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공사의 적자 심화로 인해 전기요금 현실화에 대한 요구가 증대되면서 현 전기요금 결정방식의 변화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 윤석열 정부도 국정과제로 ‘에너지시장·요금 및 규제 거버넌스의 독립성·전문성 강화’, ‘경쟁과 시장원칙에 기반한 전력시장 구축’을 내세웠다.
현재 전기위원회 중심의 전력산업 규제체계는 독립적인 의사결정에 한계를 보이고 있다. 전기위원회가 산업부 내 행정조직으로 심의기구에 불과해 전기요금이 재무적 근거가 보다는 정책적, 정치적 판단에 의해 결정되는 실정이다. 비전문적 의사결정으로 인한 전기요금의 왜곡은 비효율적인 에너지 소비를 초래하고, 탄소중립을 위한 친환경 에너지 기술의 시장진입도 저해한다.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 등 해외 선진국들은 정치권과 분리된 독립적인 에너지시장, 요금 규제기관이 운영되고 있다. 위원들도 각 분야 (전력/가스 산업, 경제학, 소비자 정책, 재무 및 투자 등)에서 상당한 경험을 보유한 인력에서 선발하고 있다.
에너지경제신문은 국내 전기요금 결정구조의 실태를 알리고 해외사례에서 해법을 찾고자 ‘에너지 규제 거버넌스, 글로벌 스탠다드 따라가자’ 기획 기사를 연재한다. 미국, 영국, 일본 등 선진국을 찾아 현장의 생생한 사례를 소개하고 국내·외 전문가들의 목소리도 모았다. [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① 국내 실태·대책
② 해외사례-영국·프랑스
③ 해외사례-미국
④ 해외사례-일본
▲일본 도쿄에 위치한 경제산업성의 전경. 사진= 이원희 기자 |
[에너지경제신문/도쿄(일본)=이원희 기자] 일본의 전기·가스소매시장은 민간에 완전히 개방돼있다. 전기요금에 국제 원료비 변동분이 빠르게 반영되는 구조다. 전기요금은 민간기업이 일부 정하되 공정하게 조성되도록 독립된 기구인 전력·가스시장 감독위원회(EGC)로부터 감시받는다.
일본 전기요금 고지서를 살펴보면 연료비에 따라 유연하게 요금이 바뀌는 걸 볼 수 있다. 몇 달 만에 전기요금이 20% 가까이 차이 나기도 했다.
일본 국민은 전기를 더 저렴하게 파는 기업을 찾아 선택할 수도 있다. 전기소매기업은 731개나 존재한다.
선택할 회사가 많은 대신 일부 일본 국민에게는 갑자기 오르는 전기요금과 전기소매기업을 직접 선별하는 작업이 ‘스트레스’로 다가오기도 한다.
도쿄에 거주하는 시오아먀 씨는 "전기요금 단가가 급변하는 시기에는 전기회사를 선택하는 일이 무척 피곤한 일 중에 하나"라고 말했다.
전기소비자들의 불편으로 나오는 과도한 선택에 대한 부담감을 어떻게 극복할지가 또 다른 관건으로 떠오르는 상황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정부와 한국전력공사가 정치권의 논리에 따라 전기요금을 정하고 이를 국민이 받아들이는 구조다. 소비자들이 전기를 살 때 별다른 고민 없이 한전의 전기를 구매하면 끝인 우리와는 매우 다르다. 공기업인 한전은 적자를 보면서도 국민에게 저렴하게 전기를 팔아준다.
일본의 EGC와 비슷한 전기요금 결정과정에 참여하는 전기위원회가 있지만 독립적인 역할을 하지 수행하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곧 한다. 일본의 규제위원회와 비교하면 사무국 인원수가 10분의 1 수준으로 제 역할을 하기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우리나라 전기요금에는 원료비가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면서 한전의 적자가 45조원 이상 쌓이는 결과를 나았다. 일본처럼 원료비가 전기요금에 제대로 반영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전기요금 인상은 정치권과 정부의 중대한 의사결정을 거쳐 결정되는 우리나라도 일본과 비슷하게 정치에서 독립된 전기요금 결정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타카다 유야씨가 제공한 지난 8월 전기요금 고지서. |
◇ 연료비에 따라 유연하게 바뀌는 전기요금…"전기회사 고르는 것도 스트레스"
에너지경제신문은 일본 도쿄를 지난 6일 2박 3일간 방문, 일본의 전기요금 정책 현황에 대해 취재했다.
일본에 1인 가구로 살고 있는 타카다 유야 씨는 절약을 잘 실천하는 일본인 중에서도 전기를 아껴 쓰는 편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가 보여준 지난 8월 전기요금 고지서에 따르면 여름철임에도 한 달 동안 전기를 137킬로와트시(kWh) 사용했다.
우리나라 1인 가구가 한 달에 전기를 평균 250kWh 이상은 사용하는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낮은 수치다.
타카다 씨가 보여준 3개월 치 전기요금 고지서에서는 우리나라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특이한 현상을 볼 수 있었다.
그가 8월 동안 내야 하는 전기요금은 총 2541엔(2만1802원)이다. 1kWh당 18.5엔을 낸 셈이다.
하지만 그가 지난 9월 동안 낸 전기요금을 살펴본 결과 그는 9월에 전기요금을 1kWh당 21.9엔을 냈다.
지난 7월에 낸 전기요금은 1kWh당 18.1엔이다.
전기사용량에 큰 차이가 없음에도 두 달 사이에 단위당 전기요금이 18.1엔에서 21.9엔으로 20%(3.8엔)나 오른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전기 사용량을 확 늘려 누진제를 많이 적용받거나 한전이 전기요금을 올리지 않는 이상 이 정도로 단위당 전기요금이 차이 나지 않는다.
일본의 전기요금이 몇 달 만에 차이 나는 이유는 액화천연가스(LNG) 등 원료비에 따라 전기요금에 즉각 반영되는 연료조정액이라는 항목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전기요금 고지서에서 연료조정액이 다르게 반영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타카다씨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자 "연료비에 따라 전기요금이 오르는 건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 보니 차이가 정말 많이 난다. 전기요금이 갑자기 많이 나올 수 있어 평소에도 쓰는 게 부담이 되는 건 사실"이라고 말하며 놀라는 모습을 보였다.
전기소매시장의 민간개방은 전기소비자가 스스로 기업을 선택해야 할 책임을 부여한 셈이기도 했다.
일본에 유학 후 취업한 김승준 씨는 "일본을 가니 전기와 가스를 구매할 회사를 직접 골라야 한다. 한국에서는 해본 적이 없어 사실 불편했다"며 "더 싼 방식이 혹시 있나 계속 신경 쓰니 은근 스트레스를 받았다"라고 말했다.
그는 "일본에서 아무리 전기를 싼 데서 사도 한국이 더 싸지 않겠느냐"며 "지금은 다니는 회사가 기숙사 전기·가스요금을 다 처리해줘서 관심을 끊고 사니 정말 좋다"고 말했다.
이들은 한전과 한국가스공사의 적자 등 공기업이 겪는 부담을 이해는 했지만 그래도 우리나라처럼 전기를 사는 게 더 편해 보인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최근 기후변화 등으로 전기소비자들이 에너지를 절약해야 한다는 점에는 공감했다.
일본은 11월 초에도 기온이 20도를 넘으면서 이례적으로 여름 같은 날씨를 보였다. 11월답지 않게 길거리에는 반팔을 입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일본 언론은 지난 7일 도쿄 도심의 기온이 27.5도까지 치솟아 100년 만의 처음 있는 일이라고 연달아 보도했다.
타카다 씨가 보여준 전기요금 고지서에는 전기사용량에 따른 온실가스 배출량도 표시했고, 지구 온난화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도록 유도했다.
재생에너지 촉진 부과금도 따로 명시해 재생에너지 보급에 필요한 비용을 전기요금에서 거뒀다. 우리나라에서 기후환경요금으로 재생에너지 확대비용을 전기요금에서 거두는 것과 비슷하다.
▲지난 7일 일본 도코 센소지 절 앞에서 사람들이 11월에도 최고기온이 20도를 넘는 여름철 날씨를 보이자 가벼운 옷차림으로 거리를 거니고 있다. 사진= 이원희 기자 |
◇ 일본 EGC, 전기·가스 거래시장 독립적으로 감시…국내도 독립적인 위원회 도입 추진 목소리
최근 우리나라도 일본처럼 전기요금에 원가가 적극 반영돼야 한다는 주장이 거세다.
에너지 업계와 전문가는 전기요금에 "원료비를 적극 반영하면 국민들의 부담이 커지겠지만 공기업인 한전의 적자부담을 키우는 것도 결국 국민에게 돌아올 몫"이라고 강조한다.
한전이 전기구매비용보다 더 싸기 전기를 팔면서 총부채만 200조원에 달하고 47조원에 달하는 누적적자가 쌓였다.
최근 연료비 하락과 전기요금 상승으로 한전은 올해 3분기 1조9966억원의 영업이익을 내며 10분기 만에 흑자를 기록했다. 하지만 이정도 흑자 규모로는 누적적자를 해소하기에는 턱 없이 적다는 평가를 받는다.
일본은 2016년부터 에너지시장 자유화와 함께 시장이 민간에 개방되면서, 이에 발맞춰 EGC도 일본 경제 산업부 산하기관으로 설립됐다. 전기, 가스 시장이 민간에 개방되면서 공정한 시장 조성을 위해 감시할 기관이 필요해진 것이다.
EGC는 일본 경제 산업부 산하기관이지만 독립적인 업무를 보장받는다. 전기요금을 직접 결정하지는 않지만 전기소매시장의 분쟁을 조정하고 감시하는 역할을 하면서 간접적으로 전기요금 결정에 참여한다.
전기시장 관련 규칙 제정이 필요하면 일본 경제산업성에 제안하는 역할도 한다.
전기소비자가 전기소매업체와 계약 분쟁이 발생할 경우 이를 해결한 자문서비스도 구축했다.
EGC의 목적은 일본의 에너지 시장에서 경쟁을 더욱 촉진하는 것이다.
EGC 사무국은 정책조정과, 시장감시과, 네트워크감시과로 총 3개 과로 구성돼있다. EGC에 따르면 사무국 업무 인원도 100명이 넘는다.
우리나라에서 EGC랑 가장 비슷한 위원회라 한다면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전기위원회를 들 수 있다.
전기위원회는 전력산업의 공정한 경쟁환경 조성과 전기사용자의 권익 보호, 전기사업자간 분쟁 조정, 전기사업의 허가, 전기요금 등에 관한 심의·의결 등을 위해 산업부 내에 설치된 기관이다.
일본과 달리 우리나라는 전기소매시장이 개방되지 않았으므로 전기위원회가 EGC처럼 전기소매시장을 감시하지는 않는다.
전기위원회는 직접 전기요금을 결정하지 않고 한전, 산업부, 기획재정부가 결정한 전기요금을 승인할 권한만 있다. 이 때문에 전기위원회가 독립성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게다가 현재 전기위원회 사무국 총인원은 10명 안팎에 불과하다. EGC의 10분의 1 수준이다. 지금 구조로는 전기요금을 분석하고 결정할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결국 전기요금을 독립적으로 결정할 위원회를 어떻게 만들어 낼지가 관건인 상황이다.
대통령 소속 규제개혁위원회의 김종석 위원장은 지난 10일 사단법인 ‘에너지미래포럼’ 주최로 열린 포럼에 참석해 일본과 비슷한 전기요금 결정과정 도입의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전기·가스요금 결정과정의 탈정치화가 필요하다"며 "독립적인 규제기구가 요금을 정하게 하든지 기업 간의 경쟁을 통해서 요금이 결정되도록 하는 게 상식이고 다른 나라에서도 그렇게 한다"고 밝혔다.
wonhee4544@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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