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대 국회 망(네트워크) 사용 관련 법안 발의 현황
인공지능(AI) 수요 증가로 데이터 사용량(트래픽)이 상승하고 있지만 글로벌 빅테크 대상 '망(네트워크) 사용료' 논의는 좀처럼 속도가 나지 않고 있다. 다음달 1일로 예고된 미국의 상호관세 부과 시점을 앞두고 망 사용료 납부 논의가 재점화하는 가운데 양국의 협상 과정에서 뇌관으로 작용할지 관심이 쏠린다.
28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구글·넷플릭스 등 글로벌 빅테크의 망(네트워크) 사용료 납부를 의무화하기 위해 발의된 망 무임승차 방지 관련 법안 3건이 계류 중이다. 이들 법안은 구글·넷플릭스 등 글로벌 빅테크와 국내 통신사 간 불공정 계약을 체결하지 못하도록 하는 게 골자다.
망 사용료는 콘텐츠 사업자(CP)가 국내 인터넷망을 이용한 대가로 인터넷 서비스 사업자(ISP)에 지불하는 비용이다. 글로벌 빅테크의 경우, 네이버 등 국내 CP와 달리 분담 의무를 거부해 왔다. 망 중립성 원칙을 근거로 들어 망 이용에 대한 무상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와 관련 통신업계에선 그동안 CP와 ISP 간 협상력 차이에 의해 역차별 구조가 형성됐다고 지적해 왔다. 글로벌 CP가 국내에서 압도적인 점유율을 차지하며 트래픽 급증을 부추기고 있지만 인프라 구축 비용은 국내 ISP가 부담한다는 점에서다.
실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2023년 주요사업자 일평균 국내 트래픽 비중에 따르면 구글·넷플릭스·메타 등 빅테크 3사의 국내 트래픽 비중은 42.6%를 차지했다. 구글 30.6%, 넷플릭스 6.9%, 메타 5.1% 순이다. 국내 CP인 네이버와 카카오의 국내 트래픽 비중은 2.9%, 1.1%에 불과했다.
이재명 대통령 또한 이 점을 주목해 '망 이용계약 제도화'를 공약으로 제시했고, 현재 국정기획위원회가 관련 법안을 구체화하고 있다. 배경훈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도 최근 인사청문회에서 “망 사용료는 한미 통상협상 과정에서 논의해야 할 부분"이라며 “한국 입장에서는 받아야 한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올해 초부터 미국의 통상 압박이 거세지며 논의가 지지부진한 상태다. 미국 행정부는 법안 제정 움직임을 '디지털 무역 장벽'으로 규정, “자국 기업을 겨냥한 차별적 규제"라며 반발하고 있다.

▲2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공정한 망 이용 생태계 조성을 위한 정책 토론회'가 열린 가운데 참석자들이 기념촬영하고 있다. 사진=이태민 기자
이런 상황에서 오는 31일 한미 통상협상 테이블에 망 사용료 납부 이슈가 오를지 업계 관심이 쏠린다. 이번 협상은 미국의 관세 부과 유예 시한 하루 전에 진행돼 사실상 최종 담판이 될 가능성이 높아서다.
업계 안팎에선 망 무임승차 현상이 해결되지 않을 경우, 국내 ISP의 비용 부담이 커짐과 동시에 네트워크 품질이 저하될 수 있다는 우려가 높다. ISP가 회수할 수 있는 네트워크 투자 비용이 제한적이어서, 서비스 품질 유지 및 용량 개선 등에 장애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신민수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2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공정한 망 이용 생태계 조성을 위한 정책토론회'에서 “망 중립성은 트래픽 내용·유형에 관계 없이 속도 등을 차별하지 않는 개념으로, 망 사용료 지불과는 별개의 사안"이라며 “FTA에서 규정하는 망 유상성은 국내외 사업자에 차별 적용되지 않으며, 네트워크를 쓰는 만큼 똑같이 대가를 내라는 의미"라고 짚었다.
이날 신 교수는 유럽연합(EU)의 개인정보보호법(GDPR) 도입 사례를 제시하며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일반 원칙과 도덕적 정당성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망 무임승차 방지법은 자국 디지털 시장 상황과 요구에 맞춰 독자적 규제 체계를 형성하는 과정이라는 취지다. 이에 따라 다른 국가의 압력에 의해 영향을 받거나, 협상 카드로 사용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신 교수는 “일부 CP들이 네트워크를 마치 공유지처럼 보고 있지만, 소비자와 다른 기업들이 돈을 내고 유지하는 네트워크는 공유지가 아니다"라며 “현재 계류된 법안들이 통과되면 트래픽 유발 주체 간 협상력 비대칭이 조정되고, ISP의 망 품질과 5·6세대 이동통신(5G·6G) 고도화, AI 인프라 투자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종명 성균관대 교수 또한 “망 사용료는 실제 트래픽을 이용한 만큼 대가를 지불한다는 사업자 간 계약상의 문제"라며 “글로벌 CP는 국내 ISP가 이용자 권익을 침해한다는 프레임을 형성하면서 대가 지불의 정당성 논의를 희석시켰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정부는 글로벌 논의 동향을 살펴보며 법적 실효성을 확보하겠다는 입장이다. 전혜선 방통위 이용자정책총괄과장은 “지난 2019년 망 이용대가 가이드라인을 제정했지만, 법적 강제성이 없어 실태점검 과정에서 구체적인 내용을 확인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며 “실효성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춰 관련 부처와 협력해 대처방안을 논의할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