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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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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초등 수영교육, 학교도 아이도 준비되지 않았다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5.05.30 14:22

안동=에너지경제신문 정재우 기자 “수영장 가는 날만 되면 애들보다 제가 더 긴장돼요." 경북의 한 초등학교 교사 이 모 씨는 수영 실기교육을 앞두고 매번 숨이 가빠진다고 털어놓는다. '생존 수영'을 내세운 교육 당국의 의욕과 달리, 현장 교사들과 학생들은 매년 '생존'이라는 단어를 전혀 다른 의미로 경험하고 있다.


실기교육 불참 비율 및 그 이유

▲실기교육 불참 비율 및 그 이유. 제공-경북교사노동조합

교육부는 '생존 수영'을 전면 도입하며 초등학생들이 물에 대한 공포 없이 위기 상황에 대처할 수 있도록 한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하지만 실제 경북의 학교 현장은, 제도라는 배를 띄우기도 전에 물에 빠진 형국이다.


경북교사노동조합이 도내 초등학교 교사 235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9.8%가 “수영 실기교육이 교육 목표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교육의 이상은 높지만, 운영은 형식적이고 실속은 없다는 목소리가 높다.


수영실기교육 운영 시 겪는 어려움

▲수영실기교육 운영 시 겪는 어려움. 제공-경북교사노동조합

수영교육의 가장 큰 걸림돌은 '안전'이다. 응답자의 85%는 수십 명의 학생을 단일 수영장에서 관리해야 하는 '과도한 부담'이 현실적인 가장 큰 문제라고 답했다.




전문 강사도, 안전 요원도 충분치 않은 상황에서 담임 교사가 물속 아이들까지 책임지는 구조는 “무모한 실험"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수영장 접근성도 낮다. 지역마다 공공수영장 보급 수준이 달라 이동 거리만 수십 분에 이르며, 그 과정에서도 안전사고 우려는 커진다.


보조 인력 부족(60%), 수영장 확보 곤란(54%) 등의 문제도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학생들의 불참 비율도 만만치 않다. 한 학급에서 13명이 수업을 빠지는 경우가 53%, 46명이 빠지는 경우도 26%에 달한다.


불참 사유는 △수영복 착용의 부끄러움과 불편(82%) △물 공포(60%) △피부 및 호흡기 질환(58%) 등이었다.


하지만 이 아이들을 위한 대체 수업이나 별도 인력이 사실상 준비돼 있지 않다. 대부분 수영장 한편에서 '참관'하거나, 교사와 간단한 이론 수업을 진행하는 정도에 그친다.


경북교육청은 “참관 수업은 지양하라"는 지침만을 내놨을 뿐, 현장 교사들을 위한 실질적인 대책은 미비한 상황이다.


현장 교사들은 수영교육의 필요성 자체는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대로는 안 된다"는 공감대는 더 크다. 경북교사노동조합은 다음과 같은 실질적 해법을 제안했다.


교사들은 △공공 수영장 인프라 확대 △전문 강사 및 안전 요원 의무 배치 △학생 맞춤형 수영 바우처 제도 도입 △학교별 유연한 운영 매뉴얼 수립 등을 제시했다


이미희 경북교사노동조합 위원장은 “지금의 수영실기교육은 아이들에게 생존을 가르친다는 명분 아래, 정작 교사들에게 생존을 요구하는 형국"이라며 “교육부와 교육청은 실효성 있는 예산과 인력 배치를 담은 로드맵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지금의 초등 수영교육은 그 고귀한 목표를 잊은 채, 형식만 남은 '부담의 제도'로 전락하고 있다.


아이들이 부끄러움이나 두려움 없이 물속에 들어서고, 교사들이 안전하게 가르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질 때, 그때가 바로 진정한 의미의 '생존 수영'이 될 것이라는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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