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형 성장 지속되나 수익성 악화 압박
약가 산정률 인하에 중소 제약사 비상
연구개발 성과 따라 기업 간 격차 심화
기대감 선반영에 시장 검증 판단 강화
현금 창출력이 신용도 방어 핵심 지표
지난해 글로벌 증시는 인공지능(AI) 등 제한된 업종과 테마에 수급이 집중되며 큰 변동성을 겪었다. 올해는 산업별 여건이 또 다른 국면을 맞이할 전망이다. 일부 산업은 회복 국면에 진입할 가능성이 거론되는 반면, 어떤 산업은 업황 부담이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AI부터 반도체, 자동차 등 각 섹터가 맞이할 다음 국면과 이를 바라보는 전문가들의 시각을 조망한다. [편집자주]
▲크레이시(CRAISEE)
올해 제약·바이오 산업은 기업 간 격차가 더욱 벌어질 전망이다. 의약품 수요 성장에도 불구하고 약가 인하와 연구개발(R&D) 투자 부담이 동시에 작용하면서다. 고령화와 만성질환 확대로 외형 성장 동력은 유지되고 있다. 다만 제도 환경 변화와 비용 구조 악화가 맞물리며 산업 전반을 끌어올리는 흐름은 약해질 전망이다. 제약·바이오에 2026년은 기대의 해가 아닌 실적과 재무 체력이 냉정하게 검증되는 시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제약 기업들의 올해 산업 전망. [사진=한국기업평가]
산업 구조·수요·성장 프레임 '외형 유지, 달라지는 구조'
제약·바이오 산업은 여전히 성장 산업으로 분류된다. 고령화 진입과 만성질환 확산이라는 구조적 요인이 유효해서다. 의약품 수요는 경기 변동과 무관하게 꾸준히 증가해 왔고, 이 흐름은 올해에도 이어질 전망이다. 신용평가사들 역시 산업 전체의 매출 성장 가능성 자체는 부정하지 않는다.
문제는 성장의 성격이다. 과거에는 수요 증가가 산업 전반의 실적 개선으로 연결됐다. 내수 중심 제약사도 일정 수준의 외형 성장을 기대할 수 있었고, 시장은 이를 하나의 산업 흐름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같은 환경에서도 기업별 실적 흐름이 뚜렷하게 갈린다.
신평사들은 이 같은 변화를 '산업 구조의 성숙'으로 본다. 단순 복제약(제네릭) 중심의 성장 모델은 한계에 직면했고, 이미 제품 포트폴리오와 R&D 성과가 실적을 좌우하는 구조로 전환됐다는 판단이다.
특히 신평사들은 올해도 업권의 외형은 성장하지만, 그 과실은 일부 기업에 집중될 것으로 보고 있다. 수출 비중이 높거나 자체 신약을 보유한 기업은 상대적으로 수익성 방어 여력이 상대적으로 크다. 약가 정책의 직접적인 영향에서 벗어나 있는 데다, 해외 매출과 파이프라인 성과에 따라 실적 가시성을 확보할 수 있어서다. 하지만 내수 의존도가 높은 제네릭 중소형 제약사는 성장의 체감도가 낮아지고 있다. 가격과 비용 구조가 동시에 압박을 받으면서 실적 개선 폭이 제한적이다.
R&D는 제약·바이오 산업 성장의 핵심 축으로 자리 잡았다. 다만 R&D 확대가 곧바로 실적 개선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임상 실패 가능성과 장기간의 투자 회수 구조는 기업별 재무 체력에 따라 부담 수준이 달라진다. 같은 R&D 투자라도 기업마다 결과는 전혀 다르게 나타난다.
이순주 한국기업평가 연구원은 “의약품 수요 증가에 힘입어 제약산업의 외형 성장세는 지속될 전망이나, 제품 포트폴리오와 R&D 성과에 따라 기업 간 실적 차별화는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한국신용평가
기대는 소화됐고 기준은 높아졌다…바이오 섹터의 재평가
증권가가 바라보는 올해 제약·바이오 산업의 핵심 키워드는 '검증'이다. 최근 수년간 시장은 기술이전과 글로벌 행사, 학회 발표 등 이벤트 중심으로 반응해 왔다. 그러나 이 같은 흐름이 올해는 나타나지 않았다는 평가다.
지난해 연말부터 이어졌던 기술이전 기대는 주가에 상당 부분 선반영됐다. 이후 가시적인 성과가 뒤따르지 않으면서 주가는 조정 국면에 들어섰다. 실제로 JP모건 헬스케어 콘퍼런스(JPMHC) 1일차인 지난 12일 한미약품, 에이비엘바이오, 리가켐바이오, 디앤디파마텍 등 주요 바이오 종목들이 동반 약세를 보이며 섹터 전반에서 '셀온'이 나타났다. 증권사들은 이를 단순한 실망이 아니라, 시장 기준이 높아진 결과로 해석한다.
JPMHC에서 글로벌 빅파마들의 대형 딜과 기술 트렌드는 분명했지만, 국내 기업은 주가로 이어질 만한 성과는 확인되지 않았다. 지난주 글로벌 빅파마들은 AI 신약 개발과 비만·항암 파이프라인을 중심으로 전략 방향을 보였다. 일라이 릴리와 엔비디아의 AI 신약 개발 파트너십(5년간 10억달러 투자, 한화 약 1조5000억원), 애브비와 중국 리메젠의 56억달러(8조2000억원) 규모 면역항암제 기술 도입, 노바티스의 BBB(혈뇌장벽) 셔틀 기술 계약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국내 기업의 경우 이를 실질적인 계약이나 숫자로 연결시키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증권사들은 단순 미팅 숫자나 파이프라인 소개만으로는 투자자들을 설득하기는 어렵다는 진단이다. 계약 규모와 조건, 일정 등 구체적인 결과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기대만으로 주가가 움직이던 시대는 끝났다'는 판단이다.
비만 치료제와 AI 신약 개발 역시 같은 맥락에서 평가된다. 테마의 유효성은 여전히 높지만 테마 자체에 프리미엄을 부여하는 단계는 지났다는 분석이다. 상업화 가능성과 실행력이 평가의 중심이 됐기 때문이다.
증권사들은 특히 비만 치료제 시장에서 경쟁의 초점이 바뀌고 있다고 본다. 가격 경쟁보다는 물량 확대와 보험 적용 범위, 공급 안정성이 핵심 변수로 부상했다. 누가 먼저 개발했느냐보다, 누가 더 안정적으로 시장을 장악할 수 있느냐가 중요해졌다는 의미다.
AI 역시 마찬가지다. AI 도입 여부보다 실제 임상 효율 개선, 개발 기간 단축, 비용 절감 효과가 확인돼야 한다. 기술을 보유했다는 사실만으로는 더 이상 평가받기 어렵다.
한승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JP모건 헬스케어 콘퍼런스 1일차 이후 국내 바이오 섹터는 셀온 국면에 진입했다"며 “글로벌 파트너사들의 코멘트가 기대에 못 미친 데다, 작년부터 구조적으로 높아진 밸류에이션 부담이 동시에 작용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이어 한 연구원은 “다만 금리 인하 기대와 코스닥 수혜 등 매크로 환경, 신규 딜과 글로벌 데이터 발표 등 내부 모멘텀을 고려하면 연중 바이오 섹터의 우상향 흐름은 유효하며, 긴 호흡에서는 조정 시 매수 관점이 유지된다"고 덧붙였다.
약가·재무·투자·신용 리스크...구조 리스크 압박 가중
▲사진=한국신용평가
신용평가사들이 바라보는 올해 제약·바이오 산업의 핵심 리스크는 약가 정책과 재무 구조다. 이 두 요소는 동시에 작용하고 있으며, 수익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평가다.
건강보험 재정 악화는 약가 인하 압력을 높이는 요인이다. 신평사들은 약가 인하 정책 강화가 중장기적으로 불가피한 흐름이라고 본다. 특히 올해 7월 시행을 목표로 검토 중인 제네릭 약가 산정률 인하는 산업 구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변수다. 올 하반기부터 제네릭 약가 산정률이 현행 53.55%에서 40%대로 인하될 예정이다. 이는 건강보험 재정 효율화와 신약 개발 유도, 제네릭 난립 방지를 위한 정책 변화로, 기존 등재 약제도 등재 시점과 약가 수준에 따라 순차적으로 조정된다.
이로 인해 제네릭 비중이 높은 중소형 제약사는 동일한 판매량에서도 매출과 이익이 동시에 감소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단기 실적 악화에 그치지 않고, R&D 투자 여력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 수익성 악화 → 투자 위축 → 성장성 저하로 이어지는 구조적 부담인 것이다.
대형 제약사와 위탁개발생산(CDMO) 기업은 상대적으로 다른 위치에 있다. 자체 신약과 수출, 위탁생산 등으로 수익원을 다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들 역시 대규모 투자 부담에서 자유롭지는 않다. 설비 투자와 R&D 비용 확대는 재무 지표에 부담으로 작용한다.
신평사들은 이 지점에서 기업별 영업현금창출력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같은 산업 환경에서도 재무 체력에 따라 신용도 영향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판단이다. 외형 성장만으로는 신용도를 방어하기 어려운 국면이다.
결국 2026년 제약·바이오 산업은 '누가 더 성장하느냐'보다 '누가 버틸 수 있느냐'의 문제가 될 전망이다. 약가 정책과 투자 부담이라는 현실 속에서 재무 구조가 취약한 기업은 더 큰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
김수민 한국신용평가 수석연구원은 “건강보험 재정 악화에 따른 약가 인하 정책 강화로 제약업체의 수익성 확보 여지는 제약될 것"이라며 “특히 제네릭 약가 산정률 인하가 현실화될 경우, 제네릭 위주 중소형 제약사의 영업 실적에 부정적 영향이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김 연구원은 “수출의약품, 개량신약, 바이오시밀러 등 약가 제도 변경에서 제외되는 제품의 포트폴리오 비중이 높은 회사는 수익성 수준을 유지할 수 있을 전망"이라며 “해외 수출과 신약 및 바이오시밀러 개발 등 R&D 성과 발현 여부에 따라 실적 차별화가 심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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