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철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학부 교수/한국태국학회장

▲김봉철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한국태국학회장
최근 글로벌 문화콘텐츠 시장이 급속히 성장하면서, 각국은 콘텐츠 산업을 전략 산업으로 육성하며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태국을 비롯한 동남아시아 국가들도 자국 콘텐츠 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다양한 전략을 모색 중이며, 이 과정에서 한국의 성공 모델을 참고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한국 콘텐츠 산업의 성장은 한국콘텐츠진흥원(KOCCA)을 중심으로 체계적인 거버넌스와 법제도, 민관 협력 기반의 정책 구조 덕분이다. 콘텐츠 산업이 단일 장르가 아닌 융합적 생태계로 구성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러한 통합적이면서도 유연한 정책 설계는 태국을 비롯한 동남아 국가들에게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태국은 2024년 3월, 문화 및 창의 산업 전반을 총괄하는 최초의 단일 기관으로 '태국창조문화진흥원(THACCA)' 설립 계획을 공식 발표하며, 콘텐츠 산업 육성을 위한 국가 차원의 정책 체계를 강화하려 하고 있다. THACCA는 한국의 KOCCA와 마찬가지로 태국의 소프트파워를 강화하고 글로벌 콘텐츠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적 기구다. 향후 THACCA의 설계와 운영에서 한국의 정책적 경험은 실질적인 참고자료가 될 수 있다.
한국은 인재 양성과 창의력 개발에 지속적으로 투자하며, 이를 콘텐츠 산업 진흥의 핵심 축으로 삼고 있다. KOCCA는 국내외 창작 인재를 대상으로 교육, 멘토링, 취업 연계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며 산업 생태계 전반의 역량 강화를 도모한다. 이는 단순한 인력 양성을 넘어, 콘텐츠 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구조로 기능하고 있다. 태국 또한 자국의 문화자산과 창의적 인적 자원을 체계적으로 육성하기 위해 이와 유사한 중장기 전략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또한 한국은 디지털 전환과 신기술 수용을 정책 중심에 두고 있다. 인공지능, 메타버스, 확장현실(XR) 등 신기술을 콘텐츠 산업 전반에 접목하고,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함께 마련해왔다. 이러한 기술융합 정책은 현재 디지털 생태계 전환기를 맞이한 태국에게 전략적으로 유용한 벤치마킹 모델이 될 수 있다.
정책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KOCCA는 중앙정부뿐 아니라 지방정부, 산업계, 학계, 국제기구 등과의 유기적인 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해 정책 집행력을 높여왔다. 태국도 콘텐츠 산업 정책의 효과적인 추진을 위해 근거법 정비, 거버넌스 체계 구축과 같은 구조적 기반 마련이 시급하며, 이는 단순한 조직 설립을 넘어 유연하고 통합적인 정책 운용 능력을 요구한다. 정책 설계 및 집행 단계에서 민간 전문가, 창작자, 스타트업 등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행정의 투명성과 효율성을 강화하는 시스템도 구축되어야 한다. 아울러 정책의 집행과 성과 평가를 명확히 구분하여 국민과의 신뢰를 제고하고, 정책 결과를 공유함으로써 지속적인 개선이 가능한 체계 또한 필요하다.
한국과 태국의 콘텐츠 산업 협력은 정책적 교류를 넘어 실질적인 산업 파트너십으로 확장될 수 있다. 공동제작, 현지화 전략, 인재양성, 창업 생태계 조성 등 다양한 분야에서 양국은 상호 이익을 도모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콘텐츠 소비 확대를 넘어 양국의 창작 생태계에 활력을 불어넣고, 문화 다양성과 포용성을 증진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태국과 같은 동남아 국가들은 한국의 KOCCA 모델을 참고하되, 자국의 문화적 특성과 제도적 현실을 반영한 독자적인 정책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 법제도 정비, 이해관계자 협력, 지역 기반 정책 설계, 국제 공동사업 확대 등은 한국과 태국 모두가 공통으로 직면한 과제이다. 이러한 과제를 해결하면서 양국 간 협력을 강화해 나간다면,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아시아 문화산업의 지속가능성과 글로벌 경쟁력이 한층 높아질 것이다. 전략적 파트너십은 아시아 콘텐츠 생태계의 미래를 견인할 핵심 기반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