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 지수가 표시되고 있다.
한국 코스피를 비롯한 아시아 증시가 인공지능(AI) 관련주 중심으로 상승 랠리를 이어가고 있다. AI 시장 성장으로 수혜가 기대되는 업종들을 중심으로 코스피가 고공행진을 이어가자 상상 속 지수로 여겨졌던 '7천피'마저 가시권에 들어섰다. 그러나 중동 전쟁 장기화에 따른 고유가 리스크는 증시 상승 이면에 가려진 채 실물경제를 흔들고 있어, 현재의 기술주 중심 랠리가 불안한 흐름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코스피는 지난달 30일 전장 대비 1.38% 내린 6598.87에 거래를 마쳤다. 장중 한때 6750.27까지 오르며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지만, 결국 나흘 만에 하락 마감했다.
그럼에도 코스피는 올 4월에만 30.61% 급등하며 주요국 증시 가운데 압도적인 수익률 1위를 기록했다. AI 수혜 지역으로 꼽히는 일본 닛케이지수(16%)와 대만 가권지수(22.7%)를 크게 웃도는 상승폭이다. 한국 증시는 이란 전쟁 발발 직후인 지난 3월 주요국 증시 중 가장 큰 낙폭을 기록했지만, 이달 들어 상황이 급반전됐다.
상승의 핵심 동력은 반도체 슈퍼사이클에 따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어닝 서프라이즈'였다. 블룸버그통신은 “중동 전쟁 이후 AI 관련주로 자금이 재유입되면서 아시아 기술주 지수가 약 10% 상승해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고 전했다.
반면 다른 업종은 비용 상승과 공급망 차질에 따른 수익성 악화를 경고하고 있다. 실제로 정보기술(IT)과 에너지를 제외한 대부분 섹터는 전쟁 이후 수익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으며, MSCI 아시아태평양 임의소비재 지수는 약 11% 하락했다.
IG인터내셔널의 파비앙 입 시장 분석가는 “AI를 제외하면 뚜렷한 상승 동력이 부재한 상황이며, 많은 기업들이 분쟁에 대한 불확실성이 해소될 때까지 투자 계획과 수익성 전망을 보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란 전쟁 발발 이후 4월 30일까지 아시아 주요 섹터별 흐름(사진=블룸버그)
이 같은 격차는 에너지 비용 상승이 원유 수입 의존도가 높은 아시아 국가들의 소비와 기업 수익성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우려를 보여준다고 블룸버그는 지적했다. 실제로 국제유가는 전쟁 발발 이후 50% 넘게 급등했다.
밴티지 글로벌 프라임의 헤베 첸 선임 시장 분석가는 “현재 시장은 두 개의 세계가 공존하는 단일 엔진 구조로, 기술주가 사실상 진공 상태에서 수익을 내는 반면 실물 경제는 전쟁으로 인한 충격을 흡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IT 섹터의 회복력은 자신감을 반영하는 것보다 에너지 비용 상승에 취약한 섹터들이 배제된 결과"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불균형은 채권 시장에서 더욱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고유가가 장기화될 경우 아시아 신흥국 채권 금리가 예상보다 빠르게 상승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블룸버그 분석에 따르면 이란 전쟁 발발 이후 두 달 동안 브렌트유가 10% 상승할 때마다 아시아 10년물 국채 금리는 평균 14bp(1bp=0.01%포인트) 상승한 것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전쟁이 3개월 차에 접어들 경우 상승폭은 16bp로 확대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해당 전망은 2017년 이후 네 차례의 유가 급등 국면을 분석한 결과를 기반으로 했다. 과거에는 유가가 10% 오를 때 첫 4주 동안 아시아 10년물 금리가 평균 2bp 상승하는 데 그쳤지만, 8주 차에는 13bp, 12주 차에는 약 16bp까지 상승폭이 확대됐다.
RBC 블루베이 자산운용의 앤서니 케틀 선임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전쟁 장기화에 따른 펀더멘털 악화 가능성이 시장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에너지를 넘어 석유화학과 비료 공급까지 차질이 발생할 경우 스태그플레이션을 촉발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유가 충격에 따른 인플레이션 영향이 실물경제에 본격적으로 반영되기까지 약 2~3개월이 소요되는 만큼, 현재 증시에 반영되지 않은 부담이 향후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사진=로이터/연합)
이에 따라 시장에서는 AI 중심 랠리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의문도 커지고 있다. 빅테크 기업들의 투자 속도가 둔화되거나 기대 대비 수익성이 낮아질 경우, 현재 시장을 지탱하고 있는 상승 동력이 약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JP모건증권 재팬의 타카다 마사나리 퀀트·파생상품 전략가는 “AI 관련 종목으로의 자금 쏠림은 장기적으로 지속되기 어렵다"며 “AI·반도체를 제외한 나머지 섹터의 불확실성이 완화되고 자금이 순환하지 않는 한 투기적 자금 유입은 정체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이런 가운데 JP모건 수석 전략가 출신인 마르코 콜라노비치는 이날 자신 소셜미디어 엑스를 통해 “AI 자본지출로 메타 주가가 10% 가까이 하락한 점은 AI 모멘텀 트레이드에 대한 경각심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적었다. 과거 정확한 시장 예측으로 '간달프'라는 별칭을 얻었던 콜라노비치는 지난달부터 '코스피 거품론'을 강하게 제기해 왔다.
이날 뉴욕증시에서 메타 주가는 전장 대비 8.55% 급락해 지난해 10월 30일 이후 가장 큰 하락폭을 기록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이용자가 처음으로 감소한 데다 자본지출 증가 전망치가 상향된 상황 속에서 메타가 수익을 어떻게 창출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제시하지 못한 점이 실망감으로 이어졌다고 블룸버그는 설명했다.
메타는 올해 자본지출 예상치를 기존의 1150억∼1350억 달러에서 1250억∼1450억 달러로 상향 조정했다. 수잔 리 메타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이번 지출 확대가 AI 전력에 대한 확신에 따른 것임과 동시에 부품 가격 상승과 추가 데이터센터 비용 증가도 영향을 미쳤다고 밝혔다.
AI 자본지출에 대한 우려로 JP모건은 메타에 대한 투자 의견을 기존 '비중확대'에서 '중립'으로 하향 조정했다고 CNBC는 전했다.
일각에선 낙관론도 제기됐다. 노스라이트 자산운용의 크리스 자카렐리는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기업들이 수익을 늘릴 수 있는 한, 에너지 가격 상승과 인플레이션에도 불구하고 주가는 상승세를 이어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구글 모회사 알파벳도 AI 수요 증가에 대응해 올해 자본지출 전망치를 기존 1750억~1850억달러에서 1800억~1900억 달러로 높였다. 그러나 알파벳 주가는 이날 9.96% 급등했다. 클라우드 부문의 가파른 성장세에 힘입어 4년 만에 가장 높은 매출 성장세를 기록한 것이 긍정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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