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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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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분석] 에너지업계가 위험하다…커지는 ‘전기본 불신·무용론’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4.03.31 12:05

11차 전기본 실무안, 결국 3월 넘겨 총선 이후 발표 유력

업계 “공개시점 의미 없어, 발전설비 계획 포함여부, 인허가 모두 산업부 마음대로”

“열병합 전기본에 포함 갑자기 통보,사업자 의견수렴 없어…이의 제기나 반발하면 배제”

기존 전기본에 포함돼 건설된 동해안 석탄발전소들은 송전망 지연으로 고사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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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하 전기본) 실무안(초안) 발표가 결국 3월도 넘겼다. 관가와 업계에서는 4월 10일 22대 국회의원 선거 이후 발표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당초 지난해 말 발표에서 계속해서 미뤄지는 배경으로 전기본 수립 실무 위원들이 수요전망 작업이나 무탄소 전원 비중, 에너지믹스 구성에 막판까지 어려움을 겪고 있다거나 총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 등이 제기돼 왔다.


다만 업계에서는 발표 시점이 문제가 아니라 정부주도의 일방적 계획 수립으로 에너지업계의 사업준비와 운영 측면의 현실적 여건이 고려되지 않는 구조가 문제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최근 산업통상자원부는 당초 전기본에 포함되지 않았던 액화천연가스(LNG)를 사용하는 집단에너지 설비를 11차 전기본에 포함시킬 방침이라고 밝혀 논란이 일었다.


산업부 측은 “집단에너지는 허가 시 발전사업 허가도 함께 받고 있으며, 이에 따라 국가 전체 전력수급의 안정적 유지를 위해 집단에너지도 발전 부문에 있어서는 전기본에 부합한다"며 “현재 집단에너지 사업자의 LNG 발전기 신‧증설 신청용량이 전기본 상 필요한 공급용량을 초과하는 상태로, 안정적인 전력수급 유지를 위해 열수요 대비 발전용량의 적정성 등을 신중히 고려해 용량 관리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11차 전기본 수립과 연계해 집단에너지 허가방안을 검토하고, 사업자들과 긴밀히 협의해나갈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산업부는 현재 LNG 발전설비 용량이 포화한 상황에서 신규 수요를 모두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현재 20%가 넘는 LNG발전량 비중은 10차 전기본에서는 2036년 9%로 급감할 것으로 전망됐다.


다만 급격한 LNG 발전비중 축소로 가스공사의 장기 LNG 수급계약에 악영향을 초래해 전력도매가격(SMP) 폭등 현상이 재차 반복될 것이란 우려가 여러 차례 제기된 바 있다. LNG발전 축소를 감안해 열병합발전 등 신규 사업을 준비하고 있던 민간 에너지업계에서도 받아들이기 어려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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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상 전원별 발전량 비중 전망.

한 업계 관계자는 “기존엔 전기본과 무관하게 집단에너지사업법만 통과하면 발전사업허가를 받을 수 있었다. 정부가 이같은 계획이 있었다면 진작 업계에 전달하고 대응 방안을 마련할 수 있게 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라며 “사업자 입장에선 수년간 부지개발과 투자 등을 계획하고 있다가 매번 통보식으로 날벼락을 맞는 일이 빈번하다"고 말했다.


이어 “산단 열병합업계의 설비 증설계획은 1GW(기가와트) 수준으로 원전 1기 수준이다. 원전과 재생에너지 등 타 발전원의 용량이 늘어나는 것은 기정사실인데 이럴 경우 집단에너지 사업자들이 허가를 못 받을 것 아닌가"라며 “그렇다고 정부에 반발하면 사업에서 배제하는 강압적 방식이 여전하다"고 비판했다.


이 관계자는 “정부의 역할은 수요전망(Outlook) 등 제시, 시장 및 제도 개혁, 송전망 확장 등 공적인 영역에 제한돼야 한다"며 “발전사업은 정부의 전망에 따라 사업자들이 알아서 설비를 건설하고 입찰 시장에 참여하는 방향으로 가야한다. 발전사업 허가도 정부가 아닌 독립적 전기위원회에 맡겨야 한다"고 말했다.


LNG발전과 집단에너지 뿐만이 아니다. 민간과 공기업이 함께 설립해 운영하고 있는 동해안 지역 석탄화력발전사들은 정부의 계획을 믿고 사업을 추진했지만 현재 송전망 확충 지연과 투자비, 정산 축소 등으로 고사위기에 처했다.


한 발전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2026년까지 이 구간 송전망을 확충하겠다고 하지만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발전사업자들의 손실은 계속 커지고 있다"며 “올해는 7월까지 발전소를 최대 30%까지만 가동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이래서는 건설 등 투자비 프로젝트파이낸싱(PF) 원리금 상환, 고정비 회수 차질은 물론이고 인건비 지급 등 운영자체가 불가능해질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이들 석탄발전소들은 어려운 입지를 찾아내 주민들을 설득, 간신히 부지를 찾아내어 건설했다. 건설비를 추가로 들여 간신히 착공을 하게 된 만큼 발전소 건설비가 과거 공기업들의 표준건설비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커지게 됐다고 업계는 하소연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산업부는 약속한 적이 없다고 하지만, 통상적으로 발전소를 건설하고 운영하는데 들어가는 총괄원가에 기반한 적정 투자보수를 보장해줬다"며 “그런데 상황이 급변하니 정부는 언제 다 보장해준다고 했냐는 식이다. 여름과 겨울철 전력수요가 급증할 때는 석탄발전을 풀가동하다가 봄철이 되면 상한제약을 건다. 그런데다 송전망 부족에 신규 원전 진입으로 가동까지 제대로 못하게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과거 전기본 수립에 참여했던 에너지업계 전문가는 “현재 수립 중인 11차 전기본도 송전망 부족, 낮은 전기요금, 발전 총괄원가 보상 등 현실적인 여건을 반영하지 않고 원전과 재생에너지를 확대하는 방향으로만 검토되고 있다"며 “특히 급격한 전력수요 변동에 대응하기 어려운 원전과 재생에너지 비중을 크게 늘리고 있어 그동안 전기본의 오류가 반복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창의융합대학 학장은 “정부가 대규모 발전사업 계획 수립·인허가 권한을 민간에 내어줄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며 “정치권과 대통령실도 국정과제로 시장원리가 작동하는 전력시장을 조성하겠다고 했지만 현재 상황으로 보면 무관심해 보인다. 결국 업계가 직접 국회에 입성해 정치권을 설득하고 법안을 개정해야 하는데 이 또한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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