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사진=AP/연합)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세계 원유 수송의 핵심 요충지인 '호르무즈 해협 봉쇄'에 나서기로 하면서 한국을 비롯한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아시아 국가들의 경제 위기가 심화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확산하고 있다. 최근 파키스탄에서 열린 미국과 이란 간 '마라톤 협상'이 최종 결렬되자, 이란의 해상 수송로를 차단해 종전 협상의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다만 이 과정에서 전쟁 향방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커지며 국제유가가 급등하고, 아시아 국가들이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도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 “모든 선박 봉쇄"…이란 자금줄 차단 노린 초강수
트럼프 대통령은 12일(현지시간)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세계 최강인 미 해군이 호르무즈 해협으로 들어오거나 떠나는 모든 선박을 봉쇄하는 절차를 즉각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이란의 주요 원유 수출로를 차단하는 동시에,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에 대한 이란의 통행료 징수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남은 휴전 기간 동안 이란의 자금줄을 압박해 해협 개방을 유도하고, 종전 협상을 미국에 유리하게 끌고 가기 위한 '역(逆) 봉쇄' 전략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의 포고에 따라 중동 지역 미군을 관할하는 미 중부사령부는 성명을 내고 13일 오전 10시(미 동부시간 기준·한국시간 13일 오후 11시)부터 이란 항구를 출입하는 모든 해상 교통에 대한 봉쇄 조치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중부사령부는 이번 조치가 아라비아만과 오만만에 위치한 모든 이란 항구를 포함해, 이란 연안 지역을 출입하는 모든 국가 선박에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전 미국 외교관인 데니스 로스는 이란의 핵심 원유 수출 거점인 하르그섬을 군사적으로 점령하는 것보다 위험이 낮은 대안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하르그섬은 이란이 반드시 지켜야 하는 핵심 자산으로, 미국이 점령할 수는 있지만 상당한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며 “이번 조치는 훨씬 더 현명한 선택"이라고 블룸버그통신에 말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조치는 지정학적 긴장을 한층 고조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경제적 파장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실제로 이란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는 미국이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시도할 경우 강력한 군사적 보복에 나서겠다고 경고했다. 이에 따라 휴전 기간 중 호르무즈 해협에서 미군과 이란군이 직접 충돌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옵시디언 리스크 어드바이저스의 브렛 에릭슨 책임자는 “현재 전 세계가 에너지 비상 상황에 직면해 있고 미국의 경제적 대응 또한 완전히 일관성을 잃은 상태"라며 “트럼프 행정부는 아시아 동맹국에 피해를 주거나, 이란이 글로벌 에너지 시장을 활용하도록 방치하는 선택지 사이에서 궁지에 몰려 있다"고 지적했다.
◇ 유가 다시 100달러 돌파…중국 변수까지
▲2025년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국가별 원유 유입 비중(사진=블룸버그)
블룸버그 이코노믹스는 이날 보고서를 통해 “최근 상황 전개는 글로벌 경제와 시장의 초점을 다시 하방 리스크로 이동시키고 있다"며 “이는 유가 상승과 함께 성장 둔화 및 인플레이션 상승 압력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실제로 국제유가는 미국의 봉쇄 조치 발표 이후 배럴당 100달러선을 다시 돌파했다. 인베스팅닷컴에 따르면 글로벌 벤치마크인 브렌트유 선물 가격은 한국시간 13일 오전 11시 8분 기준, 전장 대비 6.99% 급등한 배럴당 101.85달러를 기록 중이다.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 가격 역시 같은 시각 배럴당 104.59달러로 전 거래일 대비 8.3% 뛴 상태다.
트럼프 대통령도 유가가 오를 가능성을 인정했다. 그는 이날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가을까지 유가와 휘발유 가격이 하락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그럴 수도 있고, 동일할 수도 있으며, 아마도 좀 더 높아질 수도 있다. 하지만 대체로 비슷한 수준일 것"이라고 답했다.
중국의 대응 역시 불확실성을 키우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중국·러시아 등 이란 우호국 선박도 미국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 대상이 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중국이 오는 5월로 예정된 트럼프 대통령의 방중을 앞두고 핵심 광물 수출 통제 등을 지렛대로 삼아 봉쇄 해제를 압박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 “국제유가 170달러 갈 수도"…3가지 시나리오
▲지난달 11일 아랍에미리트 북부 라스알카이마(오만의 무산담 정부와 접경 지역)에서 바라본 호르무즈 해협 인근의 걸프만 해상에 화물선이 정박해 있다. (사진=로이터/연합)
블룸버그 이코노믹스는 이번 전쟁이 글로벌 경제에 미칠 영향을 세 가지 시나리오로 제시했다.
기본 시나리오에서는 중동 갈등이 낮은 강도로 지속되며 국제유가가 2분기 평균 배럴당 105달러를 기록한 뒤 4분기에는 85달러로 하락하는 것으로 가정했다. 이 경우 글로벌 국내총생산(GDP)은 2.9% 성장하고, 인플레이션은 4.2% 수준이 될 것으로 전망됐다.
반면 무력 충돌이 격화되고 호르무즈 해협이 수개월간 봉쇄될 경우 국제유가는 배럴당 170달러까지 치솟을 수 있다. 이 경우 글로벌 성장률은 2.2%로 둔화되고, 인플레이션은 연말 기준 5.4%에 이를 것으로 예상됐다.
휴전이 장기화되거나 이란 정권이 붕괴되는 낙관적 시나리오에서는 유가가 전쟁 이전 수준으로 하락하고, 글로벌 성장률과 인플레이션은 각각 3.1%, 3.7%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됐다.
보고서는 “어떤 시나리오가 가장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은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며 “향후 전개를 지켜봐야 하지만, 현재로서는 기본 시나리오가 전체적인 흐름을 설명하는 데 가장 적절해 보인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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