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아파트 현장. 사진=연합뉴스
내집 마련을 원하는 조합원들을 졸지에 '사기 피해자'로 만들고 있는 지역주택조합 제도가 45년 만에 개편될 전망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6월 실태조사와 개선 대책 마련을 지시한 데 따른 것으로, 국토교통부는 특별 점검 실태조사에 착수하고 문제 사례 중재를 병행하고 있다. 다만 토지 분쟁의 경우 국가가 직접 개입해 중재하기 어려워 향후 제도 개정 시 사업 시작 전 토지를 일정 수준 이상 확보하도록 의무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10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전국 지역주택조합원 수는 약 26만명으로 이중 상당수가 사업 표류로 인한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지역주택조합 사업은 토지를 확보한 후 주택을 건설해 조합원에게 공급하는 방식으로, 일반 아파트보다 10~30% 저렴한 게 장점이다. 문제는 토지 매입 실패, 추가 분담금 요구, 시공사 계약 조건 변경 등 각종 리스크로 인해 성공률이 20% 미만으로 극히 낮다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국토부 조사에 따르면, 전국 618개 조합 중 187개 조합(30.2%)에서 총 293건의 민원과 분쟁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토부 관계자는 “지역주택조합 제도 자체에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는 문제의식은 이미 공유된 상태"라며 “아직 구체적인 개선 방안은 나오지 않았지만, 실태조사를 통해 사업장별로 현황을 점검하고 대책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어 “현재는 지자체와 함께 조합과 시공사 등의 분쟁 원인을 파악하고 중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실태조사 및 특별합동점검은 이달 말까지 진행될 예정으로, 업계는 이르면 9월에서 10월경 대책이 나올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지역주택조합 사업의 문제는 조합 설립 자체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조합원을 모집해 조합비를 먼저 걷는 방식이라는 점이다. 또, '조합'이라는 명칭과 달리, 실제로는 개발업자·건설사·업무대행사 등이 사업을 주도해 조합원은 사업 구조나 위험 요소에 대한 정보를 제대로 전달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시공사와는 구두 계약이나 양해각서 수준의 협약만 맺고, 건축계획 역시 허가권자와 협의되지 않은 채 진행되는 사례도 빈번하다.
아울러 시공사가 공사비 증액을 요구하거나 도산해 새로운 시공사를 찾는 경우, 다시 증액 요구가 이어지는 등 사업이 계속 꼬이는 사례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로 인해 사업이 지연되고 분담금은 늘어나 각종 분쟁 및 법적 문제가 발생하거나, 무산되는 경우도 잦다고 업계는 호소한다. 실제로 2017년 법 개정 이후 지역주택조합에 가입한 일부 조합원은 올해 실시계획이 취소될 예정이라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더 큰 문제는 현행법상 지주택 조합 설립 요건 중 하나가 대지 80% 이상의 '사용권'만 확보하면 된다는 점이다. 이는 법적으로 사업 추진이 가능한 최소한의 요건을 갖췄다는 의미일 뿐, 토지를 실제로 매입했다는 뜻은 아니다. 토지 소유자가 보상금에 반발하거나 매도를 거부할 경우, 사업 전체가 좌초될 수 있다. 정부도 개별 토지 매매에는 개입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어, 일정 비율 이상의 토지를 실제로 매입한 이후에 조합원을 모집하도록 법 개정을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아울러 시공사나 업무대행사의 횡포를 막기 위해, 업무대행자 등록제 도입과 자격 요건 강화는 물론, 용역업체 및 시공사 선정의 투명성 확보도 시급하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얘기다. 허위·과장 광고에 속아 조합에 가입하는 것을 막기 위한 규제도 필요하다. 추진위원회의 법제화와 권한 제한과 더불어 사업 초기 단계부터 지방자치단체가 일정 부분 개입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다.
국토연구원도 최근 지역주택조합 분쟁 해결 방안으로 △분쟁조정위원회 도입 △공공택지 입찰 시 우대 기준 마련 △공사비 증액 적정성 기준 도입 △패널티 부과를 통한 갈등 조정 및 재발 방지 체계 마련 등을 제안한 바 있다.
임재만 세종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지역주택조합 방식은 구조적으로 매우 위험하며 조합원 돈을 떼먹는 악의적 사업자가 진입하지 못하도록 정부가 나서 최소한의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면서도 “현재로선 시세 차익을 획득하려는 개인 투자 성격이 강해 구조적 문제를 감안했을 때 사업 확대를 장려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