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주 칼럼] 중국 제조 2025의 교훈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5.07.20 10:28

박원주 전 청와대 경제수석

박원주

▲박원주 전 청와대 경제수석

2015년 5월, 중국 국무원은 '중국 제조 2025(Made in China 2025)'라는 산업발전 전략을 발표했다. 리커창 총리가 주도했던 이 정책은 성장 정체와 중등국 함정에 대한 경계심 속에서 출발했으며, 2025년까지 자국 제조업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했다. 반도체, 인공지능, 로봇, 신에너지차, 항공우주, 해양공학, 전력장비, 고급철강, 신소재, 바이오의료 등 10대 핵심 전략 산업의 자급률을 70% 이상으로 높이겠다는 구체적 계획이 제시됐다.


중앙정부는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해 200억 달러 규모의 '빅펀드'를 조성했고, 지방정부들도 자체 산업클러스터를 구성해 기업 유치와 R&D 투자를 경쟁적으로 추진했다. 외국 기업에는 기술이전 압력을 가했고, 국내 기업들엔 글로벌 M&A를 독려해 선진 기술을 단기간에 확보하려는 초공격적 전략이 전개됐다. 당시 한국 정부에 중국의 제조 2025는 매우 심각한 위협으로 인식됐다. 이미 조선과 석유화학 등 일부 주력 산업이 중국발 저가 공세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반도체, 디스플레이, 2차전지 등 첨단 산업 분야마저 추격당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정부와 산업계는 중국과의 기술 격차를 면밀히 점검하기 시작했다.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2016년 7월 사드(THAAD) 배치 발표 이후 중국의 한한령 보복이 이어졌고, 이는 단순한 한류 콘텐츠 차단에 그치지 않고 산업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 특히 중국 전기차에 지급되는 보조금 대상에서 한국산 배터리가 배제되며, 국내 2차전지 기업들은 중국 시장에서의 입지를 잃었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전기차, 배터리, 로봇 등 전략 산업의 글로벌 판도는 급격히 변화하기 시작했다.


이제 중국이 공언했던 '세계적 수준'의 제조업 달성 시한이 다가오고 있다. 냉정한 분석이 필요한 시점이다. 중국은 2차전지, 전기차, 산업용 로봇, 스마트폰 등 일부 분야에서 목표에 근접하거나 초과 달성했지만, 핵심 기술 확보에는 여전히 한계가 명확하다. 전기차의 경우 BYD와 NIO 등의 수출 확대로 2015년 1% 미만이던 글로벌 점유율은 2024년 30%를 넘어섰고, 휴대폰 분야에서도 화웨이, 오포, 비보 등이 전 세계 시장의 2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산업용 로봇은 세계 시장 점유율 50% 이상을 차지하며 일본과 독일을 추월하는 수준까지 도달했다.


그러나 그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반도체 분야에서는 200억 위안 규모의 우한훙신(HSMC) 프로젝트가 부실과 비리로 좌초되었고, 핵심 경영진은 기술 확보 없이 공장만 짓고 자금을 횡령한 혐의로 기소되었다. 이외에도 지방정부가 주도한 반도체 프로젝트 수십 건이 실패하거나 중단되며 '좀비 팹(zombie fabs)'이란 말도 생겼다. 철강, 타이어, 로봇 등에서도 과잉 설비와 저가 투매로 재무구조가 악화되고, 전기차는 밀어내기식 수출로 시장 점유율은 확보했지만 기업들의 수익성은 오히려 악화되고 있다.




특히 반도체 분야는 국가적 역량을 집중했음에도 성과가 저조하다. 중국은 외국 기술인력을 유치하고, 해외 기업의 기술공여를 압박하는 등의 방법을 동원했지만, 극자외선(EUV) 장비나 고급 설계 기술 등 핵심 분야에선 여전히 미국, 일본, 네덜란드에 크게 뒤쳐져 있다. 반도체 산업의 자립 시도는 오히려 미국의 경계심을 자극했고, 미중 기술패권 경쟁을 촉발했다. 미국은 반도체법을 제정하고 IPEF 추진, 첨단장비 수출 통제, M&A 차단 등 다양한 수단을 동원해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견제해 왔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한 현재는 기술·무역의 전 영역에 걸쳐 규제와 압박이 더욱 노골화되고 있다.


결국 제조2025는 기술 자립과 일부 산업의 경쟁력 강화에는 성과를 거두었지만, 고비용 저효율 구조와 국제 갈등을 피하지 못했다. 동시에 이 정책은 한국에도 예기치 못한 큰 영향을 미쳤다. 당시 우리는 중국이 우리 기술을 얼마나 빨리 따라잡을지에만 집중했지만, 정작 더 큰 충격은 미국의 반격이었다.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는 과정에서 핵심 기술과 공급망을 아예 자국으로 이전하려 하고 있고, 그 과정에서 한국 기업들도 미국 내 생산 확대를 요구받고 있다. 반도체, 2차전지, 전기차 등 한국의 주력 산업이 미국 중심 체제로 재편되는 가운데, 중국 시장에서의 입지는 약화되고 있다. 10년 전 중국의 산업 전략은 지금의 글로벌 공급망과 지정학 질서를 완전히 재편해 놓았고, 그 여파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중국 제조2025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또 하나의 포인트는 중국식 경쟁 모델이다. 중앙정부가 큰 방향을 제시하되, 실제 산업 선정과 기업 육성은 지방정부가 주도하며 지역 간 치열한 경쟁을 통해 승자만 살아남는 구조였다. DJI, BYD, 화웨이 등은 바로 그런 환경에서 성장했다. 기업 보호와 대마불사의 프레임에 갖혀 있던 우리 정책이 혁신 스타트업들의 건강한 성장을 발목 잡아 온 것은 아닌지 반성할 부분도 있어 보인다. 이에 더해, 실패한 분야도 결코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한국의 중형 컴퓨터 사업이 실패했지만 그 경험과 인재들이 훗날 IT 강국의 토대를 마련했듯, 중국의 실패 역시 향후 산업 지형 변화에 따라 또 다른 기회를 만들어낼 수 있다. 우리가 중국의 산업정책 동향을 앞으로도 두눈 똑바로 뜨고 주시해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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