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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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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눈엣가시 될라…‘기후변화 대응’에 침묵하는 美 기업들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5.06.10 13:38
USA-TRUMP/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사진=로이터/연합)

올여름 역대급 폭염과 폭우가 예고되면서 기후위기에 대한 경각심이 계속 커지는 가운데 기후변화 대응에 있어서 침묵을 택한 미국 기업들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반(反)기후 정책을 추진하는 트럼프 행정부의 새로운 공격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우려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10일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다우존스의 팩티바(Factiva)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올해 첫 5개월까지 미국 기업들이 공시한 주주총회 안건 보고서에서 '넷제로' 용어가 포함된 횟수가 지난해 같은 기간 등록된 보고서에 비해 32%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넷제로' 외에도 '탄소중립'이 언급된 횟수 또한 올해 30% 감소했고 온실가스 배출 범위를 구분하는 스코프1, 2, 3 등의 용어가 포함된 보고서도 작년에 비해 24% 줄었다.


일례로 미국 대형 유통사 크로거의 경우 지난해 보고서에서 “우리 사업이 기후에 미치는 영향을 줄이고 기후변화가 사업에 미칠 잠재적인 리스크를 평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주주총회를 온라인으로 개최할 경우 우리의 비용과 탄소발자국을 줄일 수 있다"고 언급했는데 올해는 모두 빠졌다.


미국 항공사 아메리칸 에어라인은 작년 보고서에서 “야심찬 기후 목표"에 중점을 두었다고 강조했는데 올해는 해당 문구가 사라졌다.


미국 의류 브랜드 아메리칸 이글 아웃피터스도 지난해 발표한 주총 보고서에서 “스코프 1, 2, 3 범위에 속하는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는데 올해는 탄소배출과 관련된 내용이 언급되지 않았다.




아울러 미국 화장품 업체 '엘프 뷰티'가 지난달 공시한 연례 사업보고서에서 자사 사업이 지구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다루는 내용이 작년에 비해 절반 가량 축소된 것으로 나타났다고 WSJ는 지적했다.


이처럼 기업들이 기후변화 대응에 소극적으로 변한 배경엔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한 것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 경제조사기관 컨퍼런스 보드가 기업들의 지속가능성 분야 경영진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80% 가량은 기업들이 환경(E), 사회(S), 지배구조(G) 등의 용어 사용을 자제하는 등 기후에 대해 언급하는 방식을 조정했다고 밝혔고 50%는 넷제로, 기후 목표 등의 언급에 따른 반발을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친화석연료 정책을 펼치는 동시에 인플레이션감축법(IRA) 폐지 또는 축소를 추진하고 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기후 공시 의무화에 대한 법적 방어를 중단하기로 지난 3월 결정했다. 미 에너지부는 청정에너지 및 기후 관련 프로젝트를 위한 37억달러 상당의 보조금 삭감을 지난달 30일 발표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기업들이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움직임을 펼칠 경우 수익성마저 악화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석유전문매체 오일프라이스닷컴은 “스코프 3 배출을 추적하고 보고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자원과 비용이 요구된다"며 “미 정부가 에너지 전환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와중에 기업들이 이러한 노력에 돈과 시간을 들여 노력하는 것이 가치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고 짚었다.


일각에선 기업들이 지나치게 장밋빛 기후목표를 공시할 경우 소송에 휘말리거나 이미지가 훼손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스탠퍼드대학의 데이비드 라커 경영학 교수는 “기업들이 발간하는 주총 안건 보고서 등은 이사회가 서명해 SEC에 공시된 문서라는 것을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내용과 다를 경우 공시 위반"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새로운 정치 지형으로 기후에 대한 기업들의 목소리가 작아진 것은 틀림없지만 기관투자자들과 애널리스트들이 기업들에게 기후 목표에 대한 압박을 줄였을 가능성도 있다"며 “이런 현상이 일종의 시대적 징후"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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