 충분한 미사일도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이란 측의 이 같은 입장은 중동에서 양국 간 무력 충돌이 다시 격화하는 와중에 나왔다.
중동 지역 미군을 총괄하는 미 중부사령부는 이란산 원유를 운반하던 유조선 5척을 파괴했다고 전날 발표했다. 이번 공격은 이란 혁명수비대가 지난 이틀간 탄도미사일을 동원해 미 군함을 두 차례 공격하려 한 데 대한 보복이라고 설명했다.
이란은 이에 맞서 미 군함 2척과 유조선 8척을 공격했다고 로이터통신은 보도했다. 이란은 이와 별도로 요르단에 위치한 미군기지를 향해 약 20발의 탄도미사일도 발사했다.
최근 미국과 이란의 무력 공방은 지난달 30일 미군이 호르무즈 해협에서 이란의 기뢰 설치용 로켓 발사대를 타격한 이후 다시 격화했다. 이후 이란이 중동에 위치한 미군기지를 공격하고 미국이 혁명수비대 관련 표적과 이란 유조선 등을 잇따라 타격하면서 보복이 또 다른 보복을 부르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사진=AFP/연합)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전쟁이 이르면 오는 11월 끝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공화당 중간선거 전당대회 참석을 위해 텍사스로 향하기 전 워싱턴DC 인근 앤드루스 합동기지에서 기자들과 만나 “중간선거가 끝나자마자 유가는 급격히 떨어질 것"이라며 “선거 직후 전쟁이 끝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전망의 근거를 묻는 질문에는 “그들은 더 이상 버틸 수 없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쟁이 7개월째 이어지는 상황에서도 그동안 여러 차례 미국의 승리를 강조해왔다.
이어 “그들은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고 필사적"이라며 “그래야 약한 사람들이 권력을 잡아 자신들을 내버려두고 핵무기를 갖도록 허용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공격은 우리가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며 “앞으로 더 많은 공격을 보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를 두고 CNBC는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발언이 전쟁과 이에 따른 고물가가 적어도 중간선거 전까지는 끝나지 않을 가능성을 이례적으로 인정한 셈이라고 짚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11월 종전론'을 회의적으로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미국 유가정보업체 개스버디의 패트릭 드한 석유시장 분석가는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이 주장한 '중간선거 이후 유가 하락' 전망에 대해 “그렇게 될 것이라는 어떠한 보장도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블룸버그 이코노믹스의 디나 에스판디아리는 “이란 정치권에서는 확전에 나설 것인지, 아니면 현재 수준에서 저항을 이어갈 것인지를 두고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그럼에도 이란은 미국의 확전에 어떻게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보복할지를 결정하고 있다"며 “이는 이란이 미국의 행동에 대응할 수 있는 여러 단계의 대응 수단을 마련해뒀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심지어 트럼프 행정부 내부에서도 이란 전쟁이 장기화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 분위기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JD 밴스 미국 부통령과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을 포함한 백악관 고위 참모들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이번 전쟁이 그의 임기가 끝나는 2029년 1월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비공개로 경고했다고 보도했다.
▲9일 이란 테헤란 거리(사진=EPA/연합)
다만 미국의 봉쇄로 이란 경제가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다는 점은 향후 전쟁의 향방을 가를 변수다.
이란은 원유 수출이 사실상 막히고 주요 생필품 수입에도 차질을 빚으면서 물가상승률이 90%에 육박하고 있다. 리알화 가치도 빠르게 추락하고 있다. 지난해 말에는 경제난을 배경으로 대규모 반정부 시위까지 발생했고, 당국의 강경 진압 과정에서 수천 명이 숨졌다.
이란 내부에서도 협상론이 없는 것은 아니다.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을 비롯한 일부 당국자들은 경제적 압박을 완화하기 위해 미국과 협상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역시 미국이 먼저 봉쇄를 해제하고 지난 6월 체결됐다가 무산된 종전 양해각서(MOU)의 조건으로 복귀해야 협상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미국은 경제적 압박을 통해 이란의 굴복을 끌어내려 하고 있지만, 이란은 미국이 향후 재공격을 주저할 정도의 억지력을 확보할 때까지 버티겠다는 입장이어서 양측의 간극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모양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간선거 직후 종전을 자신하고 있지만 현재로서는 어느 쪽도 먼저 물러설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어, 전쟁이 예상보다 훨씬 길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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