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E칼럼] 깐부에서 꼰대가 되어 버린 에너지 효율화 정책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5.12.01 10:59

허은녕 서울대학교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 전 세계에너지경제학회(IAEE) 부회장


허은녕 서울대학교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위원회 위원

▲허은녕 서울대학교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 전 한국자원경제학회 회장/전 IAEE 부회장

깐부는 친한 친구나 동반자를 뜻하는 은어이다. 깜보, 깐보라고도 불린다. 얼마 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 회장이 젠슨 황 엔비디아 회장과 치맥을 함께 한 장소도 이 이름이며, '깜보'라는 영화가 2차 석유 위기가 끝나가던 1986년에 개봉하기도 하였다. 1986년의 국제 원유 가격은 OPEC의 감산과 이란-이라크 전쟁의 여파로 1979년 대비 10배나 넘게 상승해 있었다. 전 세계가 석유 위기에 대응하고자 다양한 에너지 절약 정책을 추진하였으며 일본의 혼다, 토요타 등 연비가 좋은 자동차가 엄청나게 잘 팔리게 되었다.


우리나라는 국내 유일 부존 에너지원인 석탄(연탄)의 증산에 나섰으며, 한 등 끄기는 물론 학교의 겨울방학 연장, 공장 자율 운영 등 고강도의 에너지 절약 정책을 내어놓았다. 또한 에너지관리공단이라는 공기관을 출범시켜 에너지 효율화 시책을 담당하게 하였다. 그 덕분에 우리나라 국민 모두 에너지 절약이 생활에 스며들어 일종의 깐부가 되었다. 그리고 한동안 에너지정책 1번은 언제나 효율화였다.




그러나 지난 21세기 25년간 에너지 자급, 해외자원개발, 에너지전환 등 공급 부문의 정책은 꾸준히 발표되었지만 에너지 절약이나 효율화 정책은 점점 뒤로 밀려 이제는 논의의 주제가 되지 못하고 있다. 특히 5년 전 에너지기본계획이 더 이상 법적 정부 계획이 아니게 되면서 에너지 효율화를 제대로 다룰 공간과 제도가 줄어들고 말았다. 여전히 에너지의 95%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지만 국내 정책에서 에너지 효율화나 이용 합리화 정책은 진부한 옛날 주제로 여겨지고 있지만 정책에 담기는 해야 하는 하나의 요식행위가 되었다. 에너지 효율화 정책이 깐부에서 꼰대로 변한 것이다.


우리나라가 경제정책 및 산업정책의 수립 과정에서 본받고 따라온 제조업 강국으로 독일과 일본을 들 수 있다. 그런데 이 두 나라는 모두 에너지 절약에 진심이다. 독일은 대표적인 산업 부문 에너지 절약 정책인 LEEN (learning energy efficiency network)를 21세기 들어서 적극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독일은 이미 2천여 개의 중견, 중소기업이 해당 정책의 혜택을 받고 에너지를 절감하고 있다. 일본은 어떤가.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에너지 효율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지표인 에너지집약도(사용량/GDP)에서 우리나라는 일본과 에너지 효율에서 크게 뒤처져 있다.


한국은 에너지집약도가 1980년 0.27, 2023년 0.16으로 크게 좋아졌으나 일본은 1980년 0.15, 2023년 0.08로 더 좋아졌다. 한국의 경제가 크게 발전하여 1인당 국민소득 수준은 일본과 어깨를 겨루게 되었으나 에너지 효율은 지난 40년간 일본의 절반 수준에서 전혀 간격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일본의 대표적인 에너지 효율 정책으로 선샤인(sunshine) 정책을 들 수 있다. 정부가 매년 다양한 가전제품의 에너지 효율을 조사하여 순위를 발표하는 단순한 정책이다. 그런데 일본 국민은 이를 적극 참조하여 최고 효율을 가진 제품을 구매하여 사용한다. 그 구매 정도가 매우 높아 일본 기업들은 최고의 에너지 효율 제품을 생산하기 위하여 치열하게 경쟁하게 되고 말이다. 모두 에너지 효율화에 진심이다.


우리에게 이들 두 나라는 에너지 절약 정책에서는 넘사벽이 되어 버렸다. 가전제품이나 자동차 구매 시 색상이나 크기에 더 고심한다. 건물 역시 에너지 효율이 매우 낮다. 최근에도 우리나라 건물의 면적당 에너지사용량은 매년 증가 중이다. 지난 20여 년 동안 정부의 건물 정책이 에너지 효율화보다는 스마트시티, 혁신도시 등 첨단 ICT 기술을 접목한 도시 개발에 중점을 두어왔기 때문이다. 건물 부문의 에너지 효율 이슈는 온실가스 감축목표 달성에도 구조적인 문제를 초래한다. 지금 짓는 건물은 2050년 탄소중립 달성 시점까지 계속 존재할 것이기에 잘못하면 수명이 되기도 전에 부수고 다시 지어야 하는 좌초자산(stranded asset)이 되고 만다.


다행히 이번 새 정부에서는 에너지 효율화 분야에 관심이 높은 것 같다. 히트펌프를 크게 육성하고자 한다거나 건물의 에너지 효율화에 대한 논의가 높아진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현장의 에너지 효율 기술혁신, 그리고 자발적 참여를 통한 가정과 건물 에너지 효율 개선이 이루어진다면 에너지 효율화를 다시 살리기 위한 첫발을 잘 디딘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만 다음은 국민과 기업이 실제로 절약과 효율화에 나서게 하는 인센티브를 강화할 차례이다. 정부는 민간단체와 함께 효율화 홍보활동을 활발히 시행하여 국민의 동참을 호소하고 인센티브 강화로 변화를 유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분명한 것은 국민과 함께 할 수 있는 에너지 효율화 정책을 통하여 그 혜택이 온전히 국민의 몫이 되도록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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