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조천읍 북촌리에 위치한 북촌 베스 발전소의 모습. 사진= 이원희 기자
“전력가격이 마이너스일 때 배터리에 최대한 담고 가격이 다시 오를 때 방전해 팔아 차익을 얻는 것이 이 사업의 목표입니다."
27일 제주 월령리 월령신재생에너지시범단지에서는 에너지저장장치(ESS)를 활용한 전력 차익거래가 한창이다.
마치 주식처럼 가격이 내려갈 때 사서 오를 때 파는 구조다. 전력도 실시간 가격 변화에 따라 차익을 얻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특히 제주에서는 전력가격이 마이너스까지 떨어질 수 있어 더 큰 차익을 얻을 수 있다. 돈을 내고 전력을 사는 게 아니라 오히려 돈을 받으면서 전력을 얻는 효과다.
▲제주 월령리 월령신재생에너지시범단지에 위치한 VPP랩 사무소. 사진= 이원희 기자
“가상발전소로 배전망 연계 ESS 차익거래 실현"
이 같은 거래는 제주에서만 운영 중인 재생에너지 입찰제도 덕분에 가능하다. 입찰제도에서는 재생에너지 공급량이 수요보다 많을 경우 전력도매가격(계통한계가격·SMP)이 마이너스로 형성될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 태양광과 풍력 발전은 날씨에 따라 발전량이 수요보다 많은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발전량이 수요보다 많으면 전력망에 과부하를 일으켜 설비 고장과 정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에 마이너스 전기가격은 공급을 억제하고 수요를 늘리기 위한 취지로 도입됐다. 반면 육지에서는 아직 마이너스 가격이 허용되지 않으며 ESS를 활용한 차익거래도 제한돼있다.
에너지 IT기업 VPP랩은 해당 단지에서 가상발전소(VPP)를 활용해 총 1MWh 규모의 배터리를 운영하며 전력 차익거래를 실현하고 있다. 아직 용량은 크지 않아 수익이 제한적이지만 향후 시장 확대를 대비해 사업 역량을 축적하는 단계다.
VPP는 소규모 재생에너지 설비와 배터리를 하나로 묶어 마치 하나의 발전소처럼 운영하는 IT 기반 통합관리 기술을 말한다. 이들은 VPP에 속한 재생에너지 발전량을 예측하고 SMP 흐름에 따라 ESS에 전력을 저장할 준비를 한다.
예컨대 지난해 5월 25일 오후 12시부터 3시까지 SMP는 1MWh당 -7만2150원까지 떨어졌다. 태양광 발전량이 많은 시간대이기에 SMP가 마이너스로 나타났다. 이후 오후 3시부터는 태양광 발전량이 줄면서 12만5750원으로 급등했다. 이 경우 12시부터 3시까지는 1MWh당 7만2150원을 받으면서 전력을 배터리에 충전하고 3시 이후에는 이를 12만5750원에 판매하는 구조가 가능하다.
이번 달에는 마이너스 가격이 발생하지 않았지만 SMP가 0원까지 하락한 사례가 있었다. SMP가 0원이면 전력을 공짜로 충전할 수 있어 차익거래에는 충분한 환경이 조성된다.
해당 사업이라고 무조건 가격에 따라서만 전력을 팔 수 있는 건 아니다. 배전망 내 전력수급 상황을 어느 정도 고려하고 그에 맞춰 전력을 판매한다.
VPP랩 관계자는 “이 사업은 배전망 연계 사업으로 한국전력과 실시간 배전망 내 계통 상황을 공유하며 거래를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제주에는 총 16개의 변전소가 있어 크게 16개 배전구역으로 나뉜다. 월령리 ESS는 해당 배전구역 내에서 전력을 거래하고 차익을 실현한다.
▲VPP랩의 재생에너지 발전량 예측 전망 모니터링 화면. 사진= 이원희 기자
송전망 연계 대규모 BESS, 전력당국 지시 우선
반면 제주시 조천읍 북촌리에 위치한 140MWh 규모 '제주 북촌 BESS 발전소'는 운영 방식이 다르다.
해당 발전소는 변전소가 아닌 송전망에 직접 연결돼 있다. 제주 전체 전력망과 하나로 연계된 설비다. 월령리 배터리보다 140배 큰 규모로 변전소 단위가 아닌 송전망 단위에서 운영된다.
이곳은 제주 전체 전력망 안정에 기여하는 방식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사업자가 주도적으로 결정해서 차익을 실현하기는 어렵다. 해당 발전소는 ESS 중앙계약시장 경쟁입찰을 통해 시장에 참여하며 제공 가능한 전력량과 가격을 사전에 정한다. 이후 전력거래소가 충·방전을 직접 지시하고 통제한다.
작동 원리는 비슷하다. 전력거래소는 재생에너지 공급이 과도하면 충전을, 부족하면 방전을 지시한다. 다만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차익은 사업자가 직접 취하는 구조라기보다 제주 지역 한전이 간접적으로 확보하는 형태에 가깝다. ESS 사업자는 계약에 기반한 정해진 수익을 얻는다.
ESS 사업자 입장에서는 전력거래소의 지시가 효율적인 ESS 운영 방식은 아닐 수 있다.
현장 관계자는 “전력 변환 과정에서 손실이 발생하기 때문에 잦은 충·방전은 효율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소규모 ESS는 사업자가 ESS 효율까지 감안해 운영할 수 있지만 대규모 설비는 전력거래소 지시 이행이 우선이다. 이를 따르지 않을 경우 패널티가 부과될 수 있어 수익에 큰 타격을 입을 수 있어서다.
이처럼 대규모 BESS는 제주 전체 전력망에 영향을 미치는 만큼 전력거래소 지시를 따르도록 입찰제도가 설계돼 있다.
▲제주도의 분산특구 사업 추진 현황 및 정책 제언. 자료= 제주도청
재생에너지 비중 24.3%…분산특구로 실험장 된 제주
제주도에서 이 같은 신사업이 활발히 추진되는 배경에는 높은 재생에너지 비중이 있다.
제주도청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제주도의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24.3%에 달했다. 육지는 10% 수준으로 비중만 놓고 보면 제주도가 두 배 이상 높다. 지난해 4월 14일에는 전국 최초로 4시간 동안 일시적 RE100(사용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조달)을 달성하기도 했다. 전기차 보급률도 10.7%에 이른다.
제주도는 전국보다 15년 빠른 2035년 탄소중립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하지만 재생에너지 확대에도 불구하고 재생에너지 설비에 대한 가동중단(출력제어)가 빈번히 발생하면서 제주 전역은 계통관리변전소로 지정됐다. 현재 신규 발전소 인허가는 잠정 보류된 상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이 분산에너지 특구다. 분산에너지는 지역에서 전기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지산지소형' 에너지 구조를 뜻한다. 특구 지정으로 분산에너지 사업자와 전력소비자 간 직접 전력거래가 허용되는 등 다양한 특례가 적용된다. 재생에너지 전력을 ESS 저장, 전기차 충전, 수소·열에너지 전환 등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제주도에 신규 재생에너지 설비가 더 들어올 수 있는 여력을 확보하겠다는 계획이다.
지난 26일 제주 엠버퓨어힐호텔에서 열린 '제2회 분산에너지 × VPP 비즈니스데이'에서도 제주형 분산에너지 활성화 방안이 논의됐다.
오경섭 제주도청 에너지산업과장은 “ESS와 V2G(전력망과 전기차 연결) 자원이 전력계통에 기여하는 만큼을 보상하는 전용시장 설계가 필요하다"며 “열과 수소의 가치도 반영해 요금 안정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옥기열 전력거래소 에너지시스템혁신본부장은 “현재 전력도매시장은 구조가 단순하다"며 “제주도 분산특구에서 소비자가 전력시장에 참여해 자유롭게 선택하도록 하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현재 육지에서도 재생에너지 입찰제도 도입이 예고돼 있다. 제주에서 실험을 이어온 에너지 IT 기업들은 육지 시장 개방을 대비해 사업 역량을 확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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