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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국정 막다른 길서 결단" vs "‘사법리스크’ 돌파 승부수"…이재명 대표 단식정치 효과는?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3.09.03 10:40

李 "무능 폭력 정권 항쟁"…대통령에 대국민 사죄 등 요구



검찰 출석 대응·대표직 사퇴론 일축 등 ‘방탄 단식’ 시각도



전문가들 "단식 정치, 당내 결속력 이완 등 부작용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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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일 국회 단식농성장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에너지경제신문 오세영·윤수현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단식 정치’가 효과를 볼 수 있을 지 주목받고 있다.

이재명 대표의 이번 단식은 우선 국회의 과반 의석을 훨씬 넘게 차지해 정국 주도권을 쥔 거대 야당 대표의 단식이라는 점에서 이례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또 이 대표의 단식 시점도 눈길을 끌었다. 이 대표는 현재 본인 관련 비위혐의로 검찰 출석을 앞두고 있는데다 자신의 ‘사법 리스크’ 문제로 당내 일각에서 대표직 사퇴 압력을 받고 있다. 21대 마지막 정기국회 회기 시작 전날 이 대표가 단식에 돌입한 것도 미묘하다는 반응이다.

단식은 목숨을 걸고 하는 정치인의 최종 승부수다. 정치인 단식 투쟁의 원조격인 김영삼(YS) 전 대통령 단식농성부터 이어진 야당 대표의 단식 농성은 민주화 투쟁을 위해 혹은 정책 요구나 정치적 선명성을 추구하는 수단으로 쓰여져 왔다.

이 대표의 단식은 앞선 야당 대표들이 보였던 단식 투쟁과 성격이 다소 다르다는 게 정치권의 해석이다. 여소야대 상황에서 야당 대표가 단식을 진행한다는 점과 그 명분이 특정 정책 요구가 아닌 거대 담론이라는 점에서다.

이 대표의 단식 농성을 바라보는 시각도 다양하다. 국정 위기 상황에서 거대 야당 대표가 취할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이라는 의견과 이 대표 자신을 둘러싼 사법리스크를 돌파하기 위한 승부수라는 추측이 엇갈리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3일 "정치인의 단식이란 목숨을 걸 만큼의 결단으로 진행되는 것이기 때문에 국민들에게 이 대표의 강력한 의지를 피력하는 데에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면서도 "뚜렷한 주장 없이 거대 담론을 비판하는 이유에서 진행되는 만큼 오히려 당 결속력이 떨어지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고 내다봤다.


◇ 李 "무능 폭력 정권 항쟁"…대통령 대국민 사죄 등 요구


이 대표는 단식농성과 관련해 "이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정권의 퇴행과 폭주 그리고 민생 포기, 국정 포기 상태를 도저히 용납할 수는 없는데 이 일방적인 폭력적인 행태를 도저히 그대로 묵과할 수는 없지만 막을 다른 방법도 없다"고 말했다.

이어 "이게 정권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 삶의 문제, 민생 문제, 정말 절박한 문제이기 때문에 그 고통에, 그 절망에 우리가 공감하고 함께하는 유일한 방법"이라며 "조금이라도 퇴행이 완화되고 정상적인 국정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할 수 있는 무슨 일이든지 다 하겠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지난달 31일 국회에서 열린 당 대표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오늘 이 순간부터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무능 폭력 정권을 향해 국민 항쟁을 시작하겠다"며 "사즉생의 각오로 민주주의 파괴를 막아내겠다. 마지막 수단으로 오늘부터 무기한 단식을 시작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윤석열 정권은 헌정질서와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국민을 향해 전쟁을 선포했다"며 "오늘은 무도한 정권을 심판하고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는 첫날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대한민국이, 국민의 삶이 이렇게 무너진 데는 저의 책임이 가장 크다. 퇴행적 집권을 막지 못했고, 정권의 무능과 폭주를 막지 못했다"며 "그 책임을 제가 져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부연했다.

이 대표는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독립운동가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해병대 채모 상병 순직 사건 수사 △서울-양평 고속도로 종점 변경 의혹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임명 등을 나열하며 비판한 뒤 민생 파괴와 민주주의 훼손에 대한 대통령의 대국민 사죄, 오염수 방류 반대 입장 천명, 전면적 국정 쇄신과 개각 단행 등을 공개 요구했다.


◇ 사법리스크·사퇴론 일축 등 ‘방탄 단식’ 의혹도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 대표의 ‘무기한 단식’을 두고 사법리스크와 이에 따른 당 대표 사퇴론 등 자신에게 불리한 분위기를 반전시키기 위해 꺼내든 카드가 아니냐는 의혹도 나온다.

자신의 임기 반환점이자 정기국회 개원을 하루 앞두고 초강수 카드를 꺼내 든 데는 안팎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다중의 포석이 깔려 있을 것이라는 배경에서다.

무엇보다 검찰발 사법리스크 장기화와 9월 구속영장 청구설, 그에 따른 내홍 심화와 대표직 사퇴론 분출, 당 지지율 하락 등 수세에 몰린 상황을 반전하기 위한 시도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 대표가 극단적 투쟁 방식인 ‘단식’을 통해 리더십을 둘러싼 당내 불협화음을 최소화하는 한편 흩어진 지지층을 재결집해 연말까지 이어질 정기국회에서 정국 주도권을 쥐려는 계산이라는 것이다.

법조계에 따르면 수원지검 형사6부는 지난 23일 이 대표 측에 쌍방울그룹 대북송금 의혹 관련 피의자 조사를 위한 4일 출석을 통보했다. 이 대표는 4일 검찰에 출석, 2시간만 수사를 받고 나중에 다시 출석해 추가 수사를 받겠다고 했다가 검찰로부터 퇴짜를 받자 4일 검찰 출석을 최종 거부했다. 이 대표는 대북송금 의혹 관련 검찰의 지난달 30일, 이번달 4일 등 두 차례 출석요구를 잇달아 거부한 것이다.

이 대표에 대한 검찰의 소환 통보는 이번이 다섯 번째다. 검찰은 경기도지사 시절 이 대표가 쌍방울그룹에 대북사업 관련 특혜를 제공하는 대신 북한에 방북 비용 300만달러를 대납하는 과정에 관여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대표는 지난달 17일에는 백현동 개발 특혜 의혹과 관련해 피의자 신분으로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해 조사를 받았다. 이 대표에 대한 수원지검의 조사가 끝나는 대로 백현동 사건과 함께 이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이 청구될 것으로 예상된다.


◇ 전문가들 "단식 정치, 긍정적 효과 기대 어려워"

정기국회가 시작된 상황에서 국회 다수당 대표가 현 정부를 정면으로 맞서며 단식에 돌입하는 초유의 상황이 발생한 만큼 이번 정기국회는 역대 그 어느 때보다 여야간 파열음이 클 것으로 보인다.

특히 내년 총선이 불과 7개월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라는 점에서 이 대표의 단식 투쟁이 촉발한 여야 간 ‘강 대 강’ 대치가 정기국회 내내 이어지면서 정국이 출구를 찾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이 대표의 단식 투쟁이 정기국회나 내년 총선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다만 이 대표의 진정성을 드러내는 데에는 효과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상병 인하대 정책대학원 초빙교수는 "21대 마지막 정기국회가 시작됐고 내년 총선도 앞둔 만큼 당내 결속력을 다져야 한다"며 "야당 대표가 단식 투쟁으로 대정부에 대한 강력 투쟁 의지를 확인하고 독려하면서 당 내부적으로도 똘똘 뭉쳐 정기국회에 최대한 임하라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다"라고 분석했다.

박 교수는 "단식을 오랫동안 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보니 단식 투쟁으로 총선까지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난다고 기대하기는 어렵다"면서도 "하지만 목숨을 걸고 하는 것인 만큼 이 대표의 진정성을 충분히 호소할 수 있고 당 단합을 다질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야당이 공세를 모아 정부를 견제 및 압박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 대표가 단식 농성에 나서면서 공세가 흩어져 당이 오히려 분열되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철현 경일대 교양학부 교수는 "국민들은 지금 민주주의 위기보다 민생 경제 위기를 느끼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여야가 힘을 합쳐 경제 위기를 돌파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며 "민생 위기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서 민주주의를 내세워 단식 투쟁을 시작했으니 ‘방탄용 단식’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정기국회가 시작된 이상 지금부터는 야당의 시간"이라며 "국정감사나 예산 심사 등 다양한 방법으로 대통령과 행정부를 압박할 수 있는 수단이 있는데 이 때 갑자기 단식을 해버리면 공세가 분산되면서 당내 결속력이 다져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분열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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